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지역 사회의 연약한 영혼들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 말씀 충만, 기도 충만하게 하시고 모든 예배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회복과 부흥이 있게 하소서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창6:8-1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6:8그러나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한 사람과 더불어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다 쓸어버리기로 결심하셨는데, 단 한 사람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똑똑하거나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은혜를 입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울을 사도 바울되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9-10사도 바울의 모든 편지에 다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은혜와 평강입니다.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롬1:7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찬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왜 내게 성령주셔서 내 마음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주 언제 강림 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 곳도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 해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복음 성가입니다.
내가 지금 사는 것 주님의 크신 은혜요
주를 믿게 된 것은 더욱 크신 은혜라
넘치는 주의 사랑 놀라운 주의 은혜
날마다 경험하며 주께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 고초 많으나
이길 힘을 주시니 더욱 크신 은혜라
답답할 때 기도로 쓰러질 때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니 주여 감사합니다
하늘에는 영광이 우리에겐 기쁨이
날로 더해 가는 것 더욱 크신 은혜라
쌓여진 사랑도 감당할 길 없어서
몸과 맘 드립니다 진정 감사합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든지 있는 그대로 평가한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속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다면 여러분들은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악하고 추하고 더럽기 때문입니다. 감추어져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죄가 감추임을 받고 허물이 용서를 받을 때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잘나고 깨끗하고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정의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나 정의로운 사람에 대해 쉽게 말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정의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은혜가 있기 때문에 살 수 있습니다. 정의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를 말하면 모두 죽습니다.
우리가 한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을 가리킬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르키는 그 사람보다 더 많은 실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노아 홍수는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동시에 나타낸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악이 관영함으로 인한 물 심판에서 나타나고, 하나님의 은혜는 노아의 가족을 위해 준비하신 방주를 통해 물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은혜와 진리, 사랑과 공의는 언제나 함께 갑니다.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조화를 이루며 이 땅을 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통치 질서를 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결여된 부분은 무엇입니까? 은혜를 강조하기 위해 공의가 무너지게 하지는 않습니까? 진리를 강조하다가 은혜의 부분이 소홀히 되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창6:9-10이곳에 두 가지 정보가 나옵니다.
1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이 말은 놀라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시대상황은 물로 심판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의인이며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인은 죄가 없이 의로운 사람이란 뜻이 아닙니다. 인간은 절대로 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의로운 뿐입니다. 당대 사람들에 비해서 노아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완전했다는 것은 완전무결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태도가 온전했음을 뜻합니다.
노아가 뭔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심판의 날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그 저주의 심판 속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노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했으면 홍수 심판 때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똑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자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칭함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똑똑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야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2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또 한가지 방법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노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노아와 동행하신 것이 아니라, 놓아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동행하시려면 자신의 기준을 낮추어 노아에게 맞추어야 함을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어린 시절, 아직 성숙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긍휼하심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는 내게서 출발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찾아오심, 곧 은혜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자기 생각, 자기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칭의’가 하나님이 내게 오셔서 나를 배려하신 것을 말한다면, ‘성화’는 내가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 살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값없이 받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성화를 요구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4사도 바울의 고백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내 뜻, 내 주장이 죽지 않으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죽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십니다. 에녹을 귀하게 여기신 것처럼 노아도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