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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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담임목사를 위하여

1.

말씀의 은사를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2.

영적인 민감함을 주사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게 하시고 목자의 가슴과 아비의 눈물로 모든 성도를 깊이 사랑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겸손의 리더십을 갖게 하소서.

3.

목사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온전히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고 가정에 평안을 주소서.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창4:9-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창4:9

가인을 향한 하나님의 질문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아담에게 질문을 하시던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짓고 나서 벌거벗었음을 알고 숨어 있는 아담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시며 찾아 가셨습니다.

그 때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면서 도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라고 질문을 계속하십니다.

마찬가지로 가인이 아벨을 살인하고 암매장한 후 그 자리에서 나올 때 하나님은 가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덧붙여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세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죄인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을 버리지 않고 찾아가서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가인이 죄를 지었는데도 찾아가시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는 찢어지는 아픔과 상처가 있습니다. 마치 죄를 지은 자식을 심판할 수도 없고 죄를 인정할 수도 없는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울고 계십니다. 가슴을 치고 계십니다.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은 가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이 아벨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와서 질문할 때는 무엇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고백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계시지만 여러분의 입으로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두번째, 우리가 배우는 것은 가인이 모른다고 부인하며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항변을 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부인하고 감추었다고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자기의 눈을 가리면 세상이 모두 가려진다고 생각합니다. 손바닥으로 우주를 가릴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죄를 가리려고 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우주를 가리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용서받지 않은 죄는 털끝만한 것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썩지만 죄는 썩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더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그 죄를 씻으면 그 죄는 순식간에 모두 없어집니다. 아무리 큰 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으면 없어지지만 아무리 작은 죄도 회개하지 않으면 수천년이 흘러도 여전히 남아 있고 그 죄는 여러분을 고발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가인에게 했던 질문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네 아내는 어디 있느냐 네 남편은, 네 자녀는, 그리고 네가 팽개친 부모는 어디 있느냐? 네 친구나 사랑하는 동료들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어 보십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전 몰라요. 알아서 살고 있겠죠’라고 말합니다. ‘제가 그 사람들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전 바빠요’라고 대답합니다. 바로 우리의 대답이고 가인의 대답입니다. 이 모든 대답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남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자신에게도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사랑할 줄 모릅니다. 그 사람은 너무나 외롭고 고독하고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자살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을 부모는 모를 수도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함께 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이 천길 만길 따로 가고 있는 부부도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자고 살아 갑니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중심을 이해하는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사랑하고 격려하며 축복하고 전도하는 마음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가인은 유감스럽게도 모른다고 변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변명하거나 부인하지 마시고 회개하십시오. 예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모든 죄 가운데서 깨끗케 하여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시길 원하십니다. 돌아오십시오. 그분에게로 나오십시오. 여러분의 죄는 눈과 같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세번째, 이 본문에서 우리가 배우는 또 한가지 사실은 아벨이 흘린 순교의 피는 죽었다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창4:10

아벨은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었고 매장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육신이 죽었지만 피는 땅으로 들어가서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인의 죄가 부인한다고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아벨의 피도 땅에 흘려져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피는 소리를 지릅니다. 의인은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삽니다. 죄인도 죽지 않습니다. 죄인이 죽어 육신은 땅에 들어가겠지만 그는 영원히 삽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영광스런 신적존재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말합니다. 동물은 죽으면 그만입니다. 죽은 순간부터 고기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자살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죽으면 영원히 지옥에서 살게 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의 대가를 영원히 받아야 합니다. 그저 몇년동안 형을 받고 그만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마라톤선수가 달리기를 하는 것에는 끝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이 없이 영원히 뛰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와같이 죽음으로 죄가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창4:11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면 하나님이 반드시 찾으십니다. 무죄한 피를 손에 묻히면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무죄한 사람의 피를 땅에 흘리면 땅에서 저주를 받게 됩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사1: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알면 죽이고 민35장, 알지 못하거든)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신21:1-9

아벨의 피로 인해 땅은 인간에게 저주를 줍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주가 사라지고 질병과, 갈등이 사라지고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12:24

아벨의 피는 자신의 생명의 대가에 대하여 호소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인의 용서를 위해 호소합니다. 치료를 위해 호소합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나니) 저주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호소합니다. 죽음을 철폐하시고 영생을 얻도록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으며 죄와 사망과 질병과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창4:12

살인한 피를 받은 땅이 인간에게 주는 첫번째 저주는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는 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밭을 갈면 땅이 효력을 내었는데, 무죄한 피를 흘린 후에는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농사를 지으며 정착해서 살던 가인은 어쩔 수 없이 그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게 된 것입니다.

두번째,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방황’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저주는 방황입니다.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것이 방황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에게는 방황이 있습니다. 방황이라는 말은 문학적으로는 아름다운 말일지 모르지만 실존적으로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안식이 있습니다. 방황의 끝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편안하게 영접하십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네게로 돌아가리라’‘너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2024년 7월 26일 오전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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