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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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환우들을 위하여

1.

영적인 질병과 육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에게 평안과 회복의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더하사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승리하게 하소서.

2.

질병의 고통 중에서도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시고 성령님과 더욱 친밀한 삶을 통해 위로받고 새 힘을 얻게 하소서.

3.

절망과 자살 충동, 우울증과 조울증, 악한 영의 공격, 공황장애와 온갖 정신적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11:1-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창11:1

지금 지구촌에는 약 3,000가지 언어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언어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에덴 동산에는 오직 하나의 언어 밖에 없었습니다. 노아 시대 때도 언어가 하나뿐이었습니다. 니므롯이 왕이 되고 나라가 커진 그때에도 말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언어가 생겼습니까? 바벨탑을 쌓은 이후부터 언어가 나뉜 것입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라는 말은 같은 언어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 발음과 표현 방식에 있어서까지도 동일하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같은 언어라도 지역적 특성에 따라 함경도말, 경상도말, 전라도말, 충청도말, 제주도 말 등으로 방언이 나누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당시의 언어는 지역과 문화적 특성을 초월하여 같은 발음과 같은 언어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니 한 가족같이 서로의 동질감을 확인하며 공동체 의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마음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국제결혼을 한 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일상적인 대화는 하는데 마음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어서 힘들다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창11:2

1960년대에 에덴의 동쪽 이라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제임스 딘이 출연했고 유명한 소설이 원작인 영화입니다. 에덴의 동편은 가인의 후예인 인간이 사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서 에덴의 동편에서 자기의 이름으로 성을 쌓고, 인류의 문명을 시작했는데, 결국 이 문명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슬픈 인본주의 이야기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끊임없이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는 말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거부합니다. 자꾸만 하나님을 떠납니다.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자녀는 부모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부모에게 가까이 가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잘못한 것이 없는 자녀는 부모를 좋아합니다. 부모를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찬가지로 죄가 없는 인간은 하나님을 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만날수록 좋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더 만나고 싶어집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고 싶고 호흡을 함께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이 두렵고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 같고 비밀을 알고 계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쫓아갔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어도 멀찍이 믿습니다. 교회에도 가끔 나오고 예배가 끝나기도 전에 일찍 갑니다.

저는 여러분이 교회를 가깝게 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친구가 좋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친구가 부담스럽고 오히려 세상친구가 더 편하고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좋아합니다.

가인의 후예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기 위해 에덴동산에서부터 동쪽으로 가다가 만난 곳이 시날 땅입니다. 처음으로 사람이 살만한 곳을 만난 것입니다. 그들은 시날 땅에 머무르기로 하고 그곳에서 그들의 이상사회를 세우려는 야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여기고 살기 시작했던 곳이 바로 시날 땅입니다. 바벨론문화가 만들어 졌던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은 하나님을 피해서 살 수 없습니다. 하늘 끝에서도, 바다 끝에서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피해 숨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창11:3

바벨론 문화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벽돌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벽돌을 만들어 낸 것은 천지개벽 할 만큼 놀라운 사건입니다. 요즘 우리 시대의 위대한 발견은 바로 컴퓨터의 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싫든 좋든 컴퓨터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컴퓨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우리의 삶과 사고구조를 바꾸어 줍니다.

이 컴퓨터의 발견과 같이 그 당시에는 벽돌을 발견한 것처럼 놀라운 일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벽돌이 없었을 때의 사람들은 동굴 속이나 나무위에 살거나 돌을 옮겨와서 지은 집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돌은 운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돌집에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날 땅에서 많은 흙을 만나게 되었고 그 흙을 불에 구웠더니 아주 단단하고 쓸만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을 발견해서 누구든지 집을 견고하게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대혁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점토로 벽돌뿐만 아니라 그릇도, 항아리도 만들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시대에 흙으로 무엇을 만든다는 사건은 문화적인 발전과 기술이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자기들의 지혜와 기술로 인간의 위대함을 예찬했을 것입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11:4

벽돌을 만든 것은 당시의 문화적인 혁명이었고 그들의 사고 구조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발견이었습니다. 벽돌을 구워 집을 짓고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항아리를 만들어 사용하는 일은 삶의 질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발명품을 가지고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온 땅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합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과 존귀를 도적질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합니다. 경건한 무리로 출발했던 노아의 후손들이 점점 오염되어 결국 하나님 또 다른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인간은 핵을 만들었습니다. 핵은 전력을 공급하고 인류의 복지와 평안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서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핵으로 핵무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문명의 이기가 되어야할 핵폭탄 때문에 지금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핵무기의 위협아래 놓여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술문명의 한계입니다. 마치 사람들이 벽돌문화를 단순히 생활의 편리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벽돌문화를 현대적으로 적용시켜 보면 과학기술문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생명에 도전하는 ‘복제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과학기술은 엄청나게 발전되었습니다. 많은 기술들이 인간의 복지와 행복과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핵이 인간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었듯이 모든 과학기술문명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인간을 종으로 만들고 비인간화하며 행복을 앗아갑니다.

자동차가 편리하고 좋지만 자동차 때문에 생기는 공해와 스트레스는 엄청납니다. 문명의 이기는 이기가 아니라 악기입니다. 오히려 인간을 빨리 죽게 합니다.

2024년 9월 19일 오전 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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