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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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시니어 세대를 위하여

1.

시니어 세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닮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르기까지 영적인 성장을 멈추지 않게 하소서.

2.

현재의 삶이 지나온 삶보다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시고 주님 주신 사명이 말씀 앞에서 날마다 갱신되며 그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영육 간에 강건케 하소서.

3.

시니어 세대가 가진 깊은 영성과 지혜와 믿음이 다음 세대에게 흘러가게 하시고 교회 안에 살아 있는 모범과 소망이 되게 하소서.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창13:12-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창13:12

아브람이 끝까지 거주한 땅은 바로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그 땅을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롯은 어떠합니까? 롯은 세상과 물질을 따라가며 인간적인 행복을 추구했습니다.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표현은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라는 말입니다. 물질을 택하면 마침내 ‘소돔까지’ 갑니다. 처음부터 그곳까지 갈 마음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곳까지 가고 맙니다.

이 길은 멸망의 길이요, 심판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넓은 길은 인기 있는 길로서 많은 사람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좁은 길은 사람들이 피하는 길이요, 가지 않으려고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좁은 길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창13: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는 시실이 룻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가 세속성에 빠져 들어가는 단계를 주목해 보십시오. 롯이 처음부터 소돔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장막을 옮겨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물렀으나, 곧 장막을 옮겨 소돔에 거하고, 마침내 권세의 위치인 소돔 성문에 앉게 되었습니다. 곧 불바다가 되어 멸망할 도성에서 소위 성공하고 출세했습니다.

눈에는 보이는 것을 따라갈 때 안목의 정욕에 속을 수 있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았을 때 풍성함 자체로 보았습니다. 요단 들을 바라본즉 풍성함 자체였습니다. 그곳이 여호와 앞에 죄인의 땅이었지만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것과 쾌락 뒤에는 항상 죄가 있습니다. 넓은 길 뒤에는 멸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좁은 길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불편하다고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편하다고 평안을 얻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미련해서 항상 넓고 편하고 좋은 것만 선택합니다. 여러분들은 매일매일 어디에 기준을 두고 선택하며 사십니까? 그것이 영원한 것입니까? 잠시 후에 불태워질 것입니까?

롯은 아브람을 떠났습니다. 아브람은 홀로 남았습니다. 신앙은 항상 홀로 남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지면 고독해지고 외로와 집니다. 신앙을 가지면 인기를 잃어버립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는 교훈이 많지만,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는 아무리 정을 주고받으며 사랑으로 얽혀 사는 가족이나 친구라도 영원히 함께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때가 되면 헤어져야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도, 딸도 없습니다. 아내 사라가 잉태하지 못하니 롯은 아브라함에게 아들같이 귀한 조카, 헤어지기 싫은 조카인데 화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직장 때문에 또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떼어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아들딸이 유학을 가기도 하고, 때로는 자식들 뒷바라지 한다며 아내까지 따라가서 혼자 사는 기러기 아빠들도 있습니다. 자식들은 장성하면 직장을 찾아, 결혼을 해서 떠나게 됩니다. 떠나보내야 할 때는 떠나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큰 아들 에서보다 작은아들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야곱은 부엌에서 불도 때고 설거지도 하면서 언제나 엄마를 도왔지만 에서는 사냥만 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니 리브가는 야곱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함께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하니 할 수 없이 야곱을 멀리 보냅니다. 그리고 다시 야곱을 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요나단과 다윗은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이지만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그렇게 헤어진 후 요나단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으니 다시는 다윗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남편도, 아내도 세상을 떠납니다. 자식이 먼저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헤어지기 전에, 떠나보내기 전에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살아야 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하는 숙제를 냈습니다. 한 아이가 ‘독신자’라는 답을 써 왔습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왜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냐?”

“저는 몰라요. 아빠가 그렇게 써 줬어요.”

그 아이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얼마나 달달 볶았으면 그 아버지가 그런 답을 써 주었겠습니까?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배려하면 그 집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희생하지 않고는 가정이 행복할 수 없고 교회가 화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가장 큰 사랑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나무는 어릴 때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아이들에게도 어릴 때부터 믿음을 심어 주고, 새벽기도와 십일조를 가르치고, 목사님과 장로님이 귀한 분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또 친구가 귀하면 친구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헤어질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끼리는 헤어져도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롯과 같은 과오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롯은 아버지 같은 삼촌을, 몇 십 년간 자기를 사랑으로 보호해 준 후견인이요 보호자인 아브람을 배신했습니다. 의리와 도리와 은혜를 저버리고 욕심에 눈이 어두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비옥한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런 그가 잘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의 예배와 기도가 점점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본문 12절에 보면, 평지를 선택했던 롯이 소돔까지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소돔과 고모라의 음란한 행실로 인하여 롯의 의로운 심령이 고통을 받았으며 그러다 전쟁을 만나 전쟁 포로가 됩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구해 주어 회복되었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곳 생활에 깊숙이 젖어 삽니다. 소돔 고모라가 불 탈 때 그는 두 딸과 함께 그곳을 빠져 나오게 되지만 두 사위는 불에 타 죽고 아내는 소금기둥이 됩니다. 알거지가 된 그는 두 딸과 함께 토굴에서 살다가 딸과 잠자리를 같이 하여 자식을 낳는 부끄러운 사람이 됩니다. 좋은 땅을 택하여 잘 될 줄 알았겠지만,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복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만일 롯이 은혜를 알고 의리와 예의와 도리를 지켜서 “삼촌, 삼촌이 좋은 땅을 가지세요. 저는 이쪽으로 가겠어요.”라고 했으면 하나님께서 그곳에 복을 주셔서 롯이 잘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막에도 샘이 넘쳐흐르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좋지 않은 땅이었지만 아브라함은 그 땅에서 잘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황무지에도 꽃을 피우실 수가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골 소년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고아인 에스더를 왕비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집도 높이 세우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복 주실 곳에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선택을 합니다. 옷을 살 때도 어느 것이 귀한 옷인지, 하나님의 사람다운 옷인지 선택을 잘 할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가 일도 선택하고 만남도 선택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복 주실 사업과 직장을 선택하고 하나님께서 복 주실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내가 믿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이 그룹, 저 그룹에 들어가고, 아무나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영이 침체되고, 진주 같은 사람이라도 돌멩이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건 값은 사람이 매겨도 사람값은 자신이 매깁니다. 자기가 구별해서 값진 삶을 살면 값진 사람이 되고 막 살면 돌멩이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노는 물에 따라 그 물고기의 급이 결정됩니다. 인천 앞바다의 물고기가 아무리 “나는 깨끗해. 나는 깨끗해.”라고 한들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그러나 오염되지 않은 깊은 바다의 물고기는 가만히 있어도 “깨끗한 물고기구나.”라는 것을 사람들이 압니다.

우리 모두 귀한 사람을 만나고 귀한 일을 하며 선택을 잘 해서 후회하지 않고 자자손손이 잘되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또 받게 되는 교훈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욕심을 부리며 떠나가는 것을 보고 ‘내가 몇 십 년 동안 저를 사랑하고 아꼈는데, 이게 뭔가?’하며 공허함을 느끼고 인생의 쓴 잔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배신의 아픔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낙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롯에게 베푼 사랑과 섬김을 다 갚아주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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