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경과 생명을 위하여
온 인류가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여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대로 환경을 다스리게 하소서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낙태와 아동 학대 등 생명 경시 풍조가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환경과 생명을 위해 일하는 관계자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셔서 효율적인 정책이 세워지게 하시고 교회와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창9:11-1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한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 하리라"
창9:11왜 이 말이 이렇게 중요할까요? 이 말에 어떤 의미가 있기에 노아와 계약을 해야만 했을까요?
자라를 보고 놀란 사람은 솥뚜껑을 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홍수로 세상이 멸망당하는 가운데서 구원 받은 노아와 그의 가족은 빗방울만 떨어져도 겁이 날 것입니다. 소낙비가 쏟아져도 ‘홍수가 나면 어떻게 하나?’하고 염려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걱정을 덜어 주시기 위해 무지개를 주신 것입니다.
“노아야, 무지개를 보아라. 땅을 멸한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무지개가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증거이니라.”
지역적으로, 국부적으로 홍수가 나는 것은 이 약속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은 지구 전체가 홍수로 망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이 물로 망하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노아는 구름이 덮이고 비가 쏟아지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가도 무지개를 보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지.’하며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는 세상을 엎어버리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무지개를 보시고 ‘내가 약속했지.’하시며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노아의 두려움을 하나님께서 없애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먹는 일, 잠자는 일, 옷을 입는 일, 직업을 갖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암에 걸려 보십시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사업에 실패를 했을 때, 자녀가 부모의 뜻대로 자라지 않고 제멋대로 자랐을 때 부모가 갖는 두려움, 남편에 대한 공포감, 아내에 대한 두려움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두려움입니다. 미래는 어느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와 좌절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돈이 있다고 안전하지 않습니다. 권력이 있다고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노아가 가졌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파괴된 현실을 보면서, 세상을 보면서 그가 가졌던 감정은 두려움과 공포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노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상담학자요, 심리학자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심정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네 하나님이다. 네가 나를 신뢰하고 나를 바라보면 이 모든 불안과 염려와 근심과 걱정은 다 사라질거야. 그리고 새로 시작해. 나를 의지하고, 나를 바라보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라.’ 그것이 11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의 결국은 무엇입니까? 안심입니다. 구원의 복은 죽음과 미래에 대해 안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안심하고 죽으시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은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병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죽으면 됩니다. 죽으면 다시 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특권은 ‘안심’입니다. 이것이 노아에게 필요했습니다. 두려움, 공포, 절망, 좌절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함께 미래의 세계를 향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여러분에게도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십니까? 사후 세계에 대한 평안함이 있으십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이 이것을 줍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안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하고, 실패하고, 건강하고, 병드는 것 때문에 감정이 얼마나 요동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됩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의 두려움을 치유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노아는 이 말씀을 듣고 미래에 대한 꿈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놀랍게도 성경 도처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늘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쫓기는 것 같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계속해서 용기와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를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몇 구절 읽어보고 싶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이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4:1, 18)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저는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려지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두려움이 다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두려움, 인간관계의 두려움, 부부관계의 두려움, 직장에 대한 두려움, 이런 두려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 몰아내시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께 속한 단어가 아닙니다.
요한일서 4장18절을 보십시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 불안, 근심, 좌절 같은 것들은 마귀가 몰래 우리의 영혼에 심어놓은 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내 안에 가득했던 안개와 같은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사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두려움 속에서 선택하는 것은 전부 실수투성이입니다. 공포와 쫓김, 당황함, 안절부절한 가운데서 무언가를 선택해 보십시오. 결과는 항상 비극적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두려움은 예수님이 완전히 해결해 주셨음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노아에게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4~7절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다시 시작하십시오. 오늘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어제까지의 좌절과 두려움에 미련을 갖지 마시고 하나님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여러분에게 전개될 것입니다.
세번째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물로 다시는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 약속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 증거가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9:13여기에 그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지개’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증거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때마다 무지개를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14,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창9:14-1513절에 ‘언약의 증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지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언약의 증거’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무지개가 내 언약의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9:16하나님은 무지개를 보면서 약속을 기억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13~15절을 읽으면서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왜 하나님이 이 이야기를 계속하실까?’마치 내가 어린아이, 혹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한번만 말해도 다 알 것 같은데 자꾸만 반복하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창9:17‘언약의 증거’라는 말이 또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무지개를 보면서 구원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약속을 보장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아시대에는 언약의 증거가 무지개 였기 때문에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구약의 무지개가 노아와 가족들에게 평안을 주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던 사건이 마귀를 쫓아내며, 음부의 세력을 몰아내며, 병을 물리치며,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내게서 다 떠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증거입니다. 구원의 증거는 바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 있습니다. 그래서 무지개가 언약의 증거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오늘 여러분들의 약속의 증거, 바로 갈보리 언덕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노아는 무지개를 바라보며 약속을 기억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증거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일5:5~8그렇습니다. 구약에는 무지개가 약속의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이후에는 십자가가 증거입니다. 성령이 증거입니다. 말씀이 증거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말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과 함께 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증인이 되시고, 그 십자가의 능력을 모든 분들이 체험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은 떠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미래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천국도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024년 9월 11일 오전 6: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