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다음 세대를 위하여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고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용사들로 세워지게 하시며 젊은이들이 땀 흘려 수고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정의로운 나라가 되게 하소서.
음란하고 혼탁한 문화, 각종 중독으로부터 저들의 생각과 육신을 지켜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해답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기독교 가치로 세워진 미션스쿨의 신앙교육을 방해하려는 모든 악한 세력의 행보가 무너지게 하소서.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창8:6-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창8:6-740일을 지나서 - 물 위로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 날부터 40일을 지나서
물 위로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 날은 노아가 600세 되던 해 10월 1일, 그러니까 홍수가 난 지 7개월 13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또 40일을 지나서 노아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 보냈습니다. 노아도 마음은 조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썩은 고기를 먹기 위해 젖은 땅에도 앉는 새였으니 궂이 방주 안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창8:8-9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자 노아는 비둘기 한 마리를 내어 보냈습니다.
비둘기는 마른 땅에만 앉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로 평지나 골짜기에서 생활합니다. 당시에 땅은 물이 채 빠지지 않았고, 물이 빠진 고지대 역시 미처 마르지 않은 상태였기에 비둘기는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옵니다. 노아는 다시 일주일 후에 비둘기를 내어 보냅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창8:10-11비둘기가 이번에는 놀랍게도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돌아왔습니다.
비둘기가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온 것은 땅에 물에 많이 감소하였다는 충분한 증거물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고난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싸인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빠지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본 노아는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땅이 마르게 될 것임을 알고 희망에 찼습니다. 노아는 지면에 물이 감하여 땅이 마르기를 고대하면서 또 일주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7일이 지난 후 비둘기를 내놓았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창8:12이번에는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비둘기가 마른 땅에서 정착한다는 특성을 이루어 볼 때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지면에 물이 다 물러가고 일부 고지대에는 땅이 말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쯤되면 보통사람들이라면 뚜껑을 열고 방주 밖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노아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비둘기를 보면서도 다시 기다렸습니다. 그는 조급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마음대로 추측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살기 불편한 방주 안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노아는 40일간 폭우가 쏟아질 때도 마냥 기다렸고, 물이 걷히는 150일 동안도 마냥 기다렸습니다. 방주가 아라랏 산에 안착된 다음에도 2개월 13일을, 산들의 봉우리가 드러난 후에도 또 40일을, 또 일주일을, 그리고 또 일주일을 기다렸습니다. 방주의 뚜껑을 연 다음에도 또 57일을 기다렸습니다.
노아는 땅이 마른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방주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노아의 위대한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방주에 들어갈 때에도 노아는 방주에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들어갔고, 방주에서 나올 때에도 자기 임의대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오라고 하실 때까지 방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만약 노아가 기다리는 데 실패했으면 큰 사고를 당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85세가 되어도, 90세가 되어도, 95세가 되어도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아들을 주십니다.
95세에 아들을 얻는 것보다는 100세에 아들을 얻는 것이 더 큰 간증거리가 됩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야!”하며 얼마나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얼마나 큰 은혜를 받겠습니까?
기다릴 때 시험이 많았을 것입니다.
‘나는 남자로서 죽은 자와 같고, 아내는 경수가 끊어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회춘시키셔서 아들을 낳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기다릴 때 시험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 이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약5:7-8"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히10:36"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5:11하나님께서 주시는 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태어나면 8일 만에 할례를 받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8일 만에 할례를 받습니까? 학자들이 그 이유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사람은 수술을 받을 때나 사고를 당할 때 피를 많이 흘리면 죽는데, 피가 응고되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삽니다. 피가 응고될 때 비타민k와 프로트롬빈이 필요한데 갓난아기에게는 이 성분이 부족하답니다. 생후 3일이 되면 33%가 생기고 차츰차츰 올라가서 생후 8일이 되면 110%가 되고 9일째부터 내려가기 시작하여 100%가 된 다음에는 일생 그것이 유지된답니다.
그러니 사람에게 피를 응고시키는 능력이 가장 강할 때가 바로 생후 8일째인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바로 그때, 응고의 피크타임에 할례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마리아와 마르다 가정의 가장인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누이동생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시지 않고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례식에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요11:17그때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시니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병들었을 때 일어나는 것보다, 죽은 그날 일어나는 것보다,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 되어서 살아 나오는 것이 하나님께는 더 큰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요한복음 12장 11절의 말씀대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제일 좋은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이 늦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응답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전도해도 그 사람이 믿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믿을 때까지 기다려야 됩니다. 충성하며 십일조를 하는데도 부자가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기다려야 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신앙이란 ‘기다림’입니다. 기도하는대로 즉시 응답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면 ‘혹시 내가 기도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생깁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를 처음 믿을 때는 기쁘고, 놀랍고, 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생활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현실입니다. 노아가 방주 안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감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주 안에서 사는 일은 고통입니다. 구원은 한 순간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를 닮아가는 것은 평생이 걸리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서 마치 유토피아 같은 생활을 꿈꿉니다. 여러분이 가진 환상을 만족시키는 방법은 죽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천국에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사는 세상에는 질병이 있고, 고통이 있고, 자식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당한 고난을 빨리 끝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좀 더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고난을 좀 더 겪으라고 하십니다. 매일매일 싫어하는 사람과도 함께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동일하게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의 고난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이것이 다릅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구원은 은혜지만 삶은 믿음으로 이루어 집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신앙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기다려야 하지만 하나님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물을 한꺼번에 뺄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물이 빠지는데 1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방주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마십시오. 노아의 위대함이 여기 있습니다.
노아는 방주에 들어갈 때 하나님이 들어가라고 말씀하셔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까마귀나 비둘기를 보내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노아가 보낸 것입니다.
구원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삶을 살 때에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탐색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삶입니다. ‘다 해주시겠지’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2024년 9월 3일 오전 6: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