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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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1.

가정마다 예배와 기도가 멈추지 않으며 아름다운 신앙이 은혜 안에 대물림되는 믿음의 명문 가정이 되게 하소서.

2.

가정의 모든 관계가 화평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안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게 하소서.

3.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바르게 양육하는 성경적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되게 하소서.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창2:8-1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에덴 동산에 대해 우리는 9절과 10절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9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9

첫째, 에덴동산에는 나무가 많았습니다. 시멘트가 있는 곳보다 나무가 있는 곳이 더 좋고, 거대한 곳보다 소박한 곳이 더 좋습니다. 집은 화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편안하면 됩니다. 또 집에는 먹을 것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집이 좋아도 먹을 것이 없으면 불편한 집니다.

에덴동산에는 먹을 것이 많았습니다. 각종 나무가 있어서 보기에 좋았고 먹기에도 좋았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은 은혜로 사는 곳입니다. 자유함과 찬양과 안식이 있는 곳이 에덴동산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침마다 출근 전쟁을 해야 하고, 생존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간신히 삽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은 은혜로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창3:18을 보면 인간이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인간이 쫓겨난 곳은 가시와 엉겅퀴가 있고, 인간이 종신토록 수고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저주의 땅을 예수님이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성경의 첫 두 장 창1-2장과, 성경의 마지막 두 장 요한계시록 21-22장이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 주신 낙원이요, 복락원입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안식의 시작)"

창2:1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안식의 완성)"

계21:6

"동산 중앙의 생명나무"

창2:9

"도성에 가득한 생명나무"

계22:2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

창2:10

계22;1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강

맨 앞의 세장에서부터, 맨 뒤로부터 세 번째 장까지가 구속사 (창3장- 계20장)입니다.

여자와 여인의 후손이 뱀과 뱀의 후손과 싸우는 영적 전쟁의 기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치열한 전쟁터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내 삶 속에 누리고 지키기 위하여 영적 갈망을 가지고 도전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창 2:9). 생명나무와 선악과입니다.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둘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으셨습니다(창 3:24).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창 4:22).

만약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죽지도 않고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 속에서 영원히 살고 있을 것입니다. 속이고, 사기치고, 남에게 상처주고, 육체적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아픔 속에서… 아마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나쁜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 죽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를 지키신 것은 정말 잘하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원래 죽도록 창조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죽는 존재가 아닙니다. 단지 ‘생명 되신 창조주와 함께 영원히 살 것인가(eternity with God), 아니면 하나님 없이 영원히 살 것 인가(eternity without God)’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 창조주가 없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없이 영원히 사는 것을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진정한 생명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살아있으나 이미 죽은 것이었습니다. 죄악으로 인해 생명 되신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이 땅에서도 죽었습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면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살리신 것은 하나님과 단절된 죽음에서 건져내어 살리신 것입니다. 즉 이 땅에서 죽었다고 할지라도 그 창조주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며, 죽어도 그분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요11: 25, 2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막으셨던 생명나무는 바로 예수님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을 먹으면 창조주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 땅이 아니라 상함도 해함도 없는 새 하늘 새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감취었던 이 생명나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다시 나타난 것을 찬양합니다. 어거스틴은 이 나무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생명나무이시며 생명의 떡, 생명의 음료이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생명나무 뿐만 아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소개합니다. 선악과를 생각할 때 사과 같은 과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말 그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곧 그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선과 악을 구분하는 능력이 생기는 나무입니다. 굉장히 매력이 있어 보입니다. 우리가 선과 악을 구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을 먹으면 죽습니다. 왜냐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뒤에는 사탄이 웅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먹지 말라 하셔서 사람을 죄 짓게 하셨나? 하나님이 이해가 안 된다.”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창조주와 피조물 관계에서 침범해서는 안되는 구분선이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요, 통치의 대리자로 출발한 사람은 너무나 탁월한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자칫 하나님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위치를 지키도록 하기 위해 구분선을 두셨습니다. 그것이 선악과입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가 안하는가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스스로 주권자가 되기를 선택한다면 선악과를 먹을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한다면 먹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주권에 인정하는 뜻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금령의 나무 열매를 먹는다면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고 스스로 결정권자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선악과는 일종의 신호, 즉 표시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나무가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아담은 자기가 자신의 신이 아님과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자기의 창조주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서만 살 수 있는 피조물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려는 시도는 하나님에게서 벗어나서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는 인간의 교만함을 보여줍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하면서 한 말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뱀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말로 인간을 유혹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나 유혹되어 범죄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으려 합니다. 영광을 받고 싶어 합니다. 주권을 행사 하려고 합니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합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는 정죄하고 심판하려 합니다.

사람에게는 심판의 권한이 없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기 위하여가 아닌 죄인이라도 변호하고 살리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참소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마귀의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계12:10

마귀를 참소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대언자이십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2:1

생명나무의 질서는 살리는 질서입니다. 선악을 가려 판단하는 일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따져서 결론을 내리고, 심판하라고 부르지 않고 섬기고, 공급하고, 살리는 제사장 역할을 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마귀를 따르는 자가 아니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 믿음의 결과는 그와의 연합을 통하여 그의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는 일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5:17-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심판이 오게 되고,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인하여 은혜와 의의 선물이 지속해서 흘러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대표성의 원리, 혹은 연대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믿음은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고, 연합하게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혜택들을 믿음으로 얻고 삽니다.

여러분은 선악과의 질서 아래 삽니까? 생명나무 질서 아래 삽니까? 그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악과 질서 -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살리며 격려하는 일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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