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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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세계를 위하여

1.

전 세계 80억 명의 영혼들, 특별히 6,500여 미전도 종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리 전파되게 하시고 방황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교회가 열방 곳곳에 세워지게 하소서

2.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외 교회들이 회복되며 현지인 사역자들이 세워지게 하시고 하늘 길이 막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속히 선교 현장으로 돌아가 교회와 사역지를 지키게 하소서

3.

자연 재해와 내전, 박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서 자비와 평안을 베풀어 주시고 각 나라가 연합하여 상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15: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첫번째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어떤 약속)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일구이언을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조삼모사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게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상반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11:17-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는 것을 믿고,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실행하실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결과 아브라함은 그 아들 이삭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으로 믿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특징?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창24:2

두번째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이고 사라가 90세였을 때 까지도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아브람’을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브라함’으로 고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자식도 없는데 마치 많은 자식을 가진 것처럼 아브라함이라고 말하고 하신 것입니다. 더구나 90세가 되도록 자식을 낳아 보지도 못한 사래, 이미 경수가 끊어져 자식을 낳을 소망도 없어진 사래를 여주인이라는 뜻의 사라로 바꿔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십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있다고 하십니다. 안되는데 된다고 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믿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들이 믿음이 있다면 무엇이 그 증거입니까 ? 상식적으로 다 아는 것, 계산해서, 따져 봐서, 누가 봐도 다 이해 할 수 있는 것들을 믿는 것이 무슨 믿음입니까?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식입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이 상식적인 것을 가지고 자꾸 믿음이라고 착각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 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창조하신 것을 보지 않고도 믿습니다.

우리가 어머니 배속에서 나올 때 그 어머니를 보고 믿었습니까? 안 보고도 믿지 않습니까? 보이는 것은 나타나는 것으로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시야는 보이는 것 이상까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이 진리입니까? 보이는 세계가 큽니까, 보이지 않는 세계가 큽니까? 들리는 세계가 큽니까, 들리지 않는 세계가 큽니까? 우리는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는 듣지 못합니다. 작고 예민한 소리 또한 못 듣습니다. 인간의 청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만지는 세계가 큽니까, 만지지 못하는 세계가 큽니까? 내가 만지는 세계는 기껏해야 다섯 손가락입니다. 내가 언제 그 많은 것들을 만지고 다니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의 세계가 큽니까? 영원한 세계가 크겠습니까? 어찌 이러한 제한된 인간이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보이는 것만이 전부입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세계가 있다고 합니다.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보는 것입니다.

나 -송명희- 신앙 시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을 들었으며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나 남이 없는 것을 갖게 하셨네

이런 말을 하면 세상 사람들은 저 사람이 헛소리 한다 라고 합니다. 미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아나 모세나 아브라함은 우리들이 생각하기에 조금은 황당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노아는 미친 영감 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배는 바닷가에서 지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높은 산꼭대기에 배를 짓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오랜 시간 동안 지었습니다. 그러면 “와, 당신 훌륭한 일합니다”라고 이야기 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홍해 앞에서 있던 모세를 알고 계십니까? 모세가 홍해로 괜히 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명하셔서 간 것입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따라갔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한두 명이 가는 것도 아닙니다. 성인 남자만 603,550명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셔서 군대를 동원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러 왔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어떤 장애가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그곳까지 인도해 주신다고 믿고 기도할 것인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보고 절망하고 원망 불평할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했기 때문에 홍해가 갈라진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졌으면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이루어진 줄 믿고 마음 속으로 바라보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입으로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시금석입니다

여러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질병으로 고통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음을 입은 것을 믿고 시인할 수 있습니까?

아직 가난하고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저주를 담당하심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것을 믿고 시인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예 라고 대답하여야만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라는 대답을 자신 있게 하실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싹이 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어야 완성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15:6

여기서 의라고 하는 것은 죄를 전혀 짓지 않아 죄가 하나도 없는 상태를 말하며, 마귀가 참소하고 싶어도 참소할 거리가 전혀 없어서 마귀에게 참소를 당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어엿이 설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행위를 보시고 의롭다 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여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솨브’인데 한국 법전에 ‘간주한다’라고 쓰인 법정 용어입니다. 법률용어에 간주한다와 추정한다가 있는데, 간주한다는 것은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반대 증거가 있어도 뒤집을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법정 용어입니다. 그러나 추정한다는 것은 반대 증거가 있으면 뒤집히는 것을 말하는 법정 용어입니다.

따라서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의로 여기신다는 말씀은, 야훼를 믿는다는 조건만 갖추면 반대 증거가 있어도 뒤집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야훼를 믿는다는 조건만 갖추면 의롭지 못한 증거가 아무리 많이 있어도 의로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의롭게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신 것처럼, 오늘 처음 나오신 분이라도 ‘오늘부터 예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하면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카솨브 하시는 것입니다.

“아이고, 제 생활은 정말 엉망인데요.”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카솨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로 여기셨다는 의미입니다. 간주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확실한 것입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징계를 받기는 하겠지만 구원을 잃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으시면 아멘!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음을 믿으시면 아멘!

그렇다면 당신의 구원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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