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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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이슬람 세력에 대하여

1.

무슬림 가운데 역사하셔서 닫혔던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2.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미디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이슬람의 전략들이 무너지게 하시고 이슬람을 버리고 회심한 주의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그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소서.

3.

영혼을 속이고 어둡게 하여 멸망시키는 이슬람의 악한 영들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묶임을 받고 떠나갈지어다!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행28:20-2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행28:20

이제 바울은 회당 지도자들의 관심을 복음으로 돌려놓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된 것은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메시아의 오심과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리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아를 학수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메시야이신 예수가 오셨을 때에는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메시야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관이 잘못된 이유는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고, 바로 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속적 욕망에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비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속적 욕망과 정치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메시야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게 됩니다.

누가복음 24장 21절에 보면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말입니다. 다른 사람 아닌 예수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그 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말았으니 저들은 너무도 실망이 커서 엠마오로 돌아갑니다.

이것도 메시야 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제자들이 왜 실망 했나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십자가 사건은 메시야 관을 가름하는 결정적 사건입니다. 십자가가 승리입니까, 패배입니까? 세속적인 메시야 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십자가는 완전히 실패입니다. 잔뜩 기대했는데 그 분이 죽어버렸어요. 이 나라를 독립시킬 줄 알았는데 실패했어요'하며 낙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승리하셨고 성공하셨고 다 이루셨어요.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2:15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24:44-47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사람들의 메시야관은 정치적이요, 세속적이요, 협소한 민족주의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가 아닙니다. 자기들이 생각한 메시아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아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의 문제, 가난과 저주, 질병의 문제를 다 해결하심으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메시야에 대한 이해가 달라서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에 대해 실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가 바로 메시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롬1:1-4

진정한 메시야관, 성서적 메시야관을 설명하는 것이 바울의 사명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인하여 내가 여기 왔습니다'라는 말씀의 뜻이 이제 분명해집니다. 예수를 메시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개념을 성서적으로 바르게 설명하다보니, 메시야관에 오해가 많고, 이해가 없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박해를 받게 된 것입니다, 함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과 교회를 박해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예수님께서 바로 이스라엘의 간절한 소망인 메시아이심을 깨닫게 되자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소망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세상 사람들은 땅의 허탄한 곳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헛되고 헛된 삶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저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 절망과 고통 속에 살아도 천국을 누리며 살고 주님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갑니다.

찬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라는 가사처럼 주님께서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행28:21

회당 지도자들은 유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바울에 대한 편지를 받거나 소문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신빙성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바울의 로마행을 알고 있었던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바울에 대해 비난하는 전갈을 보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바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약 신학자인 부루스는 그들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바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소위 외교적인 발언을 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들은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다 알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와 동방 사이에는 빈번한 왕래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에 대한 소문이 그들에게도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바울의 재판에 대해 모른 척 한 것은 바울이 무죄로 석방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바울과 대립각을 세워 소동이 벌어진다면 그들에게도 좋을 것이 없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행28:22

"이 파에 대하여" 대단히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그 당시 유대사람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샤프라고 하는 사람이 쓴 「바울」이라고 하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랍비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 연구를 많이 해서 꽤 큰 책을 썼습니다. 샤프는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우리와는 꼭 반대 방향이다. 메시야를 잘못 생각해서 분파가 하나 생긴 것이다. 그 대표자가 바울이다.'

우리는 그들이 잘못된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어서 예수를 안 믿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우리의 메시야를 잘못 생각한 사람들이 분파를 만들어서 기독교가 생겼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예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바른 메시야관을 가지게 될 때에 비로소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전하기 위하여 온 생애를 다 바친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대인의 반응은 재미있습니다. 그들은 편지 받은 것도 없고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 한 일도 없지만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또 한 가지 위로와 격려를 받습니다. 뭐든지 선입견을 갖지 말고 부딪쳐 보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전도가 안될 것이다. 저 사람은 나를 미워할 것이다. 저 사람은 나를 반대할 것이다 는 생각들 때문에 우리는 하고 싶은 일들을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실 이 사람들을 초대해 놓고 변명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부딪쳐 보니까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과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치 한국 사회와 이민 사회가 다르듯이 말입니다.

기회는 항상 있습니다. 여러분, 저 사람은 전도가 안 될 것이라고 포기하지 말고 두드려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켜 놓으셨을지 모릅니다. 과거로 현재를 규정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그렇게 두드렸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시는지 모릅니다. 안되면 또 부딪혀 보십시오.

다시한번 오늘의 본문을 생각해봅시다. 바울은 지금 로마감옥에 있습니다. 그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합동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만이 나타났습니다.

바울로서는 오직 충성, 오직 믿음, 그리고 인내적인 헌신이 있어야 했습니다. 잘 참아야 했습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불평해서도, 당장 무슨 일이 되지 않는다고 조급해해서도 안됩니다. 믿고 꾸준히 기다리면서, 기회를 주시는 대로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보세요. 넓은 관장에서 수백 수천 명을 모아놓고 전도하는 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매일 만나면서 전도했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답답하기 그지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시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회에,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방법을 그는 온유 겸손하게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그 결과는 사도 바울이 순교한 지 얼마되지 않아 온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2024년 5월 23일 오전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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