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한국교회에 성령의 새 바람을 보내셔서 교회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회복을 넘어 부흥을 경험하게 하소서.
분열된 한국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 하나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한국교회를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하사 어두운 세상에 영적 대안을 제시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창14:13-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창14:13아브람이 자기를 떠난 롯이 소돔이 전쟁에서 패망했을 때 그들과 함께 집과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노략질 당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의 고민은 여기부터 시작됩니다.
롯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의 도움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그를 불편하게 하며 고통을 주고 손해를 끼쳤던 사람이었습니다. 롯이 떠난 후에 아브람은 얼마간 속이 시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떠난 롯이 계속해서 잘 살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우리는 가끔 이런 경험을 합니다.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나에게 큰 아픔을 주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잘 살기는 커녕 암에 걸려 다 죽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괴롭힘을 당했던 사람의 마음이 어떨까요?
‘속 시원하군, 참 잘 당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세상의 질서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비록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려움을 주고 떠난 사람이라도 그가 위기에 처해 어려워 할 때 같이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람이 바로 이러한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람은 조카 롯이 소돔을 선택했다가 절대적인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무관심할 수 없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에 빠졌을 때 ‘행동하는 것’입니다. 설령 그 사람이 나에게 해코지 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아브람은 롯을 끝까지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조카 롯이 욕심에 눈이 어두워 의리도, 은혜도 다 버리고 떠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변함없이 롯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롯이 포로로 끌려가자 아브람은 목숨을 걸고 롯을 구해 줍니다. 그 전쟁에서 패하면 자기가 죽는 것을 알면서도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그만큼 아브람은 변하지 않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값진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께서……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3:1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해도 그것을 다 덮어주고 수제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저 또한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늘 용서하시고 오늘까지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택하신 사람은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아브람도 한 번 사랑한 조카 롯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좋은 친구는 변하지 않는 친구입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아들에게는 친구가 열 명이나 되었지만 아버지에게는 친구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은근히 자신의 친구가 많은 것을 자랑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아, 네 친구들을 믿을 수 있니?”
“그럼요. 생명을 걸고 우정을 지키기로 한 친구들입니다.”
“그러면 우리 한 번 시험해 보자.”
아버지와 아들이 시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푹 삶은 다음 거적에 말았습니다. 그리고 깊은 밤에 아들이 그것을 등에 지고 친구 집을 찾아갔습니다. 아버지는 대문 밖에 숨어 있었습니다. 아들이 등에 진 짐을 내려놓으며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큰일 났네.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어. 여기에 있는 시체를 지금 산에 가서 파묻으려고 하는데 혼자 가기는 겁이 나네. 좀 도와주게.”
“미안하네. 난 그런 짓 못하네.”
그리고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들은 다른 친구들을 차례로 찾아가 보았지만 열 친구 중 도와주겠다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제 아버지 친구 집으로 가서 아버지가 친구를 불렀습니다.
“이 사람, 어떻게 하지?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네. 여기에 그 시체가 있네. 지금 산에 묻으러 가려고 하니 나를 좀 도와주게.”
“그러세. 자네 같은 사람이 어쩌다가 사람을 죽였나? 어서 가세. 내가 도와줄게.”
“이 사람아, 고맙네. 사실은 아들과 내가 연극을 한 걸세. 참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를 이 일을 통해 내 아들이 알게 되었네.”
그래서 그 친구 집에서 돼지고기를 먹으며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그런 친구를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친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우리의 친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이 나를 버려도 나를 버리지 않는 친구는 예수님이십니다.
어쨌든 우리가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사랑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 사랑이 변하지 않고, 가족 사랑이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창14:14-15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318명을 거느리고..
아브람은 유비무환의 자세로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소를 잃고 나서 외양간 고치지 말고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롯이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어도 군사가 없었다면 아브람은 그냥 가슴만 쳤을 것입니다. 준비된 군사가 있으니 기습 공격을 해서 롯을 구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힘을 길러야 합니다. 사람이 목숨을 거는 마음으로 하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대우 기업의 김규환 씨는 가난한 농부의 5대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돕던 그는 어머니가 편찮으셔도 약을 살 돈이 없으니 어머니의 약값을 벌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서 대우 기업에 사환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생각한 바가 있어 아침 출근 시간에 상관없이 5시에 출근해서 회사를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5시 이후에 출근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사장이 감동을 받아 그를 정식 사원으로 승진시켰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게 되든 부지런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괴롭히는 상사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 상사가 회사의 기계를 전부 다 깨끗이 닦으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는 2,612개의 기계를 다 뜯어서 하이타이로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그를 괴롭히며 “야, 이 새끼야.”라고 하던 그 상사의 말투가 그때부터 “김군”이나 “미스터 김”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하고 열심히 노력한 그가 지금은 5개 국어를 능통하게 하고 62개의 발명 특허를 낸 인재 중의 인재가 된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대접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박하고 방탕하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1장에 보면, 공주 같은 자, 왕자 같은 자가 비천한 자, 환난을 당한 자, 끌려 다니는 자가 되었는데, 그것은 음란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고 음란한 죄를 짓는 것은 그 결국을 생각하지 아니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그 더러움이 치마에 있다는 것은 음란한 죄를 말합니다.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면 그 결국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 결국을 생각하지 않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그 결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게으르면 그 결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일하면 그 결국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 준비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준비를 하고 살아야 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학교라고는 9개월밖에 다니지 않았지만 그의 슬로건은 “나는 준비하리라. 하나님이 쓰시리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책을 읽으며 열심히 공부하니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14~15절에서 한 가지 더 배울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이 자기 자신의 군사적 힘이 얼마나 큰 지 계산하지 않은 채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소돔과 고모라 왕도 패배했습니다. 그돌라오멜의 군대가 모든 족속들의 군대를 진멸했습니다. 그런데 고작 족장에 불과한 아브람이 군대가 있으면 얼마나 있으며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318명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계산했을 것입니다. 이 숫자 가지고는 어림도 없고 이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는 생각으로 자기를 설득했을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특징은 너무나 계산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성과 상식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성으로 따졌으면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너지 못했을 것입니다. 상식으로 따지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질 수 없으셨습니다.
믿음으로 행한 것만이 남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주머니 사정이 좋으냐 나쁘냐는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혹은 믿음의 사람이 선택할 길인가’ 입니다.
손해 보는 일이거나 내 힘으로는 역부족일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하는 것입니다. 하다가 쓰러질지라도, 가다가 포기할지라도 나는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했던 사람이 위기에 빠졌을 때 손을 펴서 도와주고 나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을 용서하는 믿음을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감당하기에 불가능한 일이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318명의 가신이라도 끌고 가서 조카를 구원하고자 하는 그런 믿음의 행동이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가 구원에 실패했다면 아브람도 롯과 똑같이 모든 것을 잃고 망하게 됩니다. 그런 모든 위험을 알면서도 아브람은 318명을 데리고 달려갔습니다. 그는 밤을 선택합니다. 숫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밤에 습격을 해서 그돌라오멜의 동맹군들을 순식간에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박까지 몰아냅니다.
2024년 10월 20일 오후 12: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