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국군 장병들을 위하여
국군 장병들에게 건강한 육체와 마음을 주셔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인도하시고 모든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장병들을 평안하게 지켜 주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장병들이 영적 광야인 군대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시고 이들을 통해 군 복음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군 선교를 위해 힘쓰는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영혼 사랑의 열정으로 헌신할 수 있도록 강건함을 허락하시고 군인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영혼들이 구원받는 열매가 풍성하게 하소서.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창7: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창7:2-3하나님께서 이전에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창6:19하나님은 동물의 모든 종을 보존케 하기 위하여 암수 한 마리씩 남겨 두었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정결한 짐승은 일곱마리씩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방주는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방주는 그리스도인의 현주소입니다. 방주 안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방주에 들어가는 자만이 은혜를 받고 복을 받으며 구원을 받습니다.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 마리씩을 데리고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정결한 짐승은 번식을 더 많이 시키려고 하는 것일까요? 짝을 지어 데리고 들어간 이유는 종족보존을 위한 것이었지만 정결한 짐승 일곱 쌍은 제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씨를 유전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께 있어서는 심판보다 보존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심판 후에도 창조의 목적을 여전히 유지시키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던 생물들을 계속 존속시킴으로써 홍수의 심판 가운데에서 구원하신 사람들에게 창조시의 은혜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며 안위를 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결한 짐승이란 제사를 드리기에 합당한 짐승을 의미합니다. 제사는 방주 안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제사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 갖는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분에게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림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광 가운데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예배는 제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하신 산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피의 제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에게 필요한 제사는 피의 제사입니다. 그래서 아벨이 동물의 피로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아벨은 비록 에덴동산을 쫓겨난 죄인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죄인으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복과 영광이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곳은 감옥도 영광의 자리로 변합니다. 예배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과 영광과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할 수 있는 정결한 짐승을 하나님이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여러분도 눈치챘을 것입니다. 좋을 것 같아 보였던 결혼생활도, 아이가 태어나는 일도, 돈을 버는 일도 죽을 때까지 고생입니다.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우리가 하는 사업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예배드리는 자는 아무리 세상이 험해도 천국처럼 승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는 사실을 이 험악한 세상 한복판에서 소리 높여 외칠 수 있습니다.
방주는 광야와 같습니다. 광야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듯이 방주 안에는 노아가 드리는 예배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과 기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영혼이 소생하고 육체가 새로워지고 여러분의 삶에 풍성한 복이 흘러넘치기를 바랍니다. 그 열쇠는 바로 예배입니다.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창7:4지금부터 칠 일이면 ....
이것은 분명히 노아가 마지막으로 준비해야 할 일 - 자기에게 나아오는 동물들을 각 방에 채워 넣고 음식을 먹이는 일을 하고, 그리고 불경건한 세상에 마지막 경고를 주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과 더불어 했던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벧후2:5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이 심판받아 멸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20년이나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으며, 또한 노아의 방주가 완성된 후에도 7일 간의 기회를 더 주셨습니다.
노아에게는 기적의 7일이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에게도 놀라운 기적의 7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적을 예배하는 7일입니다. 이 7일 동안 하나님께서는 약속한 혈육있는 모든 동물들을 노아의 방주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내용이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그 많은 짐승들이 어떻게 7일 동안 방주 안으로 모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 많은 동물을 모두 방주 안에 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을 자연법칙이나 상식과 이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의심하게 됩니다. 상식과 이성으로는 심판이 온다는 말을 믿을 수 없고 일주일 안에 모든 동물들을 방주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적인 법칙과 믿음의 법칙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쉬운 일입니다. 개미떼를 보면 먹이를 물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줄을 잘 맞추어서 지나갑니다. 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 떼도, 꿀을 따는 벌도 정확히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짐승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동물들이 한 순간에 짝을 지어 쌍쌍의 모습으로 나타나 줄을 지어 방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만일 노아가 동물을 잡아 방주 안으로 넣겠다고 시작했다면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쉽게 해결됩니다.
그 많은 동물들이 때가 되자 방주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노아가 한 일은 그저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면 모든 일이 그저 힘이 들고 어려울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기쁘고, 쉽고,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동물들은 제각기 방주 안으로 들어왔고 무게의 균형을 맞추어 1층과 2층과 3층으로 나누어 자리 잡았습니다. 기온이 낮고 햇빛이 없고 산소가 부족하면 동물들은 동면을 취합니다. 방주 안의 동물들은 1년 동안 동면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방주안의 동물들을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아주 쉽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생애에 하나님이 간섭하게 되시기를 원합니다.
8장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창8:1기억하사 라는 단어는 간섭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방주 안의 동물들을 간섭했다는 말입니다.
자녀를 키우기가 힘이 듭니다.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도, 결혼한 자녀들도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돌봐주시면 스스로 알아서 성장합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복 받고 살 수 있는 비밀입니다.
방주는 은혜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시기 때문에 방주 안이 복 받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이 마지막 시대에 노아의 방주와 같은 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교회를 떠나지 마십시오. 방주 안이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이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납니다.
사실 방주 안은 그렇게 행복한 장소는 아닙니다. 창도 없이 동물과 살아야 하는 곳입니다. 재미도 없고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 방주 안에 있는 기간은 고작 1년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일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광야의 삶은 40년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가는 곳입니다. 방주는 노도 없고 돛도 없습니다. 방주는 의지대로 갈 수 없습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임의로 빠르게 혹은 늦게 가게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방주는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키가 없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수 없습니다. 방주 안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믿는 것뿐입니다. 만일 방주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다면 한 순간도 생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인생을 살아본 사람들의 결론은 ‘내 인생을 산 적이 없이 끌려 다녔다’라는 고백입니다. 인생 여정동안 회사에 의해, 어떤 사람에 의해 평생 노예처럼 끌려 다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마칠 때 우리가 하는 말은 ‘허무하다’입니다. 자신이 인생을 운전한 것 같지만 계획한 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속고 있습니다. 인생의 결론은 죽음 외에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만 인생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배를 운전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을 믿고 경배하며 찬양하며 그 분 앞에 나아갈 때 자연의 법칙과 이성의 법칙을 넘어서서 초자연적으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근심과 걱정이 내 앞을 우겨쌌더라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만나도 답답하지 아니합니다. 홍해가 갈라집니다. 먹을 것이 없을 때 만나를 주십니다. 물이 없을 때 바위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해주십니다. 절망이라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의 삶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의 간섭하심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직장문제도, 자녀문제도, 이웃 간의 문제도 하나님이 간섭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돈을 따라 다니지 말고 따라오게 하십시오. 이것이 방주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기준과 전혀 다른 새로운 기준, 영적인 법칙과 놀라운 믿음의 세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