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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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북한을 위하여

1.

북한의 주민들이 주체사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김정은 3대 우상 체제가 무너지게 하시며 북한 전역에 있는 김일성 우상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2.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세워져 있었던 3천여 교회들이 다시 회복되게 하시고 김일성 동상이 세워진 그 자리에 장대현교회가 다시 일어서게 하여 주소서.

3.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과 정치범 수용소에서 고통 받고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시고 그들이 속히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그날이 임하게 하시며 평화적 통일이 앞당겨지게 하소서.

4.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탈북민들이 무사히 정착하여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쓰임 받게 하소서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행28: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행28:16

사도행전의 마지막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입성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사도 바울의 로마 입성은 사도행전이라는 이 책의 성격을 결정적으로 규정해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초라한 죄인의 모습으로 입성했지만, 유럽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많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에 가고, 결혼해서 그저 웬만큼 잘사는 것으로 한 인생을 마치지만, 어떤 사람의 생애는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한 시대의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생애가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평범하게 보이지만 그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실 때 그 사람의 하는 일과 그 생애를 통해서 역사가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의 로마 입성은 유럽 전체를 뒤흔들어 놓는 정신적, 영적 대변화를 일으키는 입성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가(16절)"하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276명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로마에 도착했다고 해서 '우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는 바로 이 사도행전의 기자인 누가 자신을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누가야말로 참으로 충직한 바울의 assistant, 그를 돕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는 의사로서 바울을 따릅니다. 그는 죄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죄수가 가는 길을 곁에서 따라갑니다. 로마까지 따라갑니다. 감옥에는 못 들어갑니다만 감옥 가까이 있으면서 계속 바울을 돌봅니다. 참 대단한 분이지요.

여러분은 혹 이런 것을 생각해보았습니까? '반드시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그리 잘하는 생각은 아닙니다. '내가 할 수도 있지만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겠다, 어떤 사람은 의술로, 어떤 사람은 경제적으로, 내가 도울 수 있는 무엇으로든 돕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그런 지혜와 능력, 그런 각오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누가 자신이 얼마나 복음을 전했는지는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누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누가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신 이 분을 어떤 면으로든 돕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이것이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바 전부이다.'

생각해보세요. 누가는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 그를 면회하면서 돕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후송될 때에는 고생을 감수하면서 따라갑니다. 로마에 가서도 계속해서 그를 돕습니다. 이렇게 뒤에서, behind man으로 평생토록 주의 일을 합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가만히 보면 저마다 목사 되겠다고, 전부 자기가 하겠다고 합니다. 남이 일하는 그 뒤에서 협력할 줄 몰라요. 뿐만 아니라 '내가 저 분을 돕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 하는 것이다'하는 확신이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누가는 확실한 봉사를 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고 합니다.

이 말은 바울이 다른 죄수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그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비록 제한된 자유지만 상당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성경을 볼 수도 있고, 기도도 할 수 있고, 찬송도 할 수 있고, 또 다음 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사람들을 초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지는 못해도 사람을 불러서 만날 수가 있었어요.

이만큼의 자유를 얻은 바울입니다. 그는 아직 재판 전이라서 확실하게 석방될 수도 없고, 또 무슨 형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미결수로서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후한 대접을, 더욱이 로마사람으로 볼 때에 이방인인 유대사람 바울이 받는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제껏 바울과 동행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 풍랑 속에서 되어진 일들을 다 얘기하고, 또 백부장은 아주 자세한 보고와 함께 특별히 바울에 대하여 될 수 있는 대로 관대하게 해줄 것을 요청했을 것입니다.

이 분은 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뭔가 일이 잘못되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건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우리는 확실히 증거할 수 있습니다, 하는 보고를 분명히 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는 비록 죄수이지만 영적 권세가 당당합니다. 로마의 정치가들도 마음속 깊이 바울을 존경하게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를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만큼의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이제는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전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참된 축복과 기쁨이란 감옥에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부자가 되었느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건강하나 병들었느냐가 아닙니다.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기쁨과 보람과 축복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있습니다. 만약 내가 그리스도를 전하고 찬양하고 경배하고 그 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의 분문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한 군사와 함께" 여기가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지금도 로마에 가보면 사도 바울의 팔을 묶였던 쇠사슬이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정말 바울을 묶었던 바로 그것인지 그 사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좌우간 혼자서는 꼼짝 못하도록 각기 두 사람의 한쪽 팔들을 각각 바울의 양팔에 딱 묶어놓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함께 있는 것입니다. 먹어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화장실에도 같이 가고……

사도 바울과 같이 묶여 있는 군사는 하루에 한 사람씩 교대합니다. 싫던 좋던 하루 종일 두 사람이 같이 있게 됩니다. 바울에게는 이때야말로 절호의 기회입니다. 개인전도 넘버원입니다. 하루24시간을 함께 있으니까 이게 보통 관계입니까? 바울은 이제같이 묶인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이런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군사들은 친위대입니다. 당시 친위대라고 하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지금도 청와대나 어디나, 많은 사람들이 경비를 섭니다. 우리는 문민정부이고 민주국가니까 그렇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독재자들이나 왕 같은 사람들은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언제 누가 자기를 죽일는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자기 주변에 친위대를 둡니다.

우리 북녘 땅의 김일성만 해도 주위에 그를 지키는 사람이 3만 명이었답니다. 남북 회담하면서 정상회담도 하겠다 했지만 '김일성 수령'은 서울에 못 온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가 여기에 오려면 5만 명이 동원돼야 한답니다. 그러니 움직일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아무리 따져봐도 우리 쪽이 갔으면 갔지 저는 못 올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무튼 옛날 왕들은 신변 안전이 제일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을 높이 쌓은 거예요. 중국의 서안 같은 곳을 가보면, 청나라 때에 세워놓은 엄청난 성이 있습니다. 가보면 굉장히 놀랍습니다. 그런데 이 성 안에는 왕과 친위대와 왕의 친척들만 살았습니다. 백성이 사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서우니까, 언제 누가 쳐들어올지 모르니까 성을 높이 쌓아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친위대가 그곳을 지킵니다.

이런 친위대가 로마에는 약 만 명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친위대는 특별합니다. 그들은 왕에게 가장 충성하는 사람이요, 정예부대요, 요샛말로 하면 훈련이 잘된 군사들입니다. 몸도, 기술도, 머리도, 충성도, 마음도, 가슴도 철저하게 훈련된 사람들입니다.

사실은 이 사람들이 실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12년 동안 친위대원으로 성실히 봉사하고 나면 노예의 신분이었던 사람이라도 자유인인 로마시인이 됩니다. 그 다음은 귀족이 됩니다. 로마를 다스리는 정치가도 주로 친위대를 제대한 사람 중에서 나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선교 전략적으로 생각하면 만 명의 이 친위대만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면 로마는 뒤집히는 것입니다. 로마는 복음화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저들이 실권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로마감옥에 집어넣으신 것입니다.

바울은 매일 한 사람씩 만나게 됩니다. 매일 한 사람씩 전도합니다. 1년이면 365명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이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 하 사람 전도하게 되어서 마침내 친위대 안에 복음이 전파됐습니다. 그 전파되는 모습을 보면서 사도 바울은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 1:12)"라고 말씀하게 됩니다.

참으로 희한합니다. 일부러 만나려고 해도 몇 달을 두고도 못 만나는 친위대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전도할 기회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일 한 사람씩 하루 종일 붙들려 있으니까 자연히 전도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매일매일 교대하니까 한 사람 전도하고 다음날은 다시 다른 사람을 전도하게 되니, 이 얼마나 희한한 일입니까? 그런고로 충성된 전도자에게는 어디서나, 어느 때나 어떤 환경에서든 전도의 문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기회는 따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직장에 나가면 그곳이 선교지가 되는 것이고, 건강하면 건강한대로, 병들면 병원에서, 사업을 하면 사업하면서, 무역을 하면 무역하면서, 여행을 하면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충성된 전도자에게는 언제나 전도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어디서나 전도할 수가 있어요.

더구나 일이 잘되고 형통할 때보다는 인간적으로는 좀 불행해졌을 때에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그런 순간이 오히려 전도하기에 유익한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병든 사람에게 전도하기란 어렵습니다. 오히려 병든 사람이 건강한 사람에게 전도하면 아주 효과적입니다. 성공한 사람이 실패한 사람에게 그저 참고 견디라고 해봐야 그 말을 들어줄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실패하여 아주 비참해져 있는 사람이 친구를 위로하려고 찾아갔을 때, 그 형편없이 어려워진 사람이 입을 열어 전도하게 되면 그야말로 전도는 효과적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한 죄수가 여기에 있고 바울이 권세 있는 자유인으로서 감옥을 방문했다고 입장을 바꾸어봅시다. 전도가 되겠습니까? 어쩌면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금 죄수입니다. 죄수가 간수를 향해서, 자유를 잃은 자가 자유한 자를 위해서 복음을 전할 때에 이 전도는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은 불행하다느니 행복하다느니…… 그런 것은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잘되고, 못되고, 어디를 가고 말고…… 그것이 문제가 안됩니다.

정말로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고 하는 확고한 뜻만 있다면 전도의 길은 어디에나 열려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선교적 차원에서 보면 바울은 아주 효과적인 환경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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