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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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세계 선교를 위하여

1.

선교사님들을 통하여 그 땅에 예배가 살아나게 하시고 복음의 씨앗이 심어진 곳마다 하나님의 때에 아름답게 열매 맺게 하소서.

2.

선교사님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해 주셔서 탁월한 선교 전략으로 접근하게 하시며 모든 질병과 풍토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3.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선교 현장을 예수님의 보혈로 덮으셔서 2만 8천여 명의 선교사님들이 사명 붙들고 사역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9: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9:1

드디어 대홍수의 심판이 끝났습니다. 물이 모두 빠지고 마른 땅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과 방주 안에 있던 모든 동물들로 하여금 밖으로 나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좋은 날이었겠습니까? 비도 그치고 지겹던 방주의 생활도 끝났습니다. 방주는 꼭 필요한 곳이지만 영원히 머물러 있을 곳은 아닙니다. 광야도, 세상도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지만 영원히 머물러 있을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방주에서 나와 땅을 밟는 순간에 경험하고 목격한 것은 무섭도록 참혹한 폐허였습니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에는 재라도 남지만 홍수가 지나간 자리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홍수가 나면 마실 물도 구할 수 없게 됩니다. 무려 1년이 넘는 기간 엄청난 홍수로 온 지구가 물에 잠겼으니 그 참혹함이 어떠했겠습니까? 남아 있는 것이나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방주에서 1년 만에 나온 노아가 부딪힌 현실입니다.

우리는 가끔 기대를 가지고 세상에 나가봅니다. 그러나 세상은 장미 빛을 가진 황홀한 곳이 아닙니다. 현실을 알면 알수록, 세상을 알면 알수록 현실과 세상은 참혹한 곳임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대홍수의 심판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비참했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비참한 폐허였습니다. 이 기막힌 절망과 폐허 속에서 노아가 생각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창8:20

기막힌 현실에서 노아가 한 일은 제사였습니다. 사람이 캄캄한 절망을 경험할 때 바라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물론 그 전에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교회도 다니고 하나님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이런 상황은 다릅니다. 암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회사가 부도직전에 있을 때, 집을 잃고 길거리로 쫓겨났을 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릅니다.

남자들은 모두 군대에 갑니다. 군대에 들어가서 하늘과 땅을 혼돈할 만큼 혼비백산하게 매를 맞고 일주일을 보낸 뒤 첫 주일을 맞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모아 교회에 데리고 갈 때 교회라는 말만 들어도 감동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교회의 겉모습만 보아도 눈물이 납니다. 딱딱한 의자에 앉았을 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감동의 예배를 드립니다. 이 예배는 그 전에 드렸던 예배와 너무나 다릅니다. 이 예배는 그전에 잘못 드렸던 예배에 대해서도 회개하게 합니다.

노아가 드린 예배가 이런 예배였습니다. 1년 동안 세상은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방주 밖으로 나온 그들은 폐허가 된 이 땅 위에서 하나님 외에는 생각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정결한 짐승을 잡아 정성스럽게 제단을 쌓았습니다. 진실함과 전심으로 드리는 예배가 노아가 드린 예배였습니다.

예배는 그저 왔다 갔다 하면서 습관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의 진지한 만남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많지만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진정한 예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이고, 교리적이고, 교파적이고, 의식적인 예배가 있을 뿐이기 때문에 자신도 세상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드렸던 예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막힌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 이 세상을 보십니까?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앞으로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예배는 죽음 앞에 서 있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예배는 나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그런 예배는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우리 민족은 보리 고개를 넘기면서 주린 배를 안고 교회에 와서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이때에 부르던 찬송이 있습니다. (찬373장)

1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 합니다

2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3내 걱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합소서

4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아멘

놀라운 사실은 이 어려움 속에서 한국교회에 가장 큰 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교회성장은 깡통을 들고 주먹밥을 먹으며 천막을 치고 살아야 했던 그때 가장 크게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했고 교회로 물밀듯이 몰려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80년대를 넘어오면서 올림픽을 개최하였고 90년대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화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회성장률이 제로 퍼센트입니다.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는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만과 사치와 오만 때문 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되고 오만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러자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렵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집중하여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예배할 때인 줄 믿습니다. 예배하면 회생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게 됩니다. 가난과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욜2:12-19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찾으시고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치스러운 예배나 부요한 예배를 원하지 않습니다. 진실하고 정직하며 간절한 예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부터 모이기를 힘씁시다. 하나님의 전에 모여서 간절히 부르짖읍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흡족하게 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 그 기막힌 심정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8장 21절을 한 번 더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창8:21

노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내가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오십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지 않거나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에는 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걸고 진실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드리는 예배에는 하나님께서 오십니다.

21절을 통해 예배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 땅을 심판하셨던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고 ‘내가 다시는 사람을 심판하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예배는 예배자를 바꿀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바꿉니다. 참된 예배는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곳에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러 오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예배가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예배가 되기 바라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복을 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9장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9:1

우리는 9장 1절에서 하나님이 노아에게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세 가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생육하는 복, 번성하는 복, 땅에 충만한 복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셨을 때 저주받도록 만들지 않았습니다. 가난하고 불행하도록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창세기 1장 28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과 저주는 범죄의 산물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7-19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이 저주를 제하고 아브라함을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갈3:13-14

아브라함의 복이 어떤 복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크게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매 하나님께서 크게 복을 주셨습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22:12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22:16-18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 믿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주받기 위하여 태어난 것처럼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을 받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창세기 9장 1절의 말씀은 창세기 1장에서 하신 약속을 다시 확인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약속을 다시 하시는 이유는 땅이 심판을 받아 노아와 그 가족들만 남았지만 아담과 하와에게 주었던 창조의 복을 잊지 않고 말씀 그대로 주실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 내 약속은 신실하고 변함이 없다. 안심하고 나를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마귀 때문에 타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복은 계속됩니다.

2024년 9월 7일 오전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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