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담임목사를 위하여
성령의 충만과 말씀의 은사를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영적인 민감함을 주사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게 하시고 목자의 가슴과 아비의 눈물로 모든 성도를 깊이 사랑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겸손의 리더십을 갖게 하소서.
목사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온전히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고 가정에 평안을 주소서.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창17:9-1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창17:9아브람이 99세 때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잠을 자던 아브람을 깨우시면서 네 가지 약속을 확인해 주십니다.
“네 이름을 이제부터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 하라’ 하시면서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두번째로 “내가 너를 심히 번성케 할 것이며 모든 민족과 열방이 너를 통하여 태어날 것이다. 너는 한 개인의 아버지가 아니라 열국의 아버지다.”라는 말씀을 주시며 아브라함의 비전을 새롭게 하시고 마음을 넓혀주기 시작하십니다.
움츠렸던 아브라함, 상처받았던 아브라함, 좌절했던 아브라함, 모든 것을 포기했던 아브라함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다시 격려하십니다.
세 번째로
“내가 너에게 주고 싶었던 약속과 축복은 네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손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자자손손에게까지 이 축복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너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너의 후손의 하나님도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아브라함을 격려하고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가 살고 있는 이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만들어서 네 후손에게 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한 가지를 당부하십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하나님이 왜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브람이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기다리는 동안 여러 번 곤두박질했기 때문입니다. 기근이 왔을 때 가나안 땅에 있지 못하고 애굽으로 피신을 갔다가 큰 수치를 당했습니다. 조카 롯과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10년이 지났을 때, 그의 믿음이 몹시 흔들렸었습니다. 결국 그는 불신앙 때문에 이스마엘을 낳고 맙니다. 이스마엘을 낳은지 13년, 아브라함은 체념과 좌절 속에서 그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먼지가 날리고 거미줄이 끼였다고 생각했던 그 낡은 언약, 잊혀진 언약을 하나님이 다시 들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포기했을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내십니다.
민수기 23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일관된 하나님의 메시지는 ‘내 말을 듣고 지키면 너와 네 자녀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너도 지키고 네 자녀도 지키게 하라.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이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 내가 너를 축복해 주리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이나 현실을 더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13년 동안 믿음의 휴면 상태에 들어갔을 때는 주변의 환경, 즉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현실을 더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제한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어린아이와 같이 믿는다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제한하면 제한하는 것만큼 밖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자녀들에게 이 믿음을 전해주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잘 믿는 것은 하는데 자녀들이 믿음을 갖게 하는데 게으른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와 다르지 않느냐 하는 생각 때문에 고3이 되면 교회 가는 것보다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기를 가기를 은근히 원합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가겠다고 말하면 야단치는 부모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의 믿음을 위해서 이사를 하신 적이 있습니까? 자녀의 믿음을 위하여 직장을 옮기신 경험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를 위하여 어떤 희생을 하셨습니까? 이런 대가를 치러야만 아이들에게 믿음이 전달됩니다.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들도 언약을 지키게 하라’라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말씀하십니다.
열왕기상 2장 1절에서 4절에 보면, 다윗이 세상을 떠날 때 아들 솔로몬에게 한 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따라 합시다.
“말씀을 지키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할렐루야!
우리가 복을 받았지만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면 사고를 당하듯이 말씀의 길을 벗어나면 복이 내 것이 아니게 됩니다. 축복은 말씀의 길에 쏟아지니 우리가 딴 길로 가면 축복이 내게 오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은 길(道)입니다. 말씀이 길이니 그 길로 가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복이 다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부모님을 잘 섬기고 남편을 잘 섬기고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돌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살면 만복이 임하고 영원히 복된 가문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창17:10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여자는 할례를 받으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는 말씀에는 여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전11:3성경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남자의 머리는 여자다.’라고 말씀하신 곳이 없습니다. 자기가 남편의 머리인 줄 알고 남편을 막내아들처럼 대하는 아내는 각성해야 합니다. 분수를 알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집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아이고, 목사님. 제가 이만큼이라도 하니 저희 집이 유지되지, 제가 그냥 두면 저희 집은 안 됩니다.”라고 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보기에는 남편이 어수룩해 보여도 남편은 여러분의 머리입니다. 그러니 남자는 다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말씀에는 여자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할례가 무엇입니까? 생명을 이어주는 몸의 한 부분인 표피 끝을 자르는 것입니다. 그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생명을 이어주는 부분의 피를 흘리는 것은 생명을 주님께 쏟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례를 받으면 이제는 하나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표입니다. “이제는 사나 죽으나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라는 것이 할례입니다. 이 할례가 신약에 와서는 세례로 바뀝니다.
구약은 미완성 성경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미완성 성경인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소와 양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려 예배자가 죄 사함을 받고 예배를 드렸는데,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배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성전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에 예배를 드렸는데, 지금은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안식일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날 부활하셨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은 다 주일을 중히 여겨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동시에 할례가 세례로 바뀌었습니다.
세례는 세례 요한이 주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완성하심으로 그 후부터는 할례를 받지 않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세례는 무엇입니까?
로마서 6장 2절에서 6절에 그 뜻이 나와 있습니다. 줄여 말하면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나의 옛사람이 죽고, 예수님께서 다시 새 생명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나의 죄성을 버리고 예수님의 영으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세례입니다.
다시 한 번 쉽게 말씀드리면, 조그만 열매를 맺는 고욤나무를 자르고 거기에 감나무를 접붙이면 감을 맺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잘리고 예수로 거듭나니 바울의 삶이 예수님의 삶처럼 되고, 바울의 쓴 편지가 성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11:1내가 예수님의 샘플이 된 것처럼 너희는 나의 샘플이 되라.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다 옛사람은 잘리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주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고, 내 생명을 주님께 던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던져 나를 구원해 주신 것처럼 나도 생명을 바쳐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것입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5:15"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롬14:7-8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 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오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아름답습니다. 넥타이를 맬 때도 주님을 위해, 운동을 해도 주님을 위해, 자동차를 사도 주님을 위해, 이것이 바로 복 받는 자의 삶입니다.
2024년 11월 15일 오전 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