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북한을 위하여
북한의 주민들이 주체사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김정은 3대 우상 체제가 무너지게 하시며 북한 전역에 있는 김일성 우상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세워져 있었던 3천여 교회들이 다시 회복되게 하시고 김일성 동상이 세워진 그 자리에 장대현교회가 다시 일어서게 하여 주소서.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과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 받고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시고 그들이 속히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그날이 임하게 하시며 평화적 통일이 앞당겨지게 하소서.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탈북민들이 무사히 정착하여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쓰임 받게 하소서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창3:7-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창3:7창세기 2~3장을 보면 죄가 들어왔을 때의 현상을 몇 가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죄가 인간 속에 들어왔을 때 생긴 첫번째 현상은 ‘부끄러움’이라고 3장 7절에서 말합니다. 수치심입니다. 죄를 짓기 전에 인간에게는 수치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죄를 지은 인간은 수치심으로 당황한 나머지 급히 무화과 나무 잎으로 그들의 수치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가리워지지도, 숨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죄는 인간의 노력이나 방법으로 감추면 감출수록 더욱 커지기만 합니다. 그래서 죄인은 더욱 숨고 피하고 도망갑니다.
수치감이 그대로 남겨져 있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그들의 몸을 에덴동산에 있는 나무 뒤에 숨겼습니다.
죄인은 도망자입니다. 하나님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죄인의 운명입니다. 죄인은 불러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도망합니다. 도망자의 삶은 공포와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10절을 보면 아담과 하와는 그 후로부터 이전에 없었던 두려움과 공포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본질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있든지 없든지 인간은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쫓기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다보면 외로움과 고독이 찾아옵니다. 누군가 옆에 있어도 외롭고, 없어도 외롭습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극에 달하면 두려움을 주는 상대를 죽이고 싶어집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없어지면 자살합니다. 병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돈이 없다는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은 급기야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항상 여호와를 기뻐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유혹을 이겨야 됩니다.
유혹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엎어집니다. 많은 영웅들이 곤두박질칩니다. 하늘의 별 같은 인물들이 떨어져 별똥이 됩니다.
우리가 이런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복과 사랑과 은혜를 계속 받으면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따라 합시다. “호기심을 조심하자.”
아담의 집이 망한 것은 이브의 호기심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이 호기심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담배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 맛 좋다!”라고 하는 아기는 없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면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춘기 때 ‘담배 맛이 어떤가?’하고 호기심으로 피웠다가 담배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폐가 상하고 온몸이 찌들어도 그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마약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약이 무언지도 모르던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마약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 번 접했다가 인생을 망치는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술을 즐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으로 술을 했다가 나중에 술꾼이 되는 것입니다. 호기심 때문에 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다윗의 군사들은 전쟁을 하고 있는데 다윗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 지붕 위에서 산책하다가 한 아리따운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의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야! 예쁜데……. 누굴까? 저 여자하고 잠을 자면 얼마나 좋을까?’
호기심 때문에 결국 그 여자를 불러다 취하고 그 남편을 죽입니다. 만일 다윗이 그 호기심을 막았다면 오점 없이 영원히 빛나는 다윗이 되었을 텐데, 그 호기심을 막지 못해 영원히 부끄러운 다윗이 된 것입니다.
사무엘하 13장에도 호기심 때문에 망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의 배다른 누이 다말을 보니 너무나 예쁩니다.
‘저 누이와 함께 자면 어떨까?’
암논은 호기심 때문에 결국 다말을 폭행하여 다말에게는 상처를 입히고 자기는 2년 후에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의 칼에 죽습니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성의 여자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옷은 어떻고, 액세서리는 어떤 것을 했을까?’하는 호기심 때문에 세겜 성에 갔다가 폭행을 당하고 그것을 알게 된 야곱의 아들들이 그 성에 복수를 해서 피바다가 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혹은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구나.’하고 그것을 잘 분별해서 호기심이 일어날 때 ‘주여!’하고 마음을 지켜 넘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마귀에게 걸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유혹이 있는 장소에는 가지 않아야 됩니다.
이 지구촌, 우주가 하나님의 것이지만, 사람을 엎어뜨리기 위해 마귀가 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술집에서 은혜를 받겠습니까? 나이트클럽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습니까? 그런 곳은 사단의 화살, 사단의 공격을 받는 곳입니다. 사단의 유혹을 받는 곳입니다.
어떤 권사님의 아들이 모 병원의 과장이었습니다. 서른 네 살의 착실한 의사였는데 하루는 동료 의사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술집 색시에게 코가 꿰였습니다. 그래서 우아하고 귀한 자기 아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술집 색시가 나오라 하면 나가고 들어가라 하면 들어갔습니다.
그 의사에게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할머니도 의사였습니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증조할머니를 보고 “할머니!”하고 달려갔는데, 아이가 너무 빠르게 달려들어 할머니가 뒤로 넘어졌습니다. 그 바람에 할머니가 허리를 다쳐 척추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취과 의사였던 그가 할머니에게 마취 주사를 놓았는데 할머니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 길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도 그 의사가 깨닫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여자가 의사의 집에 쳐들어 와 착하고 고운 의사 부인의 멱살을 잡고 “네가 여자냐? 남편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네가 여자냐? 이 집은 내가 지킬 테니 너는 나가라.”라고 했습니다.
그런 일 때문에 담임목사님이 몇 번이나 권면했으나 그는 삼 년간 교회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여자가 의사에게 부인과 이혼을 하라고 졸랐습니다. 의사가 “내가 너를 사랑하지만 이혼은 안 된다.”라고 하니 그 여자가 앙심을 품고 그를 곤히 잠들게 한 다음 연탄불을 피워 그의 머리맡에 두고 도망을 갔습니다. 결국 그 의사가 가스 중독으로 숨졌습니다.
여러분, 아들 딸을 잘 길러서 아무리 훌륭한 의사, 변호사, 법관으로 만들어도 그 아들 딸이 마귀의 공격을 받아 유혹에 빠지면 하루아침에 비참한 지경으로 떨어집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자녀들도 유혹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손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살아야 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유혹이 있는 자리에는 가지 않아야 됩니다. 유혹이 있는 곳에는 가지 않는 것이 망하지 않는 길입니다.
교회에는 한 번 와도 구원 받고 천 번 와도 은혜를 받습니다. 억만 번 와도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곳에는 한 번만 가도 코가 꿰여서 망합니다.
바다나 강에 수많은 물고기들이 있지만 낚시 바늘 주위를 맴도는 물고기가 결국 낚시꾼에게 걸리게 됩니다. 물고기가 ‘구경만 하지 먹지는 않아. 지렁이야, 네가 아무리 나를 꼬여도 나는 너를 안 먹어. 그냥 구경만 하는 거야.’라고 하더라도 그 주위를 맴돌다 보면 지렁이를 덥석 물게 되는 것입니다. 덥석 무는 순간 ‘아!’ 하지만 때는 이미 늦습니다.
그리고 유혹에 이기려면 사귐을 주의해야 됩니다.
뱀은 우아하고 지혜롭고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매력이 흐르는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그 피조물과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망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악인의 꾀를 좇으면 안 됩니다. 악한 자나 교만한 자의 자리에 서도 안 되고, 앉아도 안 됩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나라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국가가 성공하는 길도 의로운 나라, 좋은 나라, 잘되는 나라와 어깨를 같이 하고 함께 나가는 것입니다. 다 망한 나라, 악한 나라, 온 세계가 손가락질 하는 나라를 사랑하고 그런 나라와 사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실패한 개인이나 가정이나 나라에는 불평과 불만과 부정적인 것뿐입니다. 그러니 사귐을 주의해야 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사람과 사귑니다. 복 있는 사귐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만나면 은혜가 되고, 힘이 나고, 기도하고 싶고, 신앙의 불이 타오르게 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야 됩니다. 그 사람을 만나면 교회를 멀리 하고 자꾸 세상으로 향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여러분을 유혹으로 끌고 가는 사단의 앞잡이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을 이기는 길, 유혹을 이기는 길은 어떤 순간에라도 말씀의 길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 아내의 끈질긴 유혹을 받아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니 이겼습니다. 기차가 레일로 가듯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길로만 가야 됩니다. 유혹을 받아 마음이 흔들려도 ‘나는 말씀의 길로만 간다’라는 원칙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생각해야 됩니다. 선악과만 먹지 않았으면 낙원에서 길이길이 잘 살고, 선악과를 먹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호기심으로 먹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삼손이 자기 비밀을 알려주면 망할 것을 알면서도 우선 눈에 보이는 들릴라의 사랑 때문에 비밀을 말했다가 자기 눈이 뽑히고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미국의 TV에는 가끔 ‘당신이 유혹 받을 때 가족을 생각하시오.’라는 광고문이 나옵니다. ‘당신이 유혹을 받을 때 가족을 생각하시오.’라는 말은 ‘만일 당신이 유혹을 받아 그대로 행하면 당신의 아내와 자녀들은 어떻게 되겠느냐? 당신의 집은 어떻게 되겠느냐? 그 결과가 뻔하지 않느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사람들이 ‘그래, 그러면 안 되지.’하고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악과를 먹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내다보아야 합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마귀는 거짓말꾼이요, 거짓의 아비다.”
마귀는 자기가 한 말에 절대로 책임지지 않습니다. 마귀는 자꾸 우리에게 “선악과를 먹어라. 하나님같이 된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으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됩니다. 그러나 마귀는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아간에게 “아간, 금덩어리를 훔치면 너는 부자 돼.”라고 유혹합니다. 그 유혹에 넘어간 아간이 금덩어리를 훔쳤다가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때 마귀는 아간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습니다. 마귀에게 쓰임 받은 가룟 유다가 자살할 때도 마귀는 책임지지 않고 자살하도록 그냥 버려둡니다. 마귀는 사용한 다음에는 버립니다.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부부가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적극적으로 부부생활을 해야 됩니다.
따라 합시다.
“공격적으로 부부생활하자. 적극적으로 부부생활하자.”
이렇게 사는 것이 성적 유혹을 이기는 길입니다. 다윗이 자기 아내와 거리가 있으니 마귀가 틈을 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생활에 넘치게 은혜를 받아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은혜를 받으면 만족하게 되니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오래 전 부산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성탄절 음악 발표회를 준비하던 성가 지휘자가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이번 성탄절에 중요한 교수 세미나가 급하게 열립니다. 제가 꼭 참석해야 할 세미나입니다.”
“아니, 집사님. 이렇게 중요한 성탄 음악 예배를 앞두고 지휘자가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너무나 중요한 세미나라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 지휘자가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성탄절에 서울의 한 호텔에서 불이 났습니다. 방송국마다 뉴스 속보로 그 사고를 보도했습니다. 지휘자의 어린 아들이 TV를 보다가 “우리 아빠가 저기에서 불 타 죽는다. 우리 아빠 저기 불 타 죽는다.”라고 했습니다. 그 부인이 “그런 소리 하지 마. 아빠가 왜 저기 있어?”하며 아들을 나무랐습니다. 그런데 그 지휘자가 일주일이 되어도 십 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인이 혹시나 하고 그 곳을 가 보았습니다. 여자를 안고 불에 타 죽어 있는 한 남자의 호주머니에 덜 탄 수첩이 있어서 살펴보니 자기 남편의 것이었습니다. 성가 지휘자가 유혹에 빠져 성탄절 예배 지휘도 그만두고 제가 여학생과 호텔에 가서 춤추며 마시고 놀다가 불에 타 죽은 것입니다.
길은 뻔합니다. 마귀가 손짓하는 길은 죽음의 길, 부끄러운 길, 명예가 떨어지는 길, 창피한 길입니다. 눈이 뽑히는 길입니다. 자식과 아내와 가정이 상처를 받고, 교회가 수치를 당하는 길입니다. 은혜 받는 길, 축복을 받는 길로 나가면 명예롭게 되고 가정과 교회가 됩니다. 뻔합니다. 선명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약해서 순간에 흔들립니다.
우리 모두는 유혹이 올 때 하나님 앞에서 잘 분별하여 유혹을 물리치고 언제나 가야 할 길을 잘 갈 수 있기 바랍니다. 은혜 생활을 하고, 건강한 가정생활을 해서 천당에 이사 갈 때까지 우리 명예를 지키고 우리 가정이 든든하게 서고, 빛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4년 7월 5일 오전 6: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