11월 1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동성애를 두고 기도합니다.

1.

동성애를 옹호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문화적 기류가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져 성경적인 성 윤리가 회복되게 하소서.

2.

인권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동성애의 실체가 드러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들이 동성애에 빠지지 않도록 가정과 교회가 더욱 깨어 가르치며 기도하게 하소서.

3.

한국교회가 성령 안에 하나 되어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막아내게 하시고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창17:15-1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17:15-16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24년이 지난 시간입니다. 실로 긴 기간이 흘렀습니다.

오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17:1

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브람이 체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보다 늙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잠자는 믿음을 깨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잠자고 있는 여러분의 믿음을 깨우시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포기할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이 변할지라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네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너는 한 개인의 아버지가 아니라 모든 열국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아내의 이름도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17:15-16

사래는 그때까지도 임신을 해 본 적이 없었고 이제 나이가 89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축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는 말씀대로 사라는 육체적으로는 유대와 이스라엘과 에돔 민족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영적으로는 모든 믿는 자들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사라는 열국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국모가 되고 국부가 되어도 영광스러운데,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의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내 믿음을 알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주셨습니다.

제가 LA 순복음 교회의 초청을 받아 미국에 가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다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그들은 영혼뿐 아니라 가정도 다 잘 되어 있고 좋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장로님들 댁, 교인들 가정마다 변호사, 의사, MBA가 된 자녀들이 넘쳐났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으면 영혼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범사도 잘 되고 자녀도 잘 되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힘들고 어려워도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 내일은 더 귀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활에 아쉬움이 있고 심각한 일이 있어도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 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창17:17

사람은 누구든지 속으로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입으로 표현하는 말은 장소와 대상에 따라서 과장될 수도 있고 왜곡될 수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속마음과 겉으로 표현되는 말이 다릅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경험하다보면 자기 속에 없는 것을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속으로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아브라함은 엎드려서 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 내 나이가 백살이 다 되었는데 어떻게 자식을 낳으며 사라도 나이가 구십살인데, 어떻게 출산을 한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네 부인 사라에게서 약속의 자녀가 태어나리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속으로 ‘하나님,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누가 봐도 웃을 이야기입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지난 20여년 동안 수없이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왔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했습니다.

겉으로는 믿는 것 같았습니다. ‘누가 봐도 그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야’라고 할 것처럼 보였지만 17절을 보면 24년이 지난 이 시간에도 그의 고백은 ‘믿지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가짜였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고 목사나 장로가 되었어도 신앙은 가짜일 수 있습니다. 진짜처럼 착각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극히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믿음이었다는 사실이 바로 이 17절의 말씀에 드러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결코 인간적인 생각이나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에 의해 얻어진 확신도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성숙해지지만 성숙해진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가 많고 인생을 노련하게 사는 사람이 있지만 그 지혜나 노련한 경험이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믿음은 인간 안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절대은혜’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전혀 질이 다르고 독특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인간적인 성숙함과 경험에서 나오는 믿음을 원하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믿음이 다 무너지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 기간이 24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를 신뢰합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스타일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들이 사라지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에 의해 조작된 믿음, 인간에 의해 경험되고 훈련된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부터가 아니라 인간에게서 나온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믿음,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믿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믿음을 끝까지 붙들고 하나님께 나갑니다. ‘나는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행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기적도 일으킬 수 없는 인간적인 믿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인간적인 믿음을 24년간이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웃은 것입니다.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의 신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한 모습일 수는 있지만 믿음 자체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경험이나 지식을 통해 얻어진 확신을 믿음처럼 갖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갤럽 등 신뢰할 만한 기관에서 조사한 통계를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여론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러한 통계나 지식이나 과학에 근거한 믿음은 결국 좌절과 절망과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믿음일수록 그럴 듯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인 믿음일수록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날이 갈수록 미궁 속에 빠지고 맙니다.

아브라함도 미궁 속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아직도 신뢰하지 않았고 약속보다는 환경을, 기적보다는 신체적인 조건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

달력 이동전체 목록목사님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