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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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위하여

1.

한 영혼을 바라보며 목양에 힘쓰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지역사회를 복음화하는 데 귀하게 사용되는 능력의 종 되게 하소서.

2.

교회의 연약한 상황들로 인해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게 하시고 도시 교회들이 한 지체 의식으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돕는 데 열심을 내게 하소서.

3.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의 수고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많은 결실을 맺게 하시며 속한 지역에서 존경받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창10: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창10:1

사람들은 족보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뿌리를 확인해 보고 싶은 인간의 본능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당신의 고향은 이 세상이 아니고 하늘나라’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고향이나 족보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끝없는 신화와 족보에 착념치 말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딤전1:4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이야기와 분쟁과 율법과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딛3:9

족보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논쟁을 피하십시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혜로운 충고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오늘 창세기 10장은 족보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족보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족보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창10:1

여기서 딸들은 언급하지 않고 아들들만 언급한 것은 딸의 존재가 중요하기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을 통하여 혈통이 이어지기 때문에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만 기록한 것입니다.

창10장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어떻게 실현되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 창10-11장까지 이어지는 족보의 내용입니다.

둘째는 구속사적 관심인데요,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해 주실 것을 예언하셨는데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창10-11장까지 이어지는 족보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메시아, 여자의 후손의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첫 번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경건한 셋의 후손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홍수 심판 가운데서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셋의 후손 가운데에서 노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 가운데서 노아의 축복을 받은 셈의 후손으로 여자의 후손을 오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장자인 셈의 후손을 먼저 기록하지 않고 야벳을 미리 기록하고 이어서 함의 자녀들을 기록하고 마지막으로 구속사에 쓰임 받은 셈 족속을 기록한 것입니다.

노아의 자녀들은 이제 성경의 약속대로 흩어져서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9장 28절과 29절을 보십시오.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죽었더라는 말씀은 죄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죽음 또한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했으나 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죄는 오직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해결됩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태어난 인간들은 계속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죄가 관영해지자 하나님은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셨습니다. 인류는 노아시대의 홍수로 심판을 겪었지만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죄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녹과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노아의 족보는 죄 가운데서도 은혜를 누린 자의 족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결국 죽었습니다. 노아가 죽은 것처럼 우리 또한 언젠가는 죽습니다. 죽음을 이해할 때 삶이 의미가 있습니다. 죽음을 부인하면 삶은 비참해집니다.

여러분, 죽음은 인생의 최후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의 시작일 뿐입니다. 더 영광스러운 삶이 거기에 있다고 믿는 사람과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고 믿는 사람은 삶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전3:1-2

황금새라는 예쁘고 깜찍한 새가 있답니다. 이 황금새는 시베리아에서 알을 낳고 부화시켜 그 새끼를 기르는데 새끼들이 자립할 정도가 되면 엄마 새와 아빠 새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하와이로 날아간답니다. 이천 마일이 넘는 태평양 바닷길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계속해서 며칠간 날아가 하와이 섬에 내려 거기에서 산답니다.

그리고 그 새끼들은 남겨진 시베리아에서 아빠 엄마 새가 되어 알을 낳고 부화시켜 새끼들을 기릅니다. 그 새끼들이 자립하게 되면 그 아빠 새와 엄마 새 또한 이천 마일이 넘는 태평양을 날아 하와이 섬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황금새의 궤도입니다. 이 작은 새에게도 그런 궤도가 있는데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우리 인생에도 궤도가 있습니다. 모세가 물에서 건짐을 받고 40년간 공주의 아들로 궁궐에서 교육을 받고 40년간 광야에서 영성 훈련을 받습니다. 그리고 40년간 민족의 지도자로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이끕니다.

그 모든 것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모세의 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모세의 길을 정하시고 그렇게 모세를 쓰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시37:23

우리는 그냥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두시고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은 사도행전 13장을 읽다가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36절)’라는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답니다.

‘다윗은 왕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대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구나. 다윗은 성전을 짓도록 준비하는 일에,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목적을 주셨고 뜻을 주셨구나.’

그때부터 그는 목회를 새롭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따라 하니 목회가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펴내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에스더를 왕비로 만들어 주신 것은 하만의 압제 아래 다 죽게 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기 위함이었고, 모세를 바로의 궁궐에서 키우신 것은 그를 통하여 바로의 노예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을 이방 땅에서 로마 시민권자로 태어나게 하신 것은 이방인의 선교사로 만드시어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또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에게 주신 특별한 은사는 다 다릅니다.

노아의 사명은 방주를 만들어서 생명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록펠러의 사명은 큰 부자가 되어 곳곳마다 교회를 세워 많은 백성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록펠러의 사명은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을 잘 경영하여 돈을 많이 벌어 교회를 많이 세워서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목적인 것입니다.

슈바이처의 사명은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가서 일하는 것이지, 목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한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이 아니라 세계를 다니며 전도하는 목사님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의롭게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받은 소명이지만,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받은 소명은 다 다릅니다.

장로로 소명 받은 사람이 목사를 하면 망합니다. 목사로 소명 받은 사람이 장로를 해도 망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이루십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16:9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고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렘10:23

이 말씀은 인생길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죽음의 그 날이 오면 우리 인생의 막은 내리는 것입니다.

제게도, 여러분에게도 그 때가 오고 있습니다. 그 시간은 방학도 없고 휴식도 없습니다. 계속해서 우리에게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10

우리도 결국에는 “아! 내가 이렇게 날아가는구나!”하며 이 세상살이를 끝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하루하루를 귀하게 살아 그 날에 후회 없이 ‘내가 참 복되게 살았구나! 은혜롭게 살았구나!’라고 말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노아는 죽었고 세 자녀들은 흩어져서 종족을 번식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셈과 함과 야벳입니다.

창세기 10장에는 70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야벳의 속한 사람은 14명이고, 함에게 속한 계열의 사람은 30명입니다. 그리고 셈의 계열에 속한 사람은 26명입니다.

노아의 세 자녀는 흩어져서 종족을 번식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르렀습니다. 오늘날 모든 나라와 종족의 기원은 노아의 세 자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보면 지옥 그 자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옥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지옥을 만들었습니다. 지옥을 만드는 것은 죄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간에게 평안이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더욱 악해지고 음란해진다고 요한계시록은 말하고 있습니다. 음녀가 두 짐승을 타고 있습니다. 이 두 짐승은 정치와 경제적 짐승으로 세상을 혼란케 할 것입니다. 그 짐승을 타고 있는 것이 바로 음녀입니다. 바벨론을 타고 있는 세력이 바로 음란입니다.

이 세상은 끝없는 타락의 길로 갈 것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타락하며 물질을 추구하며 살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악해져 갑니다. 사람들은 더욱 더 우상을 숭배할 것이며 사람들을 죽이고 파멸할 것입니다. 이런 현실은 노아와 세 자녀들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8~24절을 보면 인류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 반항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믿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세상과 짝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세계 인구에 비례하면 기독교인은 그렇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지혜 있다고 하나 우둔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

반면에 놀랍게도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금만 영적인 눈을 뜨고 세상을 보면 오늘 우리의 사회는 얼마나 더럽고 추악하며 죄로 가득 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아의 후손가운데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024년 9월 14일 오전 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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