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지역 사회의 연약한 영혼들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 말씀 충만, 기도 충만하게 하시고 모든 예배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회복과 부흥이 있게 하소서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4-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창2: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순서가 바뀝니다. 어떻게 바뀌지요?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에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로)
4절 후반절부터 하늘과 땅의 순서가 바뀌어서 땅이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창2:5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라고 하며, 땅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따라서 창1:1-2:4 전반부까지는 하늘이 중심이 되고, 창2:4 후반부부터는 땅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1-2장은 두 개의 창조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1:1-2:4 전반부까지는 장엄하고 능력있고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하나님에 대한 호칭도 엘로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2:4 후반절 부터는 여호와 하나님 이라는 단어로 바뀝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하나님으로 표현이 바뀐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창1장은 하나님이 중심인 책입니다. 그런데 창2;4부터는 지금까지 설명하고 있던 창조를 다른 각도에서 봅니다. 이것은 마치 창1:1부터 시작되어 펼쳐지는 커다란 창조의 파노라마 중 한 곳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그 스포트라이트는 사람 사람에게 비추어 집니다.
1장은 하나님이 대해, 2장은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우주 창조의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우주와 역사와 인생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관심을 두는 대상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전자를 천지창조에 대한 우주론적 관점에 의한 기록이라고 한다며, 후자는 천지창조에 대한 인간론적 관점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두 가지 시각으로 조명되어 있어서, 우리는 그 의미를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창조 이야기는 상호 모순되거나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오히려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6본 기사는 인간 창조의 서론으로서 먼저 인간이 창조되기 직전의 세상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지구는 오늘날과 달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홍수 심판 이후의 지구입니다. 처음 지구는 지금과 달랐습니다. 처음이 좋았습니다. 처음이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한 이후 달라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2:5-6지금과 무엇이 다른가요?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그 당시 들의 초목과 밭의 채소가 어떻게 잘랐습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자라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올라오는 안개를 먹고 자랐던 것입니다. 따라서 비가 없으니 당연히 병충해가 없고 햇볕과 안개를 먹고 자라니 당도가 높아 최고로 맛이 좋았겠지요.
처음 세상에는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지구 전체가 궁창 위의 물 층으로 인하여 거대한 온실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실 안 모든 곳에는 온도가 균일한 것처럼, 지구 전체 온도가 똑 같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처럼 어느 쪽은 여름인데, 지구 다른 쪽에서는 겨울인 경우가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수분 공급은 일교차로 인한 물의 증발과 응축을 통해서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으며, 아울러 샘을 솟게 하는 방식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낮과 밤 사이의 기온의 차이는 수분 덩어리가 날마다 증발하여 매일 밤 주변 지역에 이슬이나 안개로 응축되어 가득 차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이 셋째날 후반에 식물군이 형성되기에 앞서 둘째날 하늘 위의 궁창과 셋째날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땅이 드러날 때에 형성되었습니다.
비가 억제된 것은 거대한 수포대, 즉 궁창 위의 물 때문이었습니다. 궁창 위의 물이 마치 온실과 같이 지구 전체를 거의 같은 기온이 유지되었으므로 그러한 조건에서 거대한 공기 덩어리가 이동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비가 내리는 데 필요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아 대홍수 이후로 궁창 위의 물이 쏟아진 결과 지구의 온실 효과는 사라지고 지구 한 쪽은 덥고, 반대쪽은 추운 현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추위와 더위가 시작된 것입니다. 따라서 지역에 따른 기온 차이는 거대한 공기 덩어리를 움직이게 되었고 태풍과 비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현재의 순환은 먼저 태양열에 의해 바닷물이 증발되어 대기의 순환을 통해 대륙으로 이동되고, 그런 다음 비나 눈의 형태로 응축된 채로 땅에 내려와서 강을 통해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단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노아의 믿음이 대단했던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는 것을 한번도 경험한 일이 없었던 노아가 홍수로 심판하신다는 말을 믿고 120년을 방주를 지었다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노아의 말을 믿기 어려웠던 것도 그들이 한번도 비를 경험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홍수가 세상을 심판한다고 하니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2:7이제 창조 해설은 넷째날과 다섯째날을 뛰어넘어 곧바로 인간 창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인식시키시기 위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이 말씀에는 깊은 교훈이 있습니다.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을 알아야 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본질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의 본질, 우리의 근원, 우리의 체질은 흙입니다. 흙이라도 흙먼지인 티끌(dust)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흙도 아닌 흙먼지인 티끌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을 보십시오.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자동차를 만들어 타고,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날고, 빌딩을 짓고 큰 도시를 만듭니다. 달과 우주를 정복하려고 연구를 합니다. 그 하는 일이 참으로 대단하고 굉장해서 사람은 다른 어떤 피조물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원숭이와 사람, 짐승과 사람의 차이는 감히 견줄 수 없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본질은 흙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9절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흙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흙이라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조그마한 병균이 들어와도 휘청거리고 죽습니다. 자동차에 부딪혀도 일그러지고 죽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흙이 됩니다. 물론 우리의 영혼은 하늘나라에 올라가지만 우리의 육신은 일단 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부활할지라도 일단은 흙이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몇 만 명의 사원을 거느린 CEO이고, 몇 억만금을 쌓아놓은 부자이고, 하늘을 찌를 만한 권세가 있다 해도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흙입니다. 오늘 밤에 집으로 가다가 갑자기 죽을 수 있는, 질그릇같이 연약한 우리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겸허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너무 교만한 사람, 거만한 사람을 만나도 열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살다 보면 참으로 희한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살다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납니다. ‘흙 덩어리 주제에 …….” 이렇게 생각하고 열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 받으면 병만 옵니다.
우리는 늘 겸손하게 살고, 희한한 사람을 만나도 ‘세상에! 참 못난 사람도 있구나. 흙덩어리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하고 그냥 웃어넘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흙으로 지어진 존재는 이 세상에 오래 있지 못합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10"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시103:15-16"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利)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3-14아침에 안개가 가득할 때는 굉장합니다. 비행기도 뜨지 못합니다. 그러나 해가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개는 사라집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는, 이렇게 무리를 지어 살아갈 때는 굉장해 보이지만, 그러나 조금 후에 보면 우리는 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그 날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중요한 일부터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컨설턴트 윈스턴은 말하기를, 특별히 최고경영자(CEO)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시간 관리를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산더미처럼 쌓이는 서류에 파묻혀 죽는다고 했습니다.
윈스턴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낼 것은 보내고, 처리할 것은 즉시 처리하고, 보관할 것은 보관하고, 가치 없는 것은 금방 버려야 한다.”
시간을 잘 써야 합니다. 하루 24시간을 잘 나누어 살아야 하고, 2분 안에 할 수 있는 것과 5분 안에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여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선순위를 정할 때 다니엘 같이 예배를 최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먼저 예배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삶의 최우선순위로 정해놓고 살 때 하나님께서 손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일을 일생 최우선순위로 정해서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고, 할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떠날지 모릅니다. 사람이 세상에 올 때는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이렇게 순서대로 오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아닙니다. 아들이 먼저 갈 수도, 손자가 먼저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가 언제인지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일생의 계획을 세우되, 오늘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으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섭니다. 어느 판사 앞에 서거나 대통령 앞에 서거나 어떤 사람 앞에 서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섭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산해야 됩니다.
“나는 너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는데, 나는 너에게 성령을 주고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 너는 나를 위해 무엇 했느냐?”라고 물으실 그 때 “아버지, 제가 부족하지만 이것은 했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구의 한 장로님이 꿈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얘야,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
“예. 아들도 잘 키우고 딸도 잘 키우고 예배도 잘 드렸습니다.”
“그것은 평신도도 다 한다. 너는 장로인데 장로로서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
그리고 보니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특별하게 보고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십일조 드리고, 예배 드리고, 평신도도 다하는 그런 것밖에 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섭섭해 하시는지…….
꿈에서 깨어난 그는 헛된 삶을 살았던 자신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한참 울었답니다. 그분이 그 후에 교회를 21개나 지었다고 합니다.
만일 오늘 밤에 주님 앞에 우리가 서게 되어 주님께서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왔느냐?”하고 물으시면 그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7:16-18"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요15:16사과나무에 사과가, 포도나무에 포도가 맺히지 않는다면 어디에 쓰겠습니까? 사과나무를 재목으로 쓰겠습니까? 포도나무 덩굴로 집을 짓겠습니까? 가구를 만들겠습니까? 땔감으로밖에 쓸 수가 없습니다.
과일나무의 가치는 열매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치는 열매에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예배 열매, 전도 열매, 충성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1-12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할렐루야! 기업은 이익을 기업주에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익이, 우리의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내 아들딸을 기르지만 내 아들딸이기 전에 하나님의 기업이니 잘 길러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주의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도 주의 것입니다.’
이렇게 살 때 아버지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것으로 살고 남편은 아내의 것으로 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주님의 기업이니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어 드려야 합니다. 록펠러나 링컨, 에디슨, 바흐처럼 열매를 많이 맺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흐는 하도 많은 곡들을 작곡해서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의 작품을 계속 손으로 옮겨 적어도 다 옮기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 명작들이, 그 대곡들이 바흐에게서는 거침없이 술술 나왔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바흐에게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많이 작곡할 수 있게 하셨습니까? 그는 악보 제일 상단에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인기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작곡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사업을 하거나 직장생활을 하거나 ‘내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해 한다.’라는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은 오늘 주님 앞에 가도 떠떳이 그 품에 안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