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이슬람 세력에 대하여
무슬림 가운데 역사하셔서 닫혔던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미디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이슬람의 전략들이 무너지게 하시고 이슬람을 버리고 회심한 주의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그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소서.
영혼을 속이고 어둡게 하여 멸망시키는 이슬람의 악한 영들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묶임을 받고 떠나갈지어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창15: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창15:2소돔 왕의 제의를 거절한 아브람이지만 하나님께는 얻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믿음은 위기에 도전하며 물질의 유혹을 극복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도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좌절합니다.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에 제게 나는 너의 방패와 상급이라고 하셨으니, 제게 아들을 상급으로 주세요. 제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세요. 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아브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10년을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6장 16절을 보십시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이었더라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가 75세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낳은 때가 86세였으므로 지금 일어나는 이 일은 85세 무렵일 것입니다. 그가 믿음의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던 때입니다. 10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믿음생활을 잘 해 왔습니다. 그러나 10년을 믿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몸부림치는 어둠이 시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치 산모의 진통이 없이 어린아이가 탄생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깊은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간을 인내로써 잘 견뎌내야 하나님의 크신 복과 놀라운 섭리를 체험할 뿐 아니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며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도, 복과 약속의 말씀이 현실에 일어나지 않아도, 비록 아무 일 없이 10년이 지났다 하더라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아브람은 마음 속에 ‘혹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혹시 내가 하나님이 말씀을 잘못 이해한 것을 아닐까?’하는 불신앙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지는 않습니까?
불신앙에 사로잡히면 지나온 과거에 있던 그 위대한 믿음의 행적은 다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장 2절에서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3장 15~16절에서 다시 한 번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큰 민족을 이루려면 먼저 아기가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을 들은 후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록 아브람은 아기를 갖지 못합니다. 그러자 아브람은 갈등을 겪기 시작했고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
아브람이 이렇게 의심하게 된 이유는 그의 나이 때문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조건이 있을 때에는 ‘언젠가는 낳겠지’라고 기대할 수 있지만, 이제 아내도 나이가 들어 경수가 끊어지고 더 이상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상태가 되자 그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면 불안이 찾아오고, 불안이 찾아오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인간적인 생각을 합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믿음에서 현실로 돌아옵니다.
아브람의 인간적인 생각은 양자를 삼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양자라도 삼아서 하나님의 약속과 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창15:3그가 이처럼 생각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취되고 실현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그 당시 통용되던 일반적인 방법대로 그의 종을 양자로 삼아서 대를 이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람의 성급한 판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셨던 섭리의 깊은 뜻을 아브람이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창15:4하나님께서는 10년을 기다린 아브람에게 ‘더 기다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아브람은 15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지 25년이 지나서야 응답을 받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은 조급한 마음 때문입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당장 달라고 조릅니다. 그래서 믿음이 익을 시간이 없습니다. 믿음이 성숙하지 않고 항상 설익은 상태에서, 아무 기적도 능력도 나타나지 않는 채로 살아갑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4장 17절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우리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최대의 적은 불신앙과 두려움입니다. 여러분이 약속을 믿지 않고 의심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 모든 회의와 불신앙과 염려와 근심들이 여러분 안에서 떠나기를 축원합니다.
4절에서 더 깊게 봐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이 곧 하나님의 생각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잘못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뜻을 바꿔서라도 내 뜻을 이뤄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무서운 불신앙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55:8사람들은 편안하고 넓은 길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길은 좁은 길이요 고통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넓은 길에는 멸망이 있으며 좁은 길에는 영생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가 가능한가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아이를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불가능 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에 관심이 있으실까요? 하나님의 관심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우리의 믿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믿으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1백세에는 해산이 전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 나이까지 약속을 이루지 않고 끌어 오셨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아브람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상황에서 아기를 낳는 것은 믿음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자연스런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는지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과연 믿음으로 행한 일이 무엇이며 과연 몇 번이나 믿음으로 행하셨습니까? 혹시 다 여러분의 이성과 상식으로 한 것은 아닙니까?
불가능하게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의 병이 고침 받고, 문제가 해결될 것을 믿습니까?
믿음으로 행하지 않았다면 기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불가능한 상황까지 이끄셔서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두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 훗날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보낼 터인데 그 메시아는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하고 동정녀에게서 탄생될 것이기에 임신이 불가능한 사라도 임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일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여러분의 믿음을 키워주기 위해서요, 두번째는 여러분이 알지 못했지만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과 역경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말씀의 약속과 현실의 부재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증거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2024년 10월 26일 오전 6: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