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담임목사를 위하여
말씀의 은사를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영적인 민감함을 주사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게 하시고 목자의 가슴과 아비의 눈물로 모든 성도를 깊이 사랑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겸손의 리더십을 갖게 하소서.
목사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온전히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고 가정에 평안을 주소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2:24-2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2:24이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가정은 첫번째 ‘독립성의 원리’를 가져야 합니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에 의해 태어나고 양육되고 사랑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결혼 적령기가 되어 결혼을 합니다. 결혼 적령기를 놓친 자녀를 둔 부모는 속이 많이 탑니다. 자녀보다 열배나 더 속이 탑니다. 그러나 부모는 결혼시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결혼의 원리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결혼이란 부모의 삶의 연속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종족보호 본능 때문에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결혼이 종족보존의 이용물이 되기 때문에 우리들의 가정이 불행해집니다.
젊은 남녀가 사랑해서 가정을 이루었다는 것은 ‘분리’를 의미합니다. 결혼은 새로운 출발입니다. 부모의 삶의 계승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세포가 새로 독립 분열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한 세포가 분열하여 떨어져 나갈 때 그것은 독자적인 세포를 이룹니다.
24절을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부모를 떠나 남자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시집살이가 시작되고 제사도 지내야 하는 등 독립적인 삶이 전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시기는 나이가 50세나 60세가 되어야 겨우 가능해 집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는 말에는 여자도 부모를 떠나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처음 결혼한 부부는 인생을 오래 살았거나 애기를 낳아본 경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어른들이 볼 때는 불안하고 여러 가지 실수가 있기 때문에 자꾸 간섭하고 개입하여 잔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결혼하는 순간부터 독립의 원리를 적용시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 실수가 있고 부족해도 떼어 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수와 잘못이 있어도 빠른 시간에 회복하고 결정권을 가지고 독자적인 가정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떠난다는 것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를 떠나 분가하기를 원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도움을 받기 원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부자인 것과 아들의 경제사정은 관계가 없습니다. 가족의 독립성은 진정한 새로운 가정의 출발입니다.
자식이 결혼하기를 원했던 부모도 막상 자식이 결혼하면 섭섭해 하고 고독해 합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결혼을 하면 일단 독립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는 외롭고 고독해 질 것입니다.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회에 오시면 됩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에게 기대하던 마음을 끊고 인생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며 천국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에게 계속 미련을 두어 40세가 넘고 50세가 되어도 자식을 조종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혼 후에도 항상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녀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녀는 항상 모든 일을 모두 부모가 해주었기 때문에 혼자 세상을 뚫고 살아나갈 힘이 없습니다.
부모가 이들을 돕는 것이 임시방편은 될 수 있지만 결국 자녀들을 무능한 부부로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자녀들이 독립해서 결정하고 그들이 판단하고 살아나갈 능력을 주는 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축복하는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식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자식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식에게 기대지도 마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 있을 뿐입니다. 자식은 자식의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자녀를 무능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두번째,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가정의 원리는 연합입니다.
24절을 보면 ‘그 아내와 연합하여’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합한다는 말은 아교풀로 두 물체를 붙인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간섭하고, 자녀들은 남편이나 부인과 의논하지 않고 자기 어머니와 의논하는 이유는 부부가 연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했지만 연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빈 공간을 열어 준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결혼은 부부가 아교로 붙이는 것처럼 하나가 되어 어떤 누구도 들어올 수 없도록 밀착해야 합니다. 연합할 때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했다고 해서 갑자기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문화라는 것이 그 사람들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가정, 학교,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부모에게서 길들여진 습관, 가풍, 물질관리, 대인 관계 등 모두가 다릅니다. 둘이 만나서 사랑하지만 문화가 맞지 않기 때문에 매일 매일 부부는 문화적인 충돌을 합니다. 이렇게 살아온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부부는 서로 맞추어야 합니다.
맞추는 방법은 자기의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이기려고 합니다. 이것은 남북전쟁과 동일합니다. 남과 북이 만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부부는 죽을 때까지 서로 싸우다 맙니다.
또 서로 상대방을 이용하면 안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할 때 상대방의 학벌과 가문을 따지는 이유는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 것을 포기해야 상대방의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연합하려면 자기의 꿈을 포기하고 두 사람이 일치하고 동의한 새로운 꿈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이것은 아교처럼 잘 붙습니다. 상대를 이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 싸움은 끝이 없습니다.
두번째, A라는 물체와 B라는 물체를 붙이려면 그 접촉부분을 깨끗이 닦아야 합니다. 그곳에 물기가 있다거나 녹이 슬었다거나 먼지가 있다면 아무리 좋은 접착제로 붙였다고 해도 곧 떨어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와 잘 연합하기 위해서는 상처와 잘못된 부분을 깨끗이 치유해야 합니다. 많은 부부들의 문제는 서로가 치유되지 않은 채 결혼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우리는 사춘기와 대학생활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모두 상처를 받고 삽니다. 이 상처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되어야 합니다. 상처가 고백되고, 공개되고, 그 아픔들이 치유되어 이기적인 자기 동기와 개성을 포기해야 합니다. 상처난 부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깨끗이 치유돼야 합니다. 그러나 치유는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세번째, A라는 물체와 B라는 물체가 잘 접촉하기 위해서는 좋은 아교풀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과 용서라는 접착제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접착제가 있을 때 남자와 여자는 연합됩니다. ‘연합되었다’는 말은 떨어질 수 없고 헤어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뼈는 부러진 후에 다시 봉합을 하면 더욱 튼튼한 뼈가 되고, 나무를 아교로 붙이면 보통 나무보다 더욱 견고하게 되듯이 미완성인 남녀가 만났지만 예수로 온전히 연합이 될 때, 이 세상에 어떤 시험도 두 사람 사이를 나눌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성경적인 가정의 원리는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두번째 부부사이는 강력하게 물샐틈없이 하나가 되는 연합이 있어야 합니다.
네번째, 24절에서 ‘둘이 한 몸을 이룬다’고 되어 있듯이 가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 몸을 이루는 것’에 있습니다.
몸은 갈라지면 두 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갈라지면 죽습니다. 그것이 몸의 특징입니다. 한 몸을 이루는 것은 단순히 정신적이고 이상적인 관계 이상의 것이며 육체적이고 성적인 것 이상의 관계입니다. 부부란 영적인 것이며 인격적인 것입니다.
현대 가정의 위기는 동물처럼 살거나 짐승이 되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사람마다 누구든지 분열과 헤어짐의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통하여 화해와 만남, 진정한 가정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만남과 회복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엡2:14-16그렇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상처가 치유되고 한 몸을 만들며 막힌 담을 헐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된 부부에 대해 25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2:25참된 부부란 부끄러움이 없는 관계여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부부관계가 부끄러움이 없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부부사이가 투명하다는 것이고, 거짓이 없다는 것이며,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부끄러움이 없는 관계가 됩니다.
부인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때 이 가정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가정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부부사이에 흘러넘치기를 축원합니다.
2024년 6월 27일 오전 6: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