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가정마다 예배와 기도가 멈추지 않으며 아름다운 신앙이 은혜 안에 대물림되는 믿음의 명문 가정이 되게 하소서.
가정의 모든 관계가 화평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안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게 하소서.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바르게 양육하는 성경적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되게 하소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창16:3-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십 년 후였더라"
창16:3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그리고 이곳 가나안에 와서 거한 지 10년이 되었으므로 85세가 된 것입니다. 이때에 그는 사래의 조언을 듣고 하갈을 첩으로 취했습니다.
아브람은 후사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있은 후에 10년 동안 언약의 성취를 기다려 왔습니다. 이 기간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엄청난 기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이런 오랜 공백 기간을 두신 것은 아브람과 사래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훈련을 쌓게 하기 위한 기다림의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기독교 방송 진행자이자 저술가인 조이스 마이어 “하나님만큼 인생의 타이밍을 정확하게 아시는 분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신속히 응답하시기도 하시만, 때로는 우리가 거룩한 은사를 지혜롭게 사용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신다.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무슨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조급증이나 좌절감, 실망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을 존중하고 감사하며 신뢰하는 법을 배울 때 하나님께서는 무대 뒤편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신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창16:4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임신한 것을 알게 된 하갈은 어떻게 변합니까? 사래의 몸종이었으나 사래의 주인의 위치로 군림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들의 속성입니다.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여주인 노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래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사래는 하갈을 단순히 임신의 도구, 즉 씨받이로 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래 뜻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은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처음에는 어렵다가도 시간이 갈수록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의 몸종이 주인행사를 하려 할 때 사래의 감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 이야기가 5절입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창16:5여러분, 이 실수는 누가 저지른 것입니까? 사래였습니다. 그런데 화는 누가 냅니까? 사래입니다.
실수한 사람이 화를 내는 법입니다. 죄 지은 사람이 큰소리칩니다. 실수는 사래 자신이 하고서는 그 책임을 아브람에게 뒤집어씌웁니다. 죄는 변명하고 책임을 전가시키는 특성이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어떻게 했던가요?
“당신이 내게 준 그 여자가 나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므로 내가 먹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책임은 하와에게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책임전가와 변명이 죄의 독특한 특성입니다.
어떤 사람은 도둑질을 하고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도둑질하지 않고 살 수 있느냐?” 어떤 사람은 술을 먹고서 이렇게 시를 씁니다. “이 사회가 나를 술 먹게 한다.”
정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책임전가입니다.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창16:6아브람의 집안이 갑자기 지옥처럼 되었습니다. 사래는 하갈에게 모욕당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하갈뿐 아니라 남편도 미웠습니다. 그리고 사래에게 쫓겨난 하갈은 그야말로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람은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아내와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비록 사래의 여종이라도 자기 아이를 잉태한 여자가 쫓겨났으니 얼마나 마음이 괴롭겠습니까?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아브람이 아내의 조언을 분별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하갈을 받아들여 86세에 아들은 얻었지만 그 일 때문에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갈의 자손들과 사래의 자손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사래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조언을 하고 아브람이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가 지금까지 이 지구촌에 비극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조언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욥기 2장에 보면, 재산과 자식들을 잃고 몸에 병까지 얻어 비참하게 된 욥에게 욥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시오.”라고 합니다. 이것은 욥의 아내가 욥에게 하는 조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욥은 그 조언을 이렇게 거절했습니다.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2:10그래서 욥은 살았습니다.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남편은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 하지만 무조건 다 들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아내의 말이라도 “주여!”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 말씀으로 걸러야 됩니다. 친구의 말이라도 분별해서 들어야 망하지 않습니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백성들이 몰려와서 말했습니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왕상12:4-11이후에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서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했더니 뭐라고 했습니까?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이때 르호보암은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삼일 후 백성들이 몰려왔을 때 르호보암 왕은 경륜이 풍부한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젊은 각료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거의 모든 백성들이 “이새의 아들이여,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 우리에게 다윗의 분깃은 없도다.”하며 떠나가 버렸습니다. 선하고 지혜로운 노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어리석고 젊은 각료들의 말을 들었다가 나라꼴이 형편없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다 나를 위한 것 같지만 어떤 말은 나를 망하게 하고 어떤 말은 나에게 복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복 받은 아브라함이 아내의 말을 분별하지 않고 받아들였다가 그의 가정이 지옥처럼 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두고두고 자손만대까지 아픔을 겪게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말씀은 100퍼센트 받아들이고 사람의 말은 분별합시다. 아내의 말이든, 남편의 말이든, 친구의 말이든 ‘주님!’하고 주님의 도움을 받아 잘 분별해서 결정하여 후환이 없는, 복 있는 생애를 사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누구든지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신 것은 그가 처음부터 믿음이 있어서나 그의 행동이 의로워서이거나 그가 실수하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결정적인 실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끝까지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실수하지 않았고 완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실수하고 부족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른 사람의 실수를 관용하시기 바랍니다. 아내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용서하십시오. 여러분의 남편이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용서하십시오. 그 까닭은 우리도 용서받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실수를 저질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도중에 포기하지 않으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계속 이끌어 가셨습니다. 베드로 또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해 주셔서 수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에도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방법을 흉내 내서는 안됩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보다 세상적인 방법을 택해서 양자를 삼으려했고 사래는 몸종을 시켜서 아기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통스러웠습니다.
신앙의 위기는 한 번만 오지 않고 계속 옵니다. 고통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 믿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 쉽게 갈 것인가라는 두 가지 싸움은 우리 생애에 계속 됩니다. 그럴 때마다 어려운 길을 택하십시오. 좁은 길을 택하십시오. 고통의 길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택하십시오. 그것만이 여러분이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세번째 교훈은 아브람이 회복할 수 없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실수는 하나님의 계획을 포기시킬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죄보다 큰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실수보다 큰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입니다.
믿음의 사람도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선다는 사실을 여기서 배우게 됩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어렵고 힘들 때 인간적인 방법을 택하지 마십시오.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귀에는 들리는 것이 없으며, 현실은 칠흙같이 어두워도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사십시오.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2024년 11월 8일 오전 6: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