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과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 열방의 선교사로 나아가게 하소서.
다문화 가정을 축복하사 불신, 이혼, 폭력 등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성장하게 하소서.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사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창11:31-3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창11:31본문을 보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해 가고자 한 사람은 아브람이 아니고 데라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은 데라가 아니라 아브라함이었는데 창세기에서는 데라가 들은 것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히브리의 독특한 문화입니다. 아버지의 역사와 아들의 역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살아 있는 한, 아들이 했어도 아들의 역사가 아니라 아버지의 역사입니다. (예, 야곱이 살아있는 한 요셉의 역사는 야곱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그의 가족이 비록 문명은 발달했으나 이방 종교에 빠진 바벨론 땅에서 벗어나 미지의 땅인 가나안에서 새로운 가문을 형성하고 그곳에서 훈련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목적 아래서 볼 때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아브람과 그의 가족을 가나안에 들여보내기 위한 하나님의 안내자 임무를 수행한 사람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데라는 그의 아들 아브람과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라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본문은 왜 데라가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했는지 말하지 않지만, 데라와 그 일행이 갈대라 우르를 떠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야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15:7을"주는 하나님 야훼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라고 말씀합니다."
느9:7도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마 아브람에게 어떤 계시를 주셨고, 아브람이 아버지 데라를 설득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보면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고 말씀합니다."
행7:2을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도 하나님을 약간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불행한 일이나 며느리 사래가 잉태하지 못하는 근심거리를 통해 인생의 무능력함과 허무함을 느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아브람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지 않았을 것이며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데라는 아들 아브람의 말을 듣고 아들을 따라 나서기는 했지만 믿음의 길을 떠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데라가 죽은 다음에 아브라함을 본격적으로 떠나게 하십니다. 사람의 말만 듣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꼭 중도에 멈춘다는 사실입니다.
자기가 살던 곳, 자신에게 익숙한 곳을 떠난다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고 지방에서 서울로 옵니다. 아브람은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 다른 민족에게로 떠난다는 사실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민족과 고향을 떠납니다. 마치 이민을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이란 떠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주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결혼해서 지금까지 여러 번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를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하게 말년을 보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움직이기를 원하고 떠나가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고 모험을 하기 원합니다.
여러분,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지 아니하면 새 사람의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떠나지 않으면 시작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신앙의 갈등은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않고 새사람이 되려는데 있습니다. 떠나지 않고 출발하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믿음의 세계로 가려는 것 보다는 현재의 삶이 부서지지 않게 하려는데 신앙의 목적이 있습니다. ‘내 자녀, 내 사업을 도와주십시오.’ 그것을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이란 출발함에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과거의 쓴뿌리들이 나를 붙들어 놓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 두지 않고 출발을 시키셨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약속한 땅, 믿음의 땅이 아니므로 새로운 세계로 가기위해 기득권과 옛사람을 벗어버리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떠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두번째, ‘그들은 가나안 땅, 약속의 땅으로 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신앙이란 ‘~부터 ~에게로’입니다. 떠나는 것이 있어도 목적이 없으면 방황하게 됩니다. 떠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느 날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데라의 가족이 가려고 했던 곳은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의 땅으로 가는 과정에서 하란에 이르러 거기서 거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고속도로를 타고 강원도에 가다가 휴게소에 내려서 그 곳에서 기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휴게소에서 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목적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두신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 마라톤과 같습니다. 끊임없는 경주입니다. 항상 평탄하게 갈 수만 없습니다. 때로는 힘이 들고, 목이 마르고, 지치고, 쉬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뒤돌아서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할 곳은 골인지점입니다. 주변에 아무리 좋은 환경이 있고 안락한 곳이 있다고 해도 그곳에 머무르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곳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땅에는 기근이 있었습니다. 또 그곳에는 이미 일곱족속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환경은 좋았지만 그 땅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적인 전쟁을 해야 했고 옛사람을 몰아내야만 했습니다.
결코 신앙생활은 뜬구름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고,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고, 귀를 의심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계속 가는 것입니다.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창11:32데라는 끝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약속의 땅으로 가지 못하고 하란에서 죽었습니다. 데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사람은 시작할 수 있지만 끝을 맺지 못합니다.
힘들고 어려우면 도중에 포기하고 맙니다. 어떤 고난이나 위험도 무릅쓰고 약속의 땅을 향해 가야하는 동기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환경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데라가 칠십세에 아브람을 낳았고 창세기 12장 4절을 보면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칠십오세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데라의 나이는 약 1백 45세쯤 이었을 것입니다.
데라는 하란에서 머무르기를 주장했겠지만 아브람은 하란을 떠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아브람은 부인과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지만 데라는 하란에서 그의 인생을 마칩니다.
비전을 가진 자와 비전을 가지지 않은 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은 자의 차이입니다.
여러분도 예수 믿고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위해 하나님이 필요한 것인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전을 위해 내 삶이 쓰여지는지 심각한 영적투쟁을 하셔야 합니다.
적당히 살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직업을 가진 이유가 무엇인지, 결혼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면 후에는 비참한 결론을 맺게 됩니다.
여러분이 가고 있는 길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길입니까?
‘너는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듣고 아브람은 믿음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도중하차입니다. 잠깐 쉬어야 할 일을 영원한 것처럼 여기고 가는 목적을 잃어버리고 변경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데라와 아브람의 차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데라와 같이 살다가 죽습니다. 데라는 하나님이 원하는 곳에 가지 못하고 도중하차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시 다 이르지 못하고 중간에 서서 머무르면서, 이곳의 사람도 저곳의 사람도 아닌 방랑하는 방황자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지금 내가 약속의 땅을 향하여 전진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함께 출발했지만 아버지 데라도, 조카 롯도 결국은 하나님의 약속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옛사람이 죽지 않는 한 새사람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과거가 단절되지 않는 한 미래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부활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지 않고 부활하려고 합니다. 자존심도 상하지 않고, 옛사람의 모습도 가지고 있으면서 새 세상을 원합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죽지 않으면 새 사람은 절대 태어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고 부서지고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부도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부도로 인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두려워만 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거기에 소망과 희망과 기대와 새로운 출발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