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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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북한을 위하여

1.

북한의 주민들이 주체사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김정은 3대 우상 체제가 무너지게 하시며 북한 전역에 있는 김일성 우상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2.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세워져 있었던 3천여 교회들이 다시 회복되게 하시고 김일성 동상이 세워진 그 자리에 장대현교회가 다시 일어서게 하여 주소서.

3.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과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 받고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시고 그들이 속히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그날이 임하게 하시며 평화적 통일이 앞당겨지게 하소서.

4.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탈북민들이 무사히 정착하여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쓰임 받게 하소서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창7:23-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창7:23

온 세상에 물이 창일하여 방주가 떠다닐 때에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은 모두 죽어버리고 멸망 당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만은 유유히 물 위를 떠 다녔으며 조금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의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방주만이 만물을 파괴해 버린 홍수 심판을 견디어 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도 인간 문명이 어느 정도 발달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과 생물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물로써 멸망되었으나 오직 노아의 방주만이 이 심판을 견디어 낸 것입니다.

노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노아의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예표입니다. 의인 노아가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옛 세상의 구주가 되었듯이, 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택한 자들의 구속을 이루셨고, 그를 믿는 모든 자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방주가 홍수 심판으로부터 노아의 8식구들과 모든 들짐승과 새들의 구원이 되었듯이, 교회는 장차 임할 불 심판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할 방주입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죽음의 사자로부터 구원을 경험했고, 홍해를 건너면서 애굽과 바로의 지배로 부터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영원한 형벌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의존해야 합니다. 그러나 애굽을 떠나 바로의 군대와 그 권세로부터 자유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유월절 밤에는 구속하는 피가 있었고, 홍해에서는 구별하는 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나 바로의 권세, 사탄의 악한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세례 받은 자로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노아의 홍수를 구원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베드로 사도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세례의 의미라고 해석합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벧전3:20-21

세례를 받았다고 다 씻어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점점 가깝게 나아갑니다. 출애굽 여정으로 말하면 홍해 사건과 광야는 모든 세례의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도 세례의 의미를 매우 강조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은총이 너무나 귀한 것이지만, 예수를 믿는 이후에 삶이 변화되지 않고 옛사람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복음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이 세례, 광야의 단계를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가 불신자의 구원에만 관심을 쏟으면 안됩니다. 구별됨, 세례, 광야를 통과하여 가나안에 이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훈련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교회의 고민은 여전히 구원, 그 이후의 문제입니다. 변화, 성숙, 성화는 구원받은 이후에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최상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피는 우리의 죄를 씻는 역할을 하고, 세례는 우리의 옛 사람을 벗어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의 지난 인생 속에 즐기고 사랑했던 옛 세상과 옛 사람을 처리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세례 (심판의 홍수)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이런 시련의 홍수를 만났을 때 옛 세상과 함께 완전히 망해버린 사람이 있고, 홍수를 건너 새롭게 변화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죄 중심, 자아 중심이 아닌 자기를 부인한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고난의 때를 지난 후에 여러분의 모습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2방주는 물이 불어날수록 더욱 안전하며 이 세상의 것들과 구별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은 환난이 오면 올수록 더욱 빛나고 견고해 집니다.

3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신 것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 남김이 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 집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니 금방 물고기가 잡히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금방 이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도 금방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오래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네게 아들을 주겠다.”그러나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려서 나이 백세에 아들을 얻은 것처럼 어떤 것은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때가 차야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에 순종하다가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 성을 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여리고 성을 육일간 돌았지만 성이 조금도 기울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조그만 금도 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 여섯 바퀴를 돌아도 성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여리고 군인들이 배를 잡고 웃으며 조롱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곱 바퀴를 다 돌고 나서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외칠 때 성이 와르르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의 방주를 지으라고 했을 때 노아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고 지식으로 깨달아서 하는 일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합리성이고 상식입니다.

은 그대로 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때가 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신실하신 분이시며 완전하신 분입니다. 노아에게 이 비전을 주셨기 때문에 그는 배를 만들지 않고 방주를 만든 것입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축소합니다. 방주를 지으라고 하면 배를 만듭니다. 크게 만들라고 하면 자신의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에 작게 만듭니다. 그것은 순종도 믿음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순종과 믿음으로 계속 살다 보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세상은 변하고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의 방주를 통하여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황당한 말 중에 하나는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답답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2천년 전에 죽은 한 청년을 믿으면 생명을 얻고 부활하며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볼 때 말도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아 믿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것이지 결코 믿을 수 있는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증명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도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 수 없습니다. 통일이 어떻게 될지, 한국이 어떻게 될지는 어떤 학자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해답이고 길인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의 방주에서 배우는 영적교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비하기를 물속에 있는 생물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기 때문에 물속에 있는 생물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면 바닷물에 살던 고기는 민물 때문에 죽을 것이고 민물에 살던 고기는 바닷물 때문에 죽을 것입니다. 이런 말은 따질 가치가 없습니다.

성경이 기록된 곳까지만 가는 것이 좋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고전4:6

아담과 하와에게 배꼽이 있었을까? 아주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학자다운 질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불합격점입니다. 성경은 지적 호기심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딛3:9-11

노아의 방주사건은 말씀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학의 법칙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발견한 것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혹시 부서진 널빤지 위에서 살 수 있지 않았겠는가’라는 시비도 합니다. 그 말에 대한 해답이 24절에 있습니다.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창7:24

달로 따지면 다섯 달 입니다. 혹시 널판지에서 목숨을 일시적으로 건졌다고 해도 다섯 달 동안 굶고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결론은 ‘모두 죽었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습니다.

노아시대에도 그 말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날 이 시대에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1백50일이라는 말 속에 또 한 가지의 의미는 심판은 제한적이라는 말입니다. 심판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1백50일이 지난 후에 물이 빠진 것처럼 불 심판이 오면 죽을 사람은 모두 죽고 그 후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2024년 8월 30일 오전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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