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우들을 위하여
영적인 질병과 육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에게 평안과 회복의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더하사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승리하게 하소서.
질병의 고통 중에서도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시고 성령님과 더욱 친밀한 삶을 통해 위로와 평강을 얻게 하소서.
절망과 자살 충동, 우울증과 조울증, 악한 영의 공격, 공황장애와 온갖 정신적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창17:12-1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창17:12할례는 난 지 8일 만에 행합니다. 하나님은 아이들이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도 없을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할례를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12절에 매우 재미있는 말이 나옵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남자는 다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가문과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특권의식이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타도 자기들만 먹는 음식이 따로 있습니다. 고기를 먹더라도 도살과정을 다 보고서야 먹는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명분으로 하나님을 독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보면 ‘도대체 이스라엘은 언제부터 선택받았던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스라엘이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선택받기 전에는 그들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연히 ‘이방인’이었습니다. 별 것 없습니다. 선택받은 날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 뿐입니다.
아브라함도 갈데아 우르에서 살던 보통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내셔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할례를 주신 것 뿐입니다. 그 전에는 그도 이방인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를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전에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없었고, 약속도 없었고, 이스라엘 밖에 있었던 이방인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어서 이제는 마귀로부터 떠나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와서 구원 받고 천국을 소유하는 영적 상속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선택은 특권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내가 선택받았다고 하는 것은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사실입니다. 내가 선택받았다는 오만과 교만과 특권의식은 선택의 본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을 택했습니까? 그것은 축복의 통로로 택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온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통로로 그들을 택하여 주신 것입니다.
"네 자손 (예수)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26:4"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3:16즉,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천하만민이 죄 사함 받고, 의롭게 되는 복,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받아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복,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병 고침을 받는 복,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부활하여 영생 천국을 얻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나만 잘 먹고 잘 입고 내 가정만 잘 살면 되고 하나님을 독점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눠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숱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신 까닭은 우리만 잘 먹고 살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 놀라운 특권, 선택을 잊고 이것을 이용하고 착취하고, 누리고, 독점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창17:1312, 13절에서 사용된 표현을 주의하여 보십시오.
12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아브라함의 씨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예로 팔려온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자랑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냐? 내가 이 돌맹이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
선택받았다는 것은 겸손과 감격과 봉사의 기회를 주는 것 뿐입니다. 물론 구원하시기 위해서 택하셨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를 통하여 구원받지 못한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선택한 것은 그를 구원하기 위함이었지만, 더 큰 의미는 이방인을 위한 택한 그릇으로 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행26:16-18“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지 않고, 헬라인과 야만인을 구분하지 않으며,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를 구분하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부자도 구원받을 자격이 있고, 가난한 자도 구원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종도 구원받을 자격이 있고, 주인도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창17:14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든 노예든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이들은 할례를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로 또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할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할례를 수단에 불과합니다. 할례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표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은 생각하지 않고 수단만 생각합니다. 수단을 정당화 합니다. 수단이 목적이 되면 타락이 옵니다. 이것이 율법주의, 형식주의입니다. 형식은 시대마다 달라집니다. 그러나 형식을 가진 사람은 형식을 절대화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타락이 있고 독재가 있고 위기가 있습니다.
할례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받지 못한 사람들은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정죄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종교적인 실수와 우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할례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약속’입니다. 그 약속의 표로 할례를 주었습니다. 할례는 몸에 하는 것이 아니요 마음에다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신10:16갈라디아서 5장 6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말하고 있고, 6장 15절을 보면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을 하시고, 믿음의 징표로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믿음의 징표는 할례였지만, 몸에 할례를 받는 것, 다시 말해서 할례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옛 사람을 베어 버려야 합니다. 내가 믿고 의지하던 것을 베어 버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