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우들을 위하여
영적인 질병과 육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에게 평안과 회복의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더하사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승리하게 하소서.
질병의 고통 중에서도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시고 성령님과 더욱 친밀한 삶을 통해 위로받고 새 힘을 얻게 하소서.
절망과 자살 충동, 우울증과 조울증, 악한 영의 공격, 공황장애와 온갖 정신적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4:15그래서 가인이 살기는 살지만, 죄의 짐을 지고 고통 가운데 살다가 바위와 돌이 물에 가라앉듯이 지옥으로 가라앉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겉보기에는 신사숙녀로 살지만 ‘내가 인간인가, 동물인가?’하며 영혼의 짐, 죄벌의 짐으로 마음은 무거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수로, 교사로, 전문인으로, 국회의원으로 살면서도 양심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가인과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큰 죄, 작은 죄를 짓고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세상의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 성령으로 처녀 몸에 잉태되어 나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려 그 보배로운 피를 쏟아주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모든 죄의 짐, 죄벌의 짐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바로 이 죄 사함의 소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근로자의 벽돌이나 흙의 짐,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짐, 학생에게 매여 있는 공부의 짐은 본인이 싫으면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짐, 죄벌의 짐은 자기 스스로도 벗을 수 없고, 부모나 친구가 벗겨 줄 수도 없고, 억만 금을 치러도 벗겨지지 않습니다.
죄의 짐, 죄벌의 짐은 오직 우리 하나님께서 벗겨 주셔야만 벗겨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와 회개할 때 그 죄 짐을 벗겨 주십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들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7"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9"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시32:3그러나 시편 32편 5절에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우리에게는 조상으로부터 이어지는 원죄가 있고, 우리 스스로 짓는 죄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추하고 악한 죄가 많아도 예수를 믿고 앞에 나아와 “제가 잘못했습니다. 예수님”하고 말하는 순간 우리의 모든 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 받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습니다. 하루도 걸리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거억하소서 하니 (즉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과도, 그 용서의 내용도 기록하지 않으십니다. “네가 몇 월 며칠에 지은 어떤 죄를 내가 용서했다.”라고 기록하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따라 합시다. “죄의 기록이 없다.”
우리가 충성한 기록은 있습니다. 우리가 드린 헌금과 찬양대원으로, 교사로 충성한 기록은 있어도 우리가 지은 죄의 기록은 없습니다.
너희 죄 흉악하나 기억 아니 하시네
예레미야 31장 34절에‘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미가서 7장 19절에도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리 옮겨 버리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소판으로 시작된 부부싸움이 대개 중판이 되고, 중판이 대판으로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 어제도 그랬고 전에도 그랬잖아? 도대체 몇 번째야?”
“당신은?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잘했어?”
이렇게 과거 때문에 대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전과를 묻지 않으십니다. 용서하신 죄는 다시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용서하신 죄는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더 고마운 것은 앞으로 지을 죄까지도 용서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앞으로 절대 죄를 짓지 않을 사람이 계십니까? 사람이 천당 갈 때까지는 계속 죄를 짓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매일 씻어도 몸에 때가 끼듯이 말입니다.
성자같이 귀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룩한 교인을 섬기는 목사인 제가 아직도 부족하고 허물이 많아서, 그저 ‘주님, 제 손을 잡아 주세요!’라고 할 뿐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훌륭한 목사님이라도 사람입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목사님도 의로운 생활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로 구원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다가 “목사님이나 잘 하세요.”라는 말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교는 목사님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저도 제가 전하는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때까지 때때로 넘어지고 자빠집니다. 그러나 그 죄까지도 주님께서 다 맡아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결코 정죄함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습니다.
해방 되었네 해방 되었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도 때때로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꾸중을 받고, 이미 받았던 축복을 빼앗기고, 또 받을 축복을 받지 못하는 벌을 받을 뿐입니다. 우리가 정죄 받아 지옥에 갈 죄는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니 우리는 늘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찬송하고 살아야 합니다.
더더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는 말씀은 죄의 짐, 죄벌의 짐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다 감당하지 못할 일을 만났을 때 “오, 주님!”하고 그 짐도 주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한두 권이나 열 권 정도는 쉽게 들지만 천 권은 들지 못합니다. 우리가 남편 노릇, 아내 노릇, 자식 노릇을 할 때나 직장생활을 할 때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너무 힘겨워 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려라"
시55:22"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37:5"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시68:19따라 합시다. “날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져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날마다 기쁨으로 여러분과 저의 짐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짐을 맡기면 주님께서는 귀찮다 하지 않으시고 기쁨으로 그것을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없는 아이디어가 하나님께는 다 있습니다.
로마가 유대를 지배할 때 한 유대인이 로마인을 살해했습니다. 로마 당국은 그 유대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손을 썼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로마인을 죽이면 유대인도 죽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그 죄인 대신 한 유대인 남자를 잡아다가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유대인을 죽일 때 조롱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사람의 목숨이 너희가 믿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하니 기회를 주겠다. 항아리 안에 ‘사형’이라는 글이 적혀 있는 쪽지와 ‘사형 면제’라는 글이 적혀 있는 쪽지 두 개가 있는데 ‘사형’이라고 적힌 쪽지를 집으면 사형을 당하고 ‘사형 면제’라고 적힌 쪽지를 집으면 사형이 면제된다.”
사실은 두 개의 쪽지에 다 ‘사형’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유대인 남자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살 길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반짝하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는 항아리에서 쪽지 하나를 집자마자 바로 입에 넣고 삼켜버렸습니다. 로마 집행관이 소리쳤습니다.
“당신, 왜 그것을 먹어? 먹으면 어떻게 해?”
“걱정 마십시오. 남은 쪽지를 보시면 제가 집은 쪽지의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은 쪽지를 펴보니 사형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가 살았다고 합니다.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 군대, 양 옆에는 험산준령이 버티고 있어 길이 없어 보였지만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길을 내어주셨습니다. 홍해에 길을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길을 내어주십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 뜻대로 하소서.”라고 할 때 여러분의 마음도 편안해지고 하나님께서 잘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큰 은혜를 받고, 죄 사함의 복을 받고, 지옥과 사망과 마귀로부터 자유를 얻고,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갑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오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38년된 중풍병자)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요5:14은혜 받고, 용서 받고 또 같은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동입니다.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삼하12:10따라서 은혜 받은 우리는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금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땅에, 길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잘 살지 못하면 사람들한테 짓밟히고 멸시받고 손가락질 받는 교인이 됩니다.
“저 사람이 순복음 교회 집사래…….”
유대에서는 방탕하여 교회에서 쫓겨나갔다가 새 사람이 될 각오를 하고 다시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교회 문 앞에 눕힙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는 맛 잃은 소금이니 나를 밟고 지나가세요.”라는 말을 하게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누워 있으면 교인 몇 백 명이 그를 넘어 지나갑니다. 그 행사가 끝나야 그 사람이 다시 교회 식구가 됩니다.
우리 모두는 짓밟히는 교인이 되지 말고 어디에 가도 대접을 받는 존귀한, 소금 같은 성도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또 마태복음 5장 14절에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등불을 켜서 말 통으로 덮어두면 무엇 합니까? 등불은 등경 위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가든지 우리 때문에 그곳이 밝아져야 합니다. 그것이 용서 받은 사람답게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구와 우주를 주시고, 교회를 주시고, 예수님까지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기만 하고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철들지 않은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내 귀한 시간, 내 첫 이삭 같은 귀한 것을 주님께 바치고 충성하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한 후 첫 번째로 모신 손님이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었습니다. 빌리 목사님은 이 세상의 보배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빌리 그레함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이 세계의 역사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습니까?”
그때 빌리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역사는 예수님의 재림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 때문에 돈을 벌고 무엇 때문에 자식을 기르고 무엇 때문에 삽니까? 결국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그토록 많은 은혜를 주셨는데 저는 조금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위해 이것만은 하고 왔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아들딸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년 7월 27일 오전 6: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