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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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과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1.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 열방의 선교사로 나아가게 하소서.

2.

다문화 가정을 축복하사 불신, 이혼, 폭력 등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성장하게 하소서.

3.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사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행28:17-1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행28:17

바울은 로마에 도착한 지 사흘 째 되는 날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여기서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란 회당의 지도자를 말합니다.

바울이 그들을 초청한 이유는 자신을 변론함으로써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온 자기를 두고 유대인들이 오해를 하고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바울의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자기를 핍박하던 유대인들이 로마에 사는 동족들에게 악성 루머를 퍼뜨렸을지 모르기 때문에 오해가 있다면 먼저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우리에 대한 상대방의 선입관이 좋지 못하면 말이 먹혀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또 한 가지 모습을 봅니다. 그는 복음에 대해서는 아주 철저했습니다. 타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최대한 겸손합니다.

머리를 깎으라면 깎고, 기르라고 하면 기릅니다.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대했습니다.

제사 음식을 먹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런 일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낮추는 문제에 있어서는 전혀 갈등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복음이 훼방 받지 않기 위하여, 한 영혼이라고 구원할 수 있다면 체면 같은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열심히 자기를 변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게 손해가 오고, 내 체면이 깎이면 분노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빌1:20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그는 자기의 신분이나 위치나 처지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디를 가든 먼저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많은 핍박은 대부분 유대사람들에게서 받았습니다. 집요하게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끈질기게 바울을 괴롭히는 것은 바로 유대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유대인들로 인해 많은 핍박을 당하고 고통을 겪었습니다. 유대사람들은 바울을 괴롭히고 전도 사업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바울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암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를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바울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유대사람들은 30여 년 동안 끈질기게 사도 바울을 괴롭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유대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렇듯 괴로움을 당하고도 아직도 유대사람들을 불러서 전도하고자 하니 말입니다. 바울의 민족애, 동족애가 여기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린 손양원 목사님, 여수 애양원에서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 한센병 환자들을 사랑으로 돌보다가 6.25때 공산군에 의해서 순교하신 목사님. 그런데요, 그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기 원치 않는 한센병 환자들에 다가가서 안아주고, 심지어는 그 다리에 고름이 고인 것을 입으로 빨아내서 토해 냅니다. 그것을 지켜봤던 한 한센병 환자였던 할머니가 고백합니다. “몸에서 진물이 떨어져 땅바닥에 있어도 우리 목사님은 꼭 들어오셔서 그런 환자들을 안고 기도하면서 차라리, 나도 너희같이 이런 병에 들어서 마음 놓고 이런 데서 함께 살면 좋겠다.” 그러셨는데, 어떤 남자 환자 한 명이 다리에 상처가 나서 아무리 치료를 해도 안 나으니까 당신이 그 상처에다 입을 대서 고름을 빨아냈소.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1948년에 여수순천 반란사건이 일어났었는데 공산폭도들이 이 손양원 목사를 죽이려고 찾아 왔다가 목사님을 못 잡고 큰 아들, 둘째 아들을 죽인 것입니다. 동인이 동신이가 폭도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폭동이 진압되고 아들을 죽인 사람이 잡혀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손양원 목사님이 딸 동희를 부릅니다.

동희야, 동희야 중학생인데 너 재판장에 가서 전해라. 사형시키지 말고 그 사람을 풀어주고 우리 집에 양자로 맞을테니까 우리 집에 보내라고 해라. 그러니까 중학생인 딸이 “아니, 아버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자기 사랑하는 오빠들을 죽인 사람을 데리고 와서 자기보고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니, 중학생 딸은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저라도 이해 못합니다.

그런데 그때 손양원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 아버지에게 어찌 미움이나 슬픔이 없겠느냐? 그러나 그것을 일단 마음으로 용서하기로 했다. 그런데 말이다, 동희야! 그것만 가지고는 사랑이라 할 수 없다. 그가 죽는다고 오빠들이 살아 돌아오겠느냐? 두 오빠는 천국에 갔으나 두 오빠를 죽인 자는 지옥에 갈 것이 분명한데 전도하는 삶을 사는 우리가 지옥으로 가는 그를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 저 불쌍한 영혼을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니? 그토록 불쌍한 영혼을.”

여러분, 사랑이 무엇입니까? 정말로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예수 믿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십니까?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부모를 예수 믿게 하고 그래서 하늘나라 가게 해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구원받게 해드리는 것, 그 이상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서 잘 먹게 하고, 많이 위해드리고, 평안히 계시게 하고, 효도관광 시켜드리고……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구원받지 못하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 받는 것이 아닙니까?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녀를 예수 믿게 하고,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남편을 예수 믿게 하고,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아내를 예수 믿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을 사랑합니다. 로마서 9장을 보면 그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1, 2절)"

이렇듯 바울은 간절합니다. 그래서 유대사람들의 박해로 인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까지 쫓겨오고도 또다시 유대사람들을 불러서 전도합니다.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행28:18-19

여기서 로마인은 천부장 루시아와 총독 벨릭스 그리고 베스도 왕을 말합니다. 바울은 루시아와 벨릭스와 베스도가 자신을 심문한 후 죄가 없다고 판단하여 석방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은 유대인들이 반대로 석방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이지, 결코 동족인 유대인들을 미워하여 로마 당국에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유대사람들의 문제는 유대사람들끼리 해결하지 왜 로마사람들에게 상소 하겠는냐, 그것은 유대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 또 이렇게 상소해 가지고 로마에 와서 어떻게 한다는 것이냐, '유대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입니다. 이유도 없이 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라고 송사할 것이냐---이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정죄하려는 것도, 누구를 송사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내 민족을 송사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사람들은 나를 놓아주려고 하는데 유대사람들이 죽이겠다고 하니 마지못해서 로마에 상소한 것이요. 유대사람을 고소한다던가 유대사람의 잘못된 점을 설명하고 상소하고자 함이 아닙니다'하는 자기변명입니다.

2024년 5월 22일 오전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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