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동성애를 두고 기도합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문화적 기류가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미디어를 통해 미화되는 동성애의 실체가 드러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들이 동성애에 빠지지 않도록 가정과 교회가 더욱 깨어 가르치며 기도하게 하소서.
한국교회가 성령 안에 하나 되어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막아내게 하시고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소서.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위하여 진을 쳤더니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창14:1-1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창14:1-2싸우니라. 전쟁은 이 지구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전쟁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싫어하는 전쟁은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섭고 잔인하고 파괴적인 수많은 전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전쟁을 겪었던 나라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우리 가정 안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전쟁, 자녀들과의 전쟁, 자신들이 원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서로 부딪히고 상처주고 괴롭히는 전쟁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 깊은 전쟁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내 안에서 여러 마음이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은 그것이 내 마음에 있든지, 가정에 있든지, 민족이나 국가 간에 있든지 그 패턴은 모두 똑같습니다.
모든 전쟁의 뿌리는 죄입니다. 죄가 있기에 전쟁이 쉬지 않고 계속되는 것입니다. 약1:14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합니다.
인간 속에 있는 욕망과 욕심, 갖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남을 이용하고 조종하며, 당을 짓고 서로 투쟁하는 것입니다.
아브람 당시에도 잔인하고 살벌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먼저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창14:1여기에 나오는 네 명의 왕들이 한 그룹이 되어 있습니다. 현대의 모든 전쟁은 단독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동맹군이나 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와 싸우고 있습니까? 바로 2절부터 나오는 왕들입니다.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창14:2커다란 두 개의 그룹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들의 전쟁터는 싯딤 골짜기 인데 지금 말하자면 염해 곧 ‘사해’라고 하는 곳입니다.
전쟁의 뿌리는 죄에서부터 옵니다. 죄의 깊은 곳에는 인간의 탐욕, 즉 남을 이기고자 빼앗고 지배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급기야는 이것이 집단적으로 나타나 다른 이들을 착취하고 싸우는 전쟁의 모습으로 인류사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전쟁의 형태는 동맹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는 ‘패거리’ 싸움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골목에서 싸운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가지고 놀 것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땅따먹기, 딱지놀이, 구슬치기, 연 날리기, 고무줄놀이 등을 하면서 놀던 중에 아마도 제일 신났던 것이 바로 동네 패싸움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동네 골목싸움을 하다가 조금 발전하면 학교에 들어가서 패싸움을 하게 되며, 어른이 되면 바로 그것이 깡패조직싸움이 됩니다. 이것이 당파싸움이나 정당싸움으로 변하며 이것이 좀 더 커지면 부족끼리, 나라끼리 피투성이가 되게 싸웁니다. 이것이 전쟁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배우는 또 하나의 사실은 아브람의 시대에도 똑같은 형태의 싸움이 있었는데 그들의 싸움의 원인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4절에 그 질문에 대한 힌트가 있습니다.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창14:4이 싸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돌라오멜은 군사력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소돔의 왕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그돌라오멜 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그들을 섬겨왔습니다. 그것이 12년간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이 감사해서 섬겼을까요? 힘이 없으니까 할 수 없어서 섬긴 것입니다. 이를 갈면서 고개 숙이고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내가 힘만 생겨봐라. 반드시 복수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을 잘 듣는다고 정말 잘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소돔 왕들은 12년 동안 칼을 갈았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힘과 세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13년이 되던 해 드디어 고개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을 배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반이라고 할 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신의를 잃어버린 것을 의미하지만 배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12년 동안 억울하게 당해온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복수하려고 하며 때가 되면 그들을 정복하고 이겨보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배반을 당했다는 뜻은 내가 배반을 했다는 뜻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 사람이 가만히 있는데 배신을 했을까요? 그만큼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보는 전쟁입니다.
배반한 자와 배반을 당한 자가 서로 입장이 다릅니다. 두 사람의 입장은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했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배신을 당한 그돌라오멜의 입장에서는 ‘내가 12년 동안 봐주고 키워났더니 이제 감히 네가 나를 배반해?’하며 화가 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돌라오멜 왕이 이대로 볼 수 없다며 혼내줄 생각을 했습니다. 드디어 그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창14:5-7그돌라오멜과 동맹한 왕들은 르바 족소, 수스 족속, 엠 족속, 호리 족속, 아말렉 족속과 아모리 족속들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다섯 동맹 왕들을 치려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위하여 진을 쳤더니"
창14:8왜 전쟁이 일어났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소돔 왕 그룹에서는 12년 동안 억울하게 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돌라오멜의 입장에서는 ‘이제 좀 네가 컸다고 나에게 반항하는구나. 이 못된 놈!’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양쪽 논리에는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가정의 불화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남편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고, 부인 말을 들으면 그 말도 맞습니다. 자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소리 지르며 가출하는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 나름대로 자식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속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이 모든 투쟁, 싸움, 상처의 깊은 곳에는 ‘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전쟁은 ‘내’가 살면 ‘너’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권력을 갖게 되면 그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은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질서입니다.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창14:9드디어 접전에서 교전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죽거나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전쟁의 비참한 결과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창14:10이제 전쟁의 결과가 드러났습니다. 그돌라오멜 동맹군이 승리했고 소돔 왕 동맹군은 패하게 되었습니다. 소돔 왕 동맹군의 군사들은 싯딤 골짜기 구덩이에 빠졌으며 나머지 군사들은 패잔병이 되어 산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도망하는 사람, 패잔병들의 신세를 아십니까? 전쟁에서 졌다는 것은 자신의 어느 일부를 잃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라나 땅이나 집, 인권과 자유까지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소돔과 고모라는 어떤 땅이었습니까? 성경에 보면 화려하고 멋있고 매력있는 도시였습니다. 13장에서는 이 소돔과 고모라를 가리켜 ‘물댄 동산 같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같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답던지 롯이 홀딱 빠져버려서 겁 없이 뛰어든 땅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 땅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는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를 가리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3장 13절입니다.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그렇게 아름답고 화려하고 살만한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가 겉보기엔 아름다웠을지 모르나 그 안에 사는 사람은 악했습니다. 얼마나 악했냐하면 성적이나 도덕적으로 너무나 타락해서 하나님이 불과 유황으로 진멸해버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화려함을 보지 그들의 도덕성을 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멋있는 껍데기를 중요시 하며 삽니다.
2024년 10월 18일 오전 6: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