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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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위하여

1.

한 영혼을 바라보며 목양에 힘쓰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지역사회를 복음화하는 데 귀하게 사용되는 능력의 종 되게 하소서.

2.

교회의 연약한 상황들로 인해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게 하시고 도시 교회들이 한 지체 의식으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돕는 데 열심을 내게 하소서.

3.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의 수고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많은 결실을 맺게 하시며 속한 지역에서 존경받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4:4-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4:4-5

제사를 드리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받지 않으시는 제사도 있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어떤 사람의 예배는 받으시고 어떤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는 반드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려야 합니다.

"너희는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고"

레19:5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레22:20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 : 하나님이 명하신 방법대로 드리는 제사. 레위기는 제사법을 너무 지루할 정도로 자세하게 기록합니다. 내 방식대로 드리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레9:6

레위기10:1-2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다윗이 법궤를 옮길 때)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 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삼하6:6-7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족장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케 하고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대상15:12-13

모든 제사의 특징 : 피 흘림이 있습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9:22

구약의 제사 : 죄를 가리는 제사 (정결한 짐승의 피)

신약의 제사 : 죄를 씻는 제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보혈)

그럼 이런 반문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사법도 가르쳐 주시지 않고 누구의 제사는 받으시고 누구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는 것은 불공평하다. 과연 그럴까요? 성경에는 아담이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인과 아벨이 제사법을 누구에게서 배웠을까요?

성경을 보면 이삭이 제사법을 알고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22:7

성경을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는 기록은 나오지만 번제할 어린 양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삭이 누구에게서 제사법을 배웠을까요? 아버지 아브라함.

성경을 보면 야곱이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28:20-22

그렇지만 성경 어디를 보아도 야곱의 아버지 이삭이 십일조를 드렸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것은 나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아직 이삭도 태어나기 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십일조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삭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단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가인 또한 아버지 아담에게서 배운 대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가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정한 방식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드린 것입니다.

가인 : 농사하는 자

아벨 : 양을 치는 자 (용도 : 옷, 제사, 노아 홍수 이전에는 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창9:3-4

가인이 농사하는 자이니까 농산물로 제사를 드린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양식을 주고 양을 사와야 했습니다. 동생에게 양식을 주지 않았을 때 동생이 얼마나 섭섭했을까요? 동생에게 원망들을 일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5:23-24

"곡식을 내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나 파는 자는 그 머리에 복이 임하리라"

잠11:26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있고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가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예배의 겉모습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중심을 보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창4:4

이사야 1장 10~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예배가 피곤하고 제물을 가져오고 성회를 베푸는 것과 찬송을 드리는 것도 귀찮고 싫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죄를 회개하지 않은, 피 묻은 손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악을 버리지 않은 채 거짓되고 속이는 제사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사1:13-15

우리는 자신이나 사람들을 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예배는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신앙적인 상처를 받게 됩니다. 늘 열심히 해왔는데 하나님이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면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우리는 이 히브리서 11장 4절에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과 아벨의 제사를 받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참된 예배는 전통과 형식이 아니라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11:6

가인과 아벨이 어떻게 예배를 드렸는지 성경에서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잘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벨은 믿음으로 예배를 드렸고 가인은 종교의식과 형식으로 예배드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예배가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율법의 예배가 아니라 은혜의 예배요, 문자의 예배가 아니라 영의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살아있는 예배, 성령의 예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방자하고 교만하고 전통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왔지만 사람만 봅니다. 예배가 진지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분 앞에 믿음으로,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입니다.

두번째, 참된 예배는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아벨은 예배를 드린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의롭다’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죄가 감추어졌다는 것입니다.

가인이 드린 곡식의 제물은 마치 무화과 잎으로 드린 것과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나뭇잎으로 수치를 가리려했지만 결코 그 수치가 가려지지 않았던 것처럼 가인이 드리는 예배는 가인의 죄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죄를 지은 그대로 제사에 나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무화과 나무 잎을 거두시고 동물을 죽여 가죽옷을 지어입힘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가리워 준 것처럼 양의 제사는 양이 죽음으로 피 흘린 제사였습니다. 이 피는 죄를 가리워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벨이 드린 제사는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죄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죄가 가리워진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가 가리워져야 예배가 가능해 집니다. 죄가 가리워지지 않은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예배는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예배는 예수의 피가 여러분의 죄를 가려줄 것이며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겨 주실 것입니다. 그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당시에는 가죽옷을 입히고 어린양을 바친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망원경을 볼 때 초점이 맞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초점이 잘 맞으면 사물이 정확하게 보입니다.

이와 같이 정확하게 보인 것이 바로 갈보리언덕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누구든지 그 피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회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이 예배가 가죽옷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벨의 어린양으로 드린 제사와 염소와 송아지로 제사장이 날마다 제사를 드렸지만 그것은 완전할 수 없었습니다. 갈보리 언덕에서 예수로 드린 제사로 우리의 죄가 비로서 눈과 같이 희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바로 ‘의로운 자’, 거룩한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가 있는 자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인간의 죄를 가릴 수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단순히 설교만 듣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죄가 가리워지고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되어서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가 됩니다. 이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십니다.

히브리서 9장 6절~14절을 보면 우리는 송아지의 피나 염소의 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양심이 깨끗해지며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예배가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예배가 아니라 아벨이 드린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는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예배 드릴 때 성령께서 우리의 양심까지 깨끗케 하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느끼며 하나님의 구원과 죄 용서를 경험하고 능력이 내안에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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