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정치와 사회를 위하여
대통령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정치 지도자들이 권모술수를 행하지 않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그릇된 이념이나 선동이 아닌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소서
주변 강대국들과 경제, 안보 갈등이 조속히 해결되게 하시고 한반도의 평화적 정세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행28:28-3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행28:28사도 바울은 이렇게 유대사람들이 잘 안 믿는 모습을 보면서 '복음이 이방에게로 가고 있구나'하고 하나님의 높은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내가 이방인에게로 보냄을 받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한 문이 닫힌다는 것은 다른 문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졌으니 이방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면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확실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로 수용합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28절은 어떤 의미에서 사도행전 전체의 결론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메시아를 보내도 그들은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고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이 이스라엘 백성과 불신앙과 거절로 말미암아 이방인에게로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이 여러분과 저에게까지 왔습니다. 이제 그 복음은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민족에게로 간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온 산에 단풍이 물들 듯이, 주님의 성령의 계절, 복음의 계절이 오면 공산주의 국가, 모슬렘 국가, 불교 국가 등 20억의 인구들이 어느 날 순식간에 변해 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입니다.
사도행전 전체의 핵심 구절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이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에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자 사람들이 방언하고 예언하고 기적과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핍박이 오자 교회가 산지 사방으로 흩어졌고, 바울이 가는 곳마다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의 요점은 성령이 임하여 그들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적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의 중심적 메시지는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사도행전적 교회란 크든 작든 성령의 능력을 받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크다 할지라도 이 비젼과 메시지를 가지지 못한 교회는 사도행전적 교회가 아닙니다.
땅 끝까지 란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듣지 못한 나라와 복음을 듣지 못한 모든 사람에게까지 우리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책임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둘째는 주님의 다시 오시는 날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행28:30-31제게 있어서 사도행전을 공부할 때 제일 감동적인 부분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읽은 본문인 30절과 31절입니다.
여러분, 이 엄청난 복음이 바울에 의해서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서 이루어지는데 어디서 이루어집니까? 셋방입니다.
여기에는 마치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겼을 때의 감동 같은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선교하려면 선교 센터나 선교 단체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직, 센터, 총회, 교단 이런 것이 있어야 선교가 되고 전도가 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우리들의 생각에 결정타를 가합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 센터 하나 없었지만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에게 관심이 있었고, 우리는 하드웨어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건물의 노예가 되고, 조직의 노예가 되고, 제도의 노예가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큰 교회가 큰일을 하는 줄 압니까? 아닙니다. 복음 있는 교회가 큰일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교회가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셋방 사는 사람들은 감사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셋집에서도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도 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현대 교회가 겸허히 받아야 할 교훈입니다. 여기 찾아온 사람들에게 장로나 목사라는 타이틀이 있었을까요? 권사라는 타이틀이 있었을까요? 직분을 가지고 일하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에 대해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셋집이 크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훈련을 받고 조용히 떠났습니다. 그 사람들이 로마를 뒤집어 버린 것입니다.
그 거대한 로마, 세계의 수도라고 하는 로마가 하루아침에 기독교 국가로 뒤집힌 것입니다. “쿼바디스”를 보십시오. 십자가에서 화형을 당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인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로마의 최고 권력층 속에 그리스도인들이 숨어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사람들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사도행전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가시적인 것들이 큰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주일마다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진짜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구역예배를 드리는 집입니다. 바울의 셋집처럼 5명, 10명이 모여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배우고 능력을 얻어 누룩처럼 퍼져 나가야 합니다.
기독교는 팡파르를 울리면서 시끄럽게 전도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누룩처럼 소리 없이 스며들어서 세상을 뒤집어엎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을 open ending 이라고 말합니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겠습니까?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갔어도 복음 선교의 당당한 자유를 누리면서 세계 복음화의 위대한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던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막을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우리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역사는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계속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꿈은 하나님의 나라의 꿈입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나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나라로 닫혀집니다. 행1장을 보십시오. 행1장은 부활하신 주님의 사역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행1:8의 명령이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가를 역사적으로 보여 준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그 다음에 사마리아로, 그리고 드디어 당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 시대에 세계 복음화의 과업을 이루기 위하여 선교에 불타는 사람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 위대한 꿈 앞에 헌신된 사람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결단한 사람들을!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함으로 드디어 로마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시작합니다. 로마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드디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복음은 로마에서 그 다음에 어디로 갑니까? 게르만 민족에게로 옮겨 갔습니다. 이 게르만 민족은 본래 야만족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찬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은 게르만 민족에게서 다음은 어디로 갑니까? 앵글로 색슨족에게로 갔습니다. 이들은 게르만 민족보다 더 야만적인 해적들입니다.
이 해적들이 복음을 받자 나라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세계 선교의 부담을 안았습니다. 한때 잘못된 동기로 식민지를 찬탈했던 것이 나중에 복음 선교에 결정적인 방해물이 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국을 사용하셔서 전 세계에 예수님의 피 묻은 복음과 생명의 복음을 전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시 이 복음은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북미 대륙에서 세계를 항해 복음을 들고 나아갔습니까? 이 복음은 어디까지 왔습니까? 아시아의 작은 반도 한국까지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선교의 부담을 가지고 열심히 선교하는 나라마다 복을 받았고,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복음은 사명이자 축복입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이 민족이, 이 교회가 이렇게 놀라운 선교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고, 성도가 되도록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4년 5월 25일 오전 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