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경과 생명을 위하여
온 인류가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여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대로 환경을 다스리게 하소서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낙태와 아동 학대 등 생명 경시 풍조가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환경과 생명을 위해 일하는 관계자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셔서 효율적인 정책이 세워지게 하시고 교회와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6:15-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6:15-16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실 때 방주의 양식을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렇게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냥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다면 노아는 세상에서 보는 배와 똑같이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로는 일년 동안의 홍수를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가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이상한 배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 창조 과학회에 연구에 의하면 이렇게 제작된 방주는 엄청난 홍수를 견디며 물 위에 안정되게 떠 있을 수 있는 구조로서 그 형태와 규격이 완벽했다고 합니다.
과거 노아의 방주보다 규모는 작으나 모양을 그대로 본뜬 방주를 네덜란드나 덴마크에서 여러 척 만들었는데, 속력을 위주로 하지 않고 적재량이 우선되는 선박으로서 뛰어난 성능이 발휘됨이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실험이 있기 전에 이미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선박보다도 적재량이 1/3이나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화물을 처리하는데 소요된 인력은 동일한 규모의 다른 선박과도 같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물위에 축소된 모형방주를 띄워놓고, 6개월 동안 물을 점진적으로 증가시켰다가, 다음 6개월 동안 점차적으로 물을 감소시키고 모형방주를 물이 비교적 적은 내륙으로 이동시켜 본 결과, 그러한 구조물이 성서에 나타나는 환경의 변화를 견딜 수 있음이 증명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는 구체적으로 과연 어느 정도의 과학적 설계에 의해 건조되었을까요?
한국의 해사기술연구소(海事技術硏究所, 舊선박연구소)는 선박의 선형 시험 및 관련 성능 업무 평가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으로서, 세계 조선 1위국이 우리나라 수출선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성능 평가를 받고 있고, 그 결과는 외국의 선주들에게 그대로 인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창조 과학회의 요청으로 해사 기술 연구소가 노아의 방주를 조선공학적 입장으로 접근, 이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이를 위해 테스트에 쓰인 실험용 방주로 길이를 50분의 1로 축소(길이 2.7m) 제작하였고, 해사기술연구소의 대형수조(길이 200m, 폭16m, 수심 7m)에서 인공적으로 다양한 높이, 강도, 속도의 조류, 파도, 풍랑, 바람을 만들고 역시 축소된 내부 선체, 선원을 실은 상태, 내부 화물을 적재한 상태 등 다각적으로 실험을 수행했다.
그 결과 노아의 방주가 현대의 최첨단 조선공학적 기법으로 제작된 그 어느 선박보다 뛰어난 안정성을 갖고 있는 배였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또 상대평가에 의한 우수성을 알아보기 위해 노아 방주와 동일한 부피를 가지면서 길이, 폭, 높이의 비율이 각기 다른 현대 조선공학적 기법으로 제작한 12척의 다른 모형선박을 만들어 선박의 안정성 (파랑안전성, 구조안전성, 복원안전성)에 대해 수차례의 비교 수치해석과정을 거쳤다.
조선공학적인 관점에서 변환 가능한 12척의 모형 배들과의 비교 수치해석결과, 선형(船形)의 높이가 같은 경우에는 노아 방주가 가장 최적인 복원안정성을 주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16절을 보면 그 큰 방주에 창문은 하나인데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밖을 보지 못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노아의 방주생활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방주에서 나올 때까지 일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일 년 동안 그들은 방주 안에서만 살아야 했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죽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가 있는 일은 답답한 일입니다. 만일 창문이 있어서 밖을 보았다면 그들은 절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창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홍수 때문에 죽은 썩은 동물이나 사람의 시체 뿐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망망대해가 1년 동안 계속되어 풀도 나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홍수 때문에 죽은 썩은 동물이나 사람의 시체를 보게 되면 절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지 못하게 하고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제한하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그것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방주 안입니다. 그리고 눈을 가려야 합니다. 심판의 현장을 보면 살 수 없습니다.
방주 안에 있었던 여덟 식구와 동물들이 일년 이 지난 후에 모두 살아서 방주 밖으로 나왔습니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이 약 17만5천종이나 되고 암수로 하면 약 35만쌍이 된다고 합니다. 그 동물들이 방주 안에서 1년 동안 먹을 것과 배설물을 어떻게 할 것이며 노아의 여덟 식구가 이 동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면 기절할 것만 같습니다. 결혼은 누구하고 해야 할지, 직장은 어디로 결정해야 할지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 속에서 병들어 죽었다는 얘기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두 지켜주셨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그분의 방법으로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방주의 출입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구원의 문은 오직 하나,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 장가계에 가면, 천문(天門, heaven gate, 하늘의 문)이라는 바위 문이 있습니다. 높은 바위산의 제일 뾰족한 곳에 신비롭게 하늘을 향해 대문처럼 뻥 뚫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천문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 문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너무 높아서도 올라갈 수가 없고, 또 무슨 장비를 갖고 들어간다 해도 떨어져 죽습니다.
그것을 천문이라 부르지만, 그것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닙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하나 예수님뿐입니다. 버스를 타도, 기차를 타도, 비행기를 타도, 말을 타도, 걸어가도 세월은 가듯이 어느 종교를 믿든 다 천국에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아닙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4:12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I am the gate; whoever enters through me will be saved.)"
요10:9내가 문이니 라는 말씀이 원어에는 하나뿐인 문(the gate)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요14:6이는 ‘내가 곧 그 하나뿐인 길이요, 내가 곧 그 하나뿐인 진리요, 내가 곧 그 하나님뿐 생명이다.’라는 뜻입니다.
구원의 문은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힘써도, 내 말과 행동과 뜻이 깨끗하다 해도 그것으로는 거듭나지 못하니 천국에 갈 수 없고, 내가 내 죄를 뉘우치고 아무리 울어도 그것으로는 그 죄를 씻지 못하니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문으로 들어가야 예수 십자가의 보배 피가 우리 죄를 다 씻어 주시고 우리를 영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교회는 그의 몸이니"
엡1:23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세우는 것은 예수님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 문으로 들어오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또 들어오며 나가며 꼴을 얻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를 통해서 깨닫는 교훈은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모든 생명체는 안전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는 닭 한 마리도 죽지 않았습니다. 방주 안에는 전염병도 없었고 사고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창6:19-20방주 안에는 암수 한쌍만 있었으니 만약 방주 안에 있었던 것 중에 하나라도 죽으면 그 종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방주 안의 모든 동물이 안전했습니다. 새든, 짐승이든, 곤충이든 방주에 들어가면 다 살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온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10:28-30따라 합시다. 내 구원은 아버지 손에, 주님 손에 있다.
암탉이 품고 있는 병아리는 암탉을 치지 않고는 해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제거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우리를 빼앗아 갈 자가 없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이기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할렐루야!
롬8;37-39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따라 합시다. 넉넉히 이기느니라.
절대 불안해하면 안 됩니다. 의심하면 안 됩니다.
따라 합시다. 의심은 내 바지 안에 들어온 개미 같다.
시골에서 놀다 보면 개미가 종아리를 타고 올라와서 얼마나 괴롭히는지 모릅니다. 의심은 마치 우리를 괴롭히는 개미 같습니다. 우리 몸을 타고 올라와서 괴롭히는 개미는 없애야 하듯이 의심을 죽여야 합니다.
따라 합시다. 나는 확실히 구원 받았다. 내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그럴 때 이단들에게 먹히지 않습니다. 마귀에게 삼키우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 받았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여자들은 결혼해도 누가 아가씨라고 하면 좋아하는데 그것은 앙큼한 것입니다. 나는 결혼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을 말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라고 시인해야 됩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실패가 없습니다.
방주를 통해 주시는 또 하나의 교훈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120년간 지었습니다. 돈 벌어서 방주를 짓고, 시간 바쳐서 방주를 짓고,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조롱 받으면서도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것도 1, 2년이 아니라 120년 동안 지을 때 얼마나 인내가 필요했겠습니까?
노아에게도 때로는 ‘정말 120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홍수로 멸하실까?’하는 의심의 개미가 기어 다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꿋꿋이 인내하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또 방주 안에 들어가서도 375일을 갇혀서 살았습니다. 푸른 하늘을 볼 수도 없었습니다. 375일이면 일 년보다 더 많은 날입니다. 그동안 방주에서 사는 것이 쉬웠겠습니까? 개는 짖어대고, 코끼리는 그 긴 코를 흔들어대고, 원숭이는 까불거리고, 또 배설물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불편한 점이, 복잡한 점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구원은 받았지만 방주 안이 천국은 아닙니다.
교회에 나오면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아 천국의 산소를 마시고 천국의 평화를 맛보며 천국의 말씀을 맛있게 먹지만, 교회가 천국은 아닙니다. 교회는 천국의 맛을 보는 천국의 그림자이지, 천국은 아닙니다.
천국은 완벽하지만 교회에는 사람들의 배설물도 있고, 사람들의 불평 소리도 들리고 이런 저런 일도 생길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 생활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내가 예수만 안 믿었으면 한 번 화끈하게 살아볼 텐데…….’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과 한바탕 싸우고 싶어도 하나님 때문에 싸우지 못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이겨나가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 인내가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5:11아들 일곱과 딸 셋이 죽고 재산이 망하고 몸에 병이 왔을 때 욥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데 그렇게 망했습니다. 그러나 꾹 참으니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도 13년간 종살이하면서 인내했기 때문에 총리가 된 것입니다. 그토록 정결하고 착하게 산 청년 요셉이 주인의 부인을 탐낸 나쁜 놈이라는 누명을 쓰고 손가락질 받으며 감옥에 들어갔지만 거기에서도 꾹 참고 참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다윗도 십 몇 년간 억울한 누명을 덮어썼지만 꾹 참고 인내하니 왕이 된 것입니다.
인내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교회 생활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오늘 좋아하다가도 내일 수군거리며 손가락질합니다.
호산나! 호산나!‘하며 예수님을 찬양해 놓고 며칠 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변함없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내하여 승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024년 8월 14일 오전 6: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