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북한을 위하여
북한의 주민들이 주체사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김정은 3대 우상 체제가 무너지게 하시며 북한 전역에 있는 김일성 우상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세워져 있었던 3천여 교회들이 다시 회복되게 하시고 김일성 동상이 세워진 그 자리에 장대현교회가 다시 일어서게 하여 주소서.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과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 받고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시고 그들이 속히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그날이 임하게 하시며 평화적 통일이 앞당겨지게 하소서.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탈북민들이 무사히 정착하여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쓰임 받게 하소서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창14:19-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가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14:19-20대적을 아브람 손에 붙이신 분이 누구십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멜기세덱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그 전쟁을 이기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든 믿음으로 하십시오.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영적 싸움은 씨름과 같습니다. 씨름은 두 사람이 몸을 밀착시킵니다. 서로 밀고 당기며 엎치락뒤치락 싸웁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마귀와 이렇게 싸웁니다.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아브람은 이 말에 “아멘!”하고 응답합니다. 그 응답이 바로 ‘십일조’였습니다. 멜기세덱이 찬송하라고 했더니만 아브람은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십일조라는 말이 여기서 처음 나옵니다.
그 전쟁에서 자신이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기적 같은 승리를 주신 것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드린 것이 십일조입니다. 이렇듯 십일조에는 찬송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후에 십일조가 율법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는 율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물질이 아니라 은혜요 감사요 감격입니다. 십일조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벌 받으니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도저히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란 뜻이 무엇입니까? 물질 혹은 돈입니다. 인간은 물질의 노예입니다. 물질로 만들어진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물질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세계관은 유물사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본 것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있기에 옷이 필요하고 먹어야하고 잠을 자야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자기 육신을 잠재울 수 있는 집, 배불릴 수 있는 음식, 입힐 수 있는 옷입니다.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누가 더 좋은 옷을 입고, 누가 더 좋은 집에 살고, 누가 더 좋은 음식을 먹느냐가 우리 인간이 평생 가지고 사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물질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배 고프면 행복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배부르다고 행복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허무하고 더 고독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물질적일 수밖에 없고 물질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소유했다고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짐승이나 동물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영적 존재이기에 물질 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영적인 만족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영적인 만족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셔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옷도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고 먹을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는 날에는 짐승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물질의 종살이를 피해 갈 수 있겠습니까? 그 해답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물질을 초월하게 됩니다. 초월이라는 것은 무시와 다릅니다. 물질을 초월한다는 것은 물질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물질로부터 자유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돈이 나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돈을 쓰게 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사람은 돈 주면 해결되는 사람입니다. 제일 쉽고 단순한 방법이 돈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사람은 돈으로 해결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요컨대 돈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모두 물질적입니다.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으로 살 때에 물질로부터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너무 고마워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립니다. 십일조란 물질로부터 자유함의 표시입니다. 십일조를 내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절대 십일조를 드리지 못합니다.
두번째는 물질에 대한 자유함 입니다.
돈이 나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하면 물질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축복이 옵니다.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창14:21소돔 왕이 자기 백성들을 구해준 아브람에게 ‘사람은 내게 보내고 전리품을 비롯한 물질은 다 네가 가지라’고 제안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방법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마움을 돈으로 해결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22~23절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창14:22-23믿음의 사람 아브람의 태도는 단호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호의를 거절하겠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아브함이 어떻게 하여 그 많은 전리품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요?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27:25아브람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을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12:1-3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에 꺼져도 하나님의 약속은 일점일획 남김없이 이루어 질 것을 믿었고, 또한 지금 큰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창14:14아브람이 듣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창24:1"그가 이르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창24:34-35‘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돈이야 어떻게 벌든 잘 쓰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돈을 개같이 벌어서는 안됩니다. 주일을 범하고 거짓말 해가면서 번 돈으로 헌금합니까? 그것으로 하나님께서는 결코 영광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동정 받을만한 거지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과부의 엽전 두 닢을 귀중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액수를 중요시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금에 희생이 있고 감사가 있는가를 보십니다. 얼마를 내든지 우리의 삶에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 내는 것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 많은 사람이 희생 없이 내는 돈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눈물과 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부의 엽전 두 닢은 그녀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습니다. 그것을 바치면 당장 굶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헌금을 기뻐하십니다. 희생이 있는 헌금, 눈물의 헌금을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아브람의 십일조는 자기포기를 선언하는 것이며 물질의 종이 되지 않겠다는 선포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설 자리와 안 설 자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쓸 돈과 쓰지 말아야 할 돈을 아는 사람입니다. 돈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 거절합니다.
아브라함은 잘 되어도 하나님 때문에 잘 되어서, 부자가 되어도 하나님 때문에 부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했습니다. 사람 때문에 잘 되었다는 말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습니다.
모든 전리품을 다 돌려주고 나니, 롯의 것은 롯이 다 가지고 가고 소돔 왕의 것은 소돔 왕이 다 가지고 가니 생명을 걸고 싸운 아브람은 아무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창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 큰 것을 주십니다. 여러분과 저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이 그렇게 하니 소돔 왕이 감동을 받습니다.
이 전리품은 아브람이 가져야 하는데, 하나도 손대지 않고 다 내게 주는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름을 선전했습니다.
존귀한 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선전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결국 존귀한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살려주신 목적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목적도 하나님을 선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틈에 사는 우리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존귀한 사람의 삶입니다.
한 수도원에 많은 수도원생들이 있었는데, 원장님이 한 학생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우리 원장님은 편애를 하신다.”라며 그 학생을 질투했습니다. 그것을 눈치 챈 원장님이 모든 수도원생들을 불러서 새 한 마리씩 나누어 주며 말했습니다.
“너희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가서 이 새를 죽이고 오너라.”
모든 학생들이 새를 죽였으나 그 학생은 살아 있는 새를 그냥 가지고 왔습니다. 모두 “저놈이 원장님 말씀에 불순종했다.”라며 수군거렸습니다. 원장님이 그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왜 그 새를 죽이지 않고 그냥 갖고 왔느냐?”
“원장님,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어디에 가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셔서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때 모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 저 아이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구나. 원장님이 저 아이를 사랑하시는 이유가 있었구나.”
장사가 잘 되는 집은 그 이유가 있습니다. 장사가 잘 되다가 손님이 끊어진 집도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큰 복을 받은 데도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며, 말씀을 따라 살고, 하나님을 상대해서 살면, 오늘의 아브라함으로 존귀하게 될 줄 믿습니다.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창14:24아브람은 자기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자들의 분깃을 요구하였습니다. 아브람 자신은 재물에 대한 미련이 조금도 없었지만, 그와 동맹한 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차지할 몫에 대한 권리까지 포기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스스로 자원해서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원하여 스스로 헌신하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몬1:8-14우리가 예수 믿는 것,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나님이 청천벽력을 치고 위협을 하면 세상에서 하나님을 안 믿을 사람이 없겠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억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넘쳐서 기쁨으로 섬길 때 하나님께 우리에게도 기쁨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브람처럼 자원하여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되 다른 사람이 마땅히 받을 권리를 포기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 성숙한 인격의 신앙인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년 10월 24일 오전 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