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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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위하여

1.

한 영혼을 바라보며 목양에 힘쓰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지역사회를 복음화하는 데 귀하게 사용되는 능력의 종 되게 하소서.

2.

교회의 연약한 상황들로 인해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게 하시고 도시 교회들이 한 지체 의식으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돕는 데 열심을 내게 하소서.

3.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의 수고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많은 결실을 맺게 하시며 속한 지역에서 존경받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창16:9-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창16:9

하나님의 말씀은 너를 도와주겠다든지, 복수해 주겠다든지, 새로운 길을 열어주겠다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사래의 학대 아래로 다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하갈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죽으면 죽었지 그곳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발견하는 믿음의 비밀은 ‘순종’이었습니다. 축복의 열쇠는 순종입니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라는 말은 ‘만약 내 말을 듣고 여주인에게로 돌아가면 그녀는 변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순종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순종이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옛 주인에게로 돌아가라는 말은 ‘본래의 위치로 환원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참된 행복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 행복의 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남편과 아내는 모두 제 위치로 돌아와야 합니다. 혹시 이 자리에 아내가 싫어서 집밖으로 도는 남편이 있다면 집으로 돌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남편이 힘들게 해서 밖으로 도는 아내가 있다면 이 말씀을 들으십시오. “제 위치로 돌아가라” 아들의 행복은 아버지 어머니와 화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제 위치로 돌아가라는 말씀은 하갈을 괴롭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래의 몸종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한 번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그렇게 힘들고, 자존심 상하고, 어렵지만 만약 하갈이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결정했다면 하갈은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을 것입니다. 성격도 죽였을 것입니다.

아랫사람과 윗사람은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학생들의 위치가 있고 선생님의 위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과연 깨어진 자리에 다시 돌아오게 하는 열쇠가 무엇입니까? 바로 ‘순종’입니다. 자기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는 본래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예수님의 삶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여러분의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가정의 축복은 여러분의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자녀간의 회복도 순종으로 회복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창16:10

순종하면 약속의 자녀가 아닐지라도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갈은 약속의 자녀를 잉태하지 않았습니다. 실수로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불신앙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에게도 축복하셨습니다.

약속의 자녀였던 이삭의 특권은 이스마엘보다 많은 물질적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약속의 자녀에게서 가장 큰 특권은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후손 가운데 인류를 구할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고, 그 메시야는 온 인류를 구원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말을 듣고 순종하면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게 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땅에 아직도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번창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예언의 응답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16:11

야훼의 사자는 하갈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이스마엘이었으며 그 뜻은 ‘고통에서 해방하였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갈을 고통에서 해방하시는 하나님의 넓고 크신 사랑을 목격하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보면 비록 이스마엘이 실수로 태어난 자녀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약속의 자녀처럼 하갈의 자녀도 축복해 주신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창16:12

이 말씀은 앞으로 이스마엘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모든 삶을 아주 응축된 예언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살 것이다’라는 말씀은 광야에서 살아야 되는 아랍사람들, 낙타를 타고 들나귀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이스마엘은 이삭의 배다른 형제였습니다. 지금도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이삭의 후손들과 대항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예언이 이루어 졌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창16:13

하갈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갈의 생각에는 ‘사래의 하나님일뿐 나의 하나님은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버려진 존재요, 소망 없는 존재요, 아무리 노력해도 출신이 나빠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래의 하나님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갈의 하나님도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서자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적자나 서자나 똑같이 축복해 주십니다.

하갈은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갈이 자신을 살펴보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에 사래에 대한 분노도 다 풀리고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그 집으로 돌아갈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사랑할 용기도 주시고 용서할 용기도 주시고 회개할 용기도 주십니다. 그래서 하갈은 그 장소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창16:14

‘브엘라헤로이’의 뜻은 ‘나를 감찰하시는 생존자의 우물’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만 축복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의 서자도 약속의 자녀처럼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도 사랑한다’는 말은 이방인도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보면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5:43에

하나님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만 빛을 비춰주시고 그 옆에 있는 불신자에게는 비춰주지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사업에 성공하게 하시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저주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선택받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정하면 축복을 주십니다. 선택받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저주가 임하게 되며 선택받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신뢰하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창16:15-16

하갈은 돌아갔으며 아브람은 그녀를 받아주었습니다. 사래도 받아 주었습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무서워서, 혹은 지긋지긋해서 못 가시겠다구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순종하며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이 때 아브람의 나이가 86세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을 임신하였던 때는 85세였습니다. 아브람이 1백세에 이삭을 낳았으므로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4살이나 손위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삭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은 서자를 보고도 14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믿음은 기다리는 것이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되고, 내 감정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얻어지는 교훈이 많지만 가장 큰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보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사래만 지켜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갈도 지켜보십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나다나엘과 같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만 지켜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고 여섯 번째 남자와 몰래 만나서 사는 여자도 지켜보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 불쌍한 여인이 사마리아 우물로 물을 길러 올 것을 아시고 우물가에서 기다리셨다가 그 여인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뒷조사해서 혼내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시고 위험에서 구해주셔서 잘 되게 하시려고 살피시고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시선을 느끼면서 살아가야 됩니다.

한 운전기사가 정비소에 와서 차를 수리한 다음 영수증을 가지고 와서 말했습니다.

“사장님, 여기에 부품을 몇 개 더 교환했다고 써 주세요.”

“안 됩니다. 그렇게 못합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내가 우리 회사에 가서 돈을 더 받아 가지고 사장님께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러면 나도 좋고 사장님도 좋은데 왜 안 해요?”

“우리는 그런 것 하지 않습니다.”

“다른 정비소는 다 그렇게 해주는데 왜 이 정비소만 안 해줘요?”

“다른 데서는 다 그렇게 해주어도 우리는 안 합니다. 다른 곳으로 가 보세요.”

그러자 운전기사가 “고맙습니다. 사실 나는 운수 회사 사장인데 믿을 만한 정비소를 찾기 위해 일부러 해 본 말입니다. 이제야 내가 원하던 정비소를 찾았습니다. 우리 회사의 모든 차를 여기로 보낼 테니 잘 정비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사람들 보기에는 바보같고 우직해 보여도 그것이 잘 되는 길입니다. 후회 없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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