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경과 생명을 위하여
온 인류가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여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대로 환경을 다스리게 하소서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낙태와 아동 학대 등 생명 경시 풍조가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환경과 생명을 위해 일하는 관계자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셔서 효율적인 정책이 세워지게 하시고 교회와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창3:22-2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3:22오늘은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세 가지로 나눠 살펴 보겠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3:21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는 수치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 나무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와 수치는 가려지지 않습니다. 가리면 가릴수록 더 보이고 감추면 감출수록 더 커지는 것이 죄입니다. 죄와 수치는 절대로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려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을 감추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상대방의 허물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고발이고 비판입니다. 가족들의 허물을 들춰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마치 부모가 자녀의 수치를 남이 볼까봐 감추는 것과 같이 우리의 수치를 드러내지 않고 감춰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수치를 가리워 주기 위해서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습니다.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물을 죽여야 합니다. 에덴동산에 첫 죽음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물을 죽여 피를 흘린 후 가죽을 얻었고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서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리워 주신 것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32:1"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3:27"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후5:4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의 허물과 실수를 덮어주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주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면 하나님의 은혜가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남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이 깨달아집니다. 내가 남을 사랑하지 않거나 남의 허물을 덮어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기도의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사랑표현은 생명나무를 숨긴데 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보좌에 있었던 영원한 생명을 주는 복된 나무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을 보면 그 나무가 생명수의 강과 하늘의 보좌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복과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한 나무가 아담이 죄를 짓고 난 후에 감추어 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를 숨긴 것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3:22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7-19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습니다. 따라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생명나무 실과를 먹는다면 진짜 저주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사망의 몸으로 저주 받은 땅에서 영원히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련의 한 무기수를 가두는 형무소는 민가에서 무려 4-5시간 운전을 해야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면회를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곳에 수형되어 있는 죄수가 약 300명 가량 되는데 그들이 죽인 사람의 수는 무려 8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좁은 감방에서 무려 10몇 시간을 눕지도 못하고 앉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좁은 감방에서 걸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위를 감시하는 CCTV가 있어 굶을 자유도 없고 누울 자유도 주어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련에서 사형을 금지하는 법령이 선포된 후에 무려 몇 명이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 죽음만이 이 끔찍한 곳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인데, 죽지도 못하고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영원히 사는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도록 그들을 쫓아내신 후 에덴 동편에서 토지를 갈아 먹고 살게 하시고 천사를 통해 그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십니다. 생명나무를 감추시는 하나님의 마음 속에는 아담과 하와를 살리고자 하는 놀라운 사랑이 숨어 있었습니다.
생명나무를 숨기는 유일한 방법은 에덴동산을 폐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없이 에덴동산을 폐쇄시키시고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쫓아낸 것은 아담과 하와를 저주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 고치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마치 집안에서 아이가 심각한 병에 걸리면 병원에 보내어 치료받게 하는 것은 그 아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살리려는 부모의 눈물어린 사랑과 같습니다.
생명나무에 대한 설명이 22절 중간에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22절에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라는 말은 잘못 보면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담은 아무리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해도 인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선과 악을 아는 능력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없앨 수도 있고 사탄을 심판하고 내쫓는 능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지을 수는 있지만 죄를 다룰 능력은 없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니라 죄를 경험한 것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죄를 처리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사탄에게 빠져 버렸고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은 저주와 멸망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창3:23에덴동산은 복된 동산이며 영생하는 동산입니다. 그곳은 죄가 없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곳입니다. 에덴동산은 노동하지 않아도 계절마다 먹을 것이 있고, 물을 구하기 위하여 지하수를 파지 않아도 됩니다. 그곳은 성취의 기쁨과 보람이 있는 노동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에덴동산에서 그들을 축출하셨고 축출당한 아담과 하와가 간 곳이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이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질병도, 죽음도, 저주도, 가시나무도, 엉겅퀴도 없는 복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완벽한 곳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사탄이 쫓겨난 곳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일컬어 ‘공중권세 잡은 곳’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요, 저주와 죽음이 있는 곳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7~80년만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오래 산다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적당한 때에 죽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후 이 세상은 저주를 받았다고 했는데 동물과 식물의 세계는 어떨까요? 가끔 ‘동물의 세계’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거기에는 동물들이 너무나 예쁘고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야말로 생존경쟁이 치열한 곳입니다. 적자생존과 먹이사슬이 존재하는 오로지 생존만을 위하여 사는 곳이 동물의 세계입니다.
현대를 가리켜 환경오염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원시시대의 환경은 오염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처음부터 죄입니다. 죄가 진화되어서 오늘과 같은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오늘날과 동일한 불치병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있는 곳에는 질병과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박물관에 있는 많은 유물을 보면서 느낀 것은 애굽의 화장술과 미용술은 현대인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문화와 학문이 있었습니다. 원시인들의 고독과 허무는 현대인들과 동일했습니다.
죄는 어느 곳에 가든지 마찬가지입니다. 고대나 현대나 죄의 현상은 동일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고 있는 모든 사회현상은 아담이 살던 시대나 예수님이 살던 시대에도 동일하게 있었던 일입니다.
아담이 세상에 들어왔을 때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 하루 종일 땀을 흘려야 하는 땅을 보고 말할 수 없는 절망과 좌절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을 향한 그리움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은 폐쇄되고 생명나무는 감추어 졌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아담은 그 후로부터 눈물겨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