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다음 세대를 위하여

1.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용사들로 세워지게 하시며 젊은이들이 땀 흘려 수고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정의로운 나라가 되게 하소서.

2.

음란하고 혼탁한 문화, 각종 중독으로부터 저들의 생각과 육신을 지켜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해답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3.

기독교 가치로 세워진 미션스쿨의 신앙교육을 방해하려는 모든 악한 세력의 행보가 무너지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12: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12:1

창12장 1절에서 발견하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첫번째, 아브람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람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과거를 대담하게 버리라, 기득권을 버려라, 지금까지 설계해온 인생을 포기하라. 그러면 진정한 복된 나라, 약속의 땅을 보여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번째, ‘하나님이 아브람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입니다.

12장 이후에 나타나는 아브람의 행적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가 택함을 받을 만한 탁월함이나 믿음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우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하고 실수가 없어서 택한 것이 아니고 믿음이 있어서 택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도 아니고 즉흥적인 선택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택하여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내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또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믿음 없음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무조건 사랑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에는 조건이나 이유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데는 조건이 없습니다.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보상할 수 없는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때려서라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사랑’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한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원망이나 불평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말이 있다면 ‘황송합니다. 죄송합니다.’이런 말뿐일 것입니다.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을 가르칠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 자격도 없는 나를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엡2:8-9

우리를 은혜로 택하여 주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떠나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 장사였고, 아브람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로 이라크 남부 지역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아브람이 살던 당시 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자기가 살던 곳, 자신에게 익숙한 곳을 떠나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 다른 민족에게로 떠난다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75세 때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상이 가득한 곳에서, 우상을 섬기는 친척들에게서 떠나야 축복의 조상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깡패 조직에서 뒹굴던 다니엘이라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목사의 아들인 네가 언제까지 이렇게 깡패로 살 거냐?’

그는 깡패 조직에서 떠나 열심히 공부하여 지금은 미 연방 정부의 검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검사 팔천 명 중에서 열 명을 뽑는데 거기에 뽑힐 정도로 빛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깡패 조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될 수 없었습니다.

김유신 장군이 좋아하는 술집 기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라를 위해 일할 내가 여자의 품에서 썩고 있구나. 내 젊음, 내 삶의 모든 힘이 여기에서 썩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여자를 떠납니다. 그런데 하루는 말을 타고 졸다 보니 자기 말이 습관을 따라 그 기생의 집 앞에 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기생이 뛰어나와 “서방님!”하며 김유신 장군을 환영합니다. 그는 유혹을 받습니다.

‘이러다가는 나의 결심이 도루묵이 되겠구나.’

그는 칼을 뽑아 말의 목을 치고 그곳을 떠납니다. 그렇게 비장한 행동을 하니 그 유명한 김유신 장군이 된 것입니다.

한 목사님은 바둑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매일 서너 시간씩 친구와 함께 바둑을 두었습니다. 하루는 기도를 하는데 눈앞에 바둑판이 왔다 갔다 하더니 “성경을 하루에 한 시간도 못 읽는 네가 바둑은 어떻게 몇 시간씩 하느냐?”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목사님은 바둑판을 도끼로 패서 불 태워버린 후 바둑하던 그 시간에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후 훌륭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가책을 받는 분이 계십니까?

‘나는 그곳을 떠나야 해. 나는 그 사람을 떠나야 해.’하는 감동을 받을 때 거기에서 떠나야 축복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말씀하십니다. “거기에서 떠나라.”

거기에서 떠날 때 축복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얽어매는 것을 떠나야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떠나야 할 것이 있는 분들은 오늘 이 시간에 결단해서 떠나기를 바랍니다. 끈에 묶여 있는 새는 아무리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떠나야 할 그것을 떠나야 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인도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아, 이제 가나안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가야 할 땅을 앞으로 보여 주겠으니 본토를 떠나서 가라는 것입니다. 주소도 없이, 지도도 없이, 나침반도 없이 하나님만 믿고 그냥 가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막연합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만 믿고 좇아갔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창12:4

이 말씀 속에서 또 한가지 발견하는 사실은 믿음은 확실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증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땅’이 아니라 ‘보여줄 땅’입니다. 참된 믿음은 내용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11:8

새로 출발한다는 것에는 참으로 많은 모험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우리의 시작은 미숙합니다.

‘과연 가능할까?’ 새출발은 멋지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여러분은 바른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늦게 가든 일찍 가든 그 길을 곧바로 간다면 영광스러운 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넘어지고 깨어져 힘들지만 믿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떠나 미래로 가고,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죄를 떠나 거룩으로 갑니다. 이것이 믿음의 여행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믿음의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서 발목이 잡힐 뻔 했지만 그는 믿음의 행진을 계속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가고 있는 그 길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원하는 그 길입니까? 아니면 도중하차해서 쉬고 계십니까?

여러분, 아무리 멋있고 화려한 유혹이 있다고 할지라도 빨리 그 길을 벗어나 고통스럽고 힘들지라도 그 길을 가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화려한 땅은 아닙니다. 전쟁과 개척을 거쳐야만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힘든 상황이 있고 손해보고 생기는 유익이 없어도 여러분이 그 곳에 있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우리는 그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있는 곳이 모든 것이 풍성하고 좋은 곳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뜻이 아니거든 그 자리를 떠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기는 아빠 엄마와 손을 잡으면 “어디로 어떻게 가는 거야? 비행기로 가는 거야, 기차로 가는 거야, 버스로 가는 거야? 주소가 뭐야?”라고 묻지 않고 그냥 아빠 엄마를 따라갑니다. 그래서 미국에도 따라가고 일본에도 따라갑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름을 불러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이제 자신의 장래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미래를 나는 모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그냥 따라가야 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잘 믿었지만 망했습니다. 일곱 아들과 세 딸이 다 죽고 재산도 다 없어지고 몸에는 병이 왔습니다. 아내마저 떠나갔습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을 따라갔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23:10

괴롭고 아프고 비참하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면 마침내 정금같이 될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드디어 정금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실패하고 패배하여 죽음을 생각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욥기를 읽고 힘을 얻어 다시 살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기가 엄마를 따라가듯이, 쇠붙이가 자석에 이끌리듯이, 우리는 하나님께 이끌려 가야 됩니다. 해바라기가 해를 향해 움직이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어머니 같은 성령님, 아버지 같은 하나님의 팔에 잡혀 지시하는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한국인 성악가인 킴 윅스는 장님입니다. 6.25 때 두 눈을 잃고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한 미군의 도움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여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빌리 그레함 목사님의 집회에 함께 다니며 찬양과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때마다 이런 간증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소경입니다. 저를 인도해 주는 사람이 제게 100m 앞에, 50m 앞에 무언가가 있다고 알려 주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 계단이 있으니 발을 올리라고, 바로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만 말해 줍니다. 저는 그것을 믿고 그대로 따라 오늘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한 달 뒤, 10년 뒤, 20년 뒤의 일을 알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일제 시대 때 해남의 한 여인이 남편 없이 홀로 두 아들을 기르면서 신실하게 믿음 생활을 했습니다. 하루는 그의 두 아들이 대나무로 창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하고 있는데 그 지역의 유지이자 큰 부자가 말을 타고 그 길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지고 놀던 창이 말의 눈을 찌르는 바람에 말이 놀라 뛰는 사이에 부자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의 눈을 찌른 아들이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판사가 두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말의 눈을 찔렀느냐?”

형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말의 눈을 찔렀습니다.”

이어서 동생이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형이 찌른 것이 아니라 제가 제 창으로 찔렀습니다.”

판사가 바른대로 말하라고 호통을 쳐도 형제는 서로 자기가 찔렀다고 우겼습니다. 서로 자기가 사형을 당하겠다는 것입니다. 판사는 할 수 없어서 그들의 어머니를 데리고 왔습니다.

“부인, 나는 두 아들을 죽이기 싫소. 한 아들에게만 사형 선고를 내리고 싶은데 두 아들이 서로 자기가 말의 눈을 찔렀다고 하니 부인이 결정하시오. 큰아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까요? 작은아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까요?”

부인이 잠시 기도하더니, “작은아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려 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작은아들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오?”

“판사님, 제가 저의 남편에게 시집오기 전에 제 남편에게는 사별한 부인이 낳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 집에 와서 작은아들을 낳았는데 그 후 남편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 제가 두 아들을 기르고 있는데 두 아들 중 한 아들을 죽여야 한다면 어찌 큰아들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아니, 부인. 당신이 낳은 아들이 더 귀하지 않소?”

“그렇지요. 그러나 저는 교인입니다. 목사님께 배운 바로는 제 친아들을 죽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교회가 그리도 좋은 곳이오? 교회에 다니면 다 부인처럼 되오? 내 평생에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은 처음이오.”

판사가 그렇게 판결을 내린 다음 그 지역의 유지들을 모아 교회를 짓자고 해서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교회를 아름답게 지었다고 합니다.

그 부인이 자기 아들을 살리고 싶었지만 ‘네가 낳은 아들을 죽게 하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자기 아들도 살고 큰아들도 살았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헌금한 돈으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요, 우리의 나침반이요, 우리 인생의 지도다.”

여러분도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고 순종하여 복 받고 쓰임받고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년 9월 28일 오전 8:00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

달력 이동전체 목록목사님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