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세계 선교를 위하여
선교사님들을 통하여 그 땅에 예배가 살아나게 하시고 복음의 씨앗이 심어진 곳마다 하나님의 때에 아름답게 열매 맺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해 주셔서 탁월한 선교 전략으로 접근하게 하시며 모든 질병과 풍토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선교 현장을 예수님의 보혈로 덮으셔서 2만 8천여 명의 선교사님들이 사명 붙들고 사역하게 하소서.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6:7-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6:7이 말씀에서 우리가 들어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1타락이 극에 이르면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2사람이 죄를 범하면 환경도 같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6:13땅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멸하십니까? 사람이 죄를 짓고 그 죄가 세상에 가득하니 하나님께서 땅을 쓸어버리시고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함께 쓸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죄를 지었는데 다윗 왕 시대에 년부년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아합이 죄를 지으니 이스라엘에 3년반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땅이 메말라 모든 산천초목이, 오곡백과가 비틀어져 죽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못된 사람 때문에 환경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함께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하면 그 의로운 사람 때문에 때를 따라 비가 내리고 천재지변이 없고 짐승들과 기는 것과 하늘의 새까지 함께 복을 받게 됩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만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는 성읍에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들이 복을 받습니다.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습니다. 짐승의 새끼가 복을 받습니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습니다. 강아지도 복을 받습니다.
환경을 보존하고 환경을 사랑하는 길은 죄를 짓지 않고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복 주십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6:8노아에 대한 성경의 첫번째 설명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똑똑하거나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입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두 은혜를 입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와서 예배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든지 있는 그대로 평가한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속의 생각을 사람들이 알 수 있다면 사람들은 기절할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의 생각은 너무나 악하기 때문입니다. 감추어져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죄가 감추임을 받고 허물이 용서를 받을 때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잘나고 깨끗하고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정의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나 정의로운 사람에 대해 쉽게 말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정의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은혜가 있기 때문에 살 수 있습니다. 정의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를 말하면 모두 죽습니다. 우리가 한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을 가리킬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르키는 그 사람보다 더 많은 실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6:9이곳에 두 가지 정보가 나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이 말은 놀라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시대상황은 물로 심판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의인이며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죄를 지으면서 살고 있을 때 죄를 짓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가치관의 혼돈으로 인해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폭력과 뇌물을 주는 일들도 죄로 느끼지 못합니다.
노아는 이렇게 죄가 관영한 시대 속에서 의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세상에 물들지 않았고 유행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외로움과 고독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비극은 교회와 세상이 별로 다른 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동일하게 화내고 욕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질문합니다.
9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은혜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똑똑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아야만 죄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죄짓지 않는 또 한가지 방법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 동안에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노아는 가인의 예배가 아닌 아벨의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오신 것을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둠의 세력이 여러분을 점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지혜나 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능력을 얻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가치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최고의 가치와 동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말씀대로 살고 말씀듣기를 좋아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노아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당세에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홍수로 심판할 때에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조차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고, 세상 가치관을 따라 살며 죄악에 빠져 있던 시대에 세상과 영합하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의 모습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이 시대에도 노아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000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00의 족보이니라
00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000는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노아 홍수는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동시에 나타낸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으로 인한 홍수 심판에서 나타나고, 하나님의 은혜는 노아의 가족을 위해 준비하신 방주를 통해 홍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구속사에 비추어진 노아 홍수는 구속사의 계획대로 진행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장차 나타날 공의와 은혜를 ‘홍수 심판과 불 심판’ ‘방주와 예수 그리스도’로 비유되어 앞으로 나타날 심판과 구원을 미리 보여주는 구속사적 예표입니다.
하나님이 노아 시대의 인간의 전면적인 죄에 대해 전면적인 홍수 심판으로 멸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전면적으로 타락한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에서 보듯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홍수의 심판을 미리 알리셨을 뿐 아니라, 준비시킨 방주를 통해서 구원하심으로 구원의 생생한 표본과 모형이 되게 하셨습니다.
무한한 은혜를 통해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 은혜의 구속사를 전개하시되, 하나님의 모든 구속사는 십자가를 향하며 십자가 위에서 절정을 이루며 구원의 완성을 선포하십니다.
은혜와 진리, 사랑과 공의는 언제나 함께 갑니다.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조화를 이루며 이 땅을 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통치 질서를 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결여된 부분은 무엇입니까? 은혜를 강조하기 위하여 공의가 무어지지는 않았습니까? 진리를 강조하다가 은혜의 부분이 소홀히 되지는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