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경과 생명을 위하여
온 인류가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여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대로 환경을 다스리게 하소서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낙태와 아동 학대 등 생명 경시 풍조가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환경과 생명을 위해 일하는 관계자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셔서 효율적인 정책이 세워지게 하시고 교회와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창12:6-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창12:6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거기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번쩍이는 황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동산 같은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가나안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가나안 사람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으면 만사형통하여야지. 어려움이 없어야지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이와는 다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신앙생활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고, 달려갈 길을 마쳐야 하고, 믿음을 지켜야 하는 전쟁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4:7-8선한 싸움을 싸우고 : 죄와 싸우고, 유혹과 싸우고, 세속과 싸우고, 영혼을 거스려 대적하는 육신의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딤전1:18-19달려갈 길을 마치고 : 하란이 좋다고 데라처럼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중간에서 멈추면 안됩니다. 한눈 팔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갈렙처럼 마지막까지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믿음을 지켰으니 : 신앙을 갖는 그 순간부터 마귀는 믿음을 빼앗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믿음을 날로 키워야 합니다.
믿음은 어떻게 큽니까? 신앙의 밥을 먹고 큽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민14:9똑같이 가나안 땅을 40일을 정탐했는데 누구는 두려워하고, 누구는 담대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았느냐, 육신의 눈으로 보았느냐의 차이에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밥을 먹어야 육신이 건강해 지는 것처럼, 영혼의 밥은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얼마나 많이해 보았느냐에 따라서 믿음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정복한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육신의 힘? 믿음의 힘?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은 믿음이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때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삼상17:34-37믿음을 갖는 순간부터 갖가지 영적 전쟁을 만납니다. 영적 전쟁은 가나안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마음에 있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이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믿음의 여행을 시작하려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내 안에 있는 옛 사람입니다. 옛 사람이 깨지고, 옛 사람이 무너지고, 옛 사람이 죽지 않으면 새 사람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의 옛사람과 피 눈물 나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과거와 나의 옛 사람을 죽이고, 자아가 깨지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 안에 이뤄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고생을 싫어합니다. 대가를 치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 것 하지 말고, 나를 죽이지 말고, 잘 좀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덧칠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덧칠을 하려고 합니다.
믿음은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사람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두려워 합니다. 그냥 잘만 되게 해달라고 합니다. 재수 좋게, 운수 좋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얻으면 믿음이 축복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십자가의 복음과는 말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이루어지고, 천국이 이루어지고,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옛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과거를 죽여야 합니다. 그것을 죽이지 않고 새 사람이 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나안 땅의 사람들과 싸울 수 밖에 없는 현실과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12:7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은 비전을 주시고 이제 또 한번 나타나십니다.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보니 가나안 사람들이 있는지라, 현실의 벽에 부딪혀 믿음이 흔들릴 때 나타나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실상 그곳은 가나안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네 땅이다’라고 해서 가보면 내 땅이 아닙니다. 그래서 당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땅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황홀한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 믿음의 세계가 아닙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믿음의 사람으로 변하지 않습니까? 왜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30년 전이나 똑같습니까? 바로 이 문제를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축복입니다. 고난도 축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탈출 시켰을 때 2주일만 곧장 가면 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할 것이지 왜 사십년을 광야에서 고생하게 하셨습니까? 그 이유를 ‘너를 낮추시고 너를 시험하사 네가 내 말을 듣는지 알려 하심이라’라고 신명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런 시련을 자꾸 주셨습니다.
7절에 보면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이 땅은 네 땅이라는 비전과 믿음을 확인시켜 주셨을 때 아브람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인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배를 드립니다.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예배 가운데 머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예배의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봉사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사람들을 보면 예배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역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사역은 예배에서 흘러나오는 결과일 뿐입니다. 사역을 계속하게 되면 탈진하게 되고, 교만하게 되고, 자고하게 되고, 우쭐하게 됩니다.
얼마나 믿음이 있느냐는 얼마나 그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많이 했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예배 가운데 깊이 들어갔느냐는 것입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사역을 하는 사람은 절대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배 없이 사역을 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하고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8, 9절을 읽겠습니다.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창12:8-9‘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고 기록합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출20:24세상에는 자기 이름을 드려 내려는 사람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11:4자기 기념비의 운명 : 사울 왕과 압살롬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이켜 행하여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삼상15:12다윗이 골리앗과 싸운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17:45십계명 중 제3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20:7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시91:14하나님이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을 높이신 이유?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주의 이름을 높이는 자는 높임을 받으리로다
예배를 드리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예배가 있는 곳에 여호와의 이름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기념하는 곳이 제단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며,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때 예배가 이뤄지는 줄 믿습니다.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이 많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모든 이름 위에 높임을 받으시고 존귀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이름이 그분의 이름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영혼에 하나님의 이름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 꿇는 참된 예배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바로 그 곳이 성령이 기름 부으시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장소입니다.
2024년 10월 6일 오후 1: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