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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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환우들을 위하여

1.

영적인 질병과 육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에게 평안과 회복의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더하사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승리하게 하소서.

2.

질병의 고통 중에서도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시고 성령님과 더욱 친밀한 삶을 통해 위로받고 새 힘을 얻게 하소서.

3.

절망과 자살 충동, 우울증과 조울증, 악한 영의 공격, 공황장애와 온갖 정신적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행28:2-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행28:2

그들은 이 어려운 가운데서 살아남기는 했지만 지금 옷은 다 젖었지요, 비가 와서 견딜 수 없이 춥지요, 또 먹을 것도 없어요. 사실 그들에게는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후하게 도와주지 않는 한 저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아요? '물에 빠진 사람 건져내니까 보따리 달라고 한다.' 빠졌을 때에야 생명이 중요하지만 일단 빠져 나오면 보따리가 있어야 산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에게는 양식이 필요합니다. 때는 겨울이라 그 동안 지낼 집도 필요합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보니까 이 섬에 사는 원주님들이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영접하더라고 합니다.

왜 특별한 동정을 하여 영접했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잠21:1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하십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행27:24

바다에서만 구원하고 육지에서 굶어죽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또 하나, 여기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아니지만 원주민들이 믿는 신에 대한 종교적 세계관이 나타납니다. 신을 두려워하는 그들로서는 신이 살려준 사람, 신의 가호를 입은 사람을 존경하고 그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꼭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인데 신이 도와서 살아남았다, 이런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다, 그런고로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는, 그런 의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기들 나름대로 생각이 있기에 바울 일행을 후하게 대접하고자 합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알고 사도 바울이 탄 배를 멜리데로 보낸 것입니다.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행28:3-4

사도 바울은 원주민들의 호의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지 않고 장작으로 쓸 만한 나무 한 묶음을 모아다가 불에 넣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2주간 풍랑에 시달렸으며 배가 난파를 당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구사일생으로 섬에 도착하여 완전히 지쳐 있었습니다. 바울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장작을 모아 사람들이 불을 쬐고 몸을 녹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내 몸과 마음이 편할 때에는 주위 사람들을 돌보아 줄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나 내 몸이 불편하고 마음이 고통스러우면 주위 사람들을 섬길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픔과 고통이 제일 크게 생각되어 당장 제 앞가림을 하기에만 바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내가 좋고 편할 때 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주위를 돌아보고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죽기까지 우리를 섬겨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이러한 섬김을 본받아 어떠한 환경과 상황 가운데서도 이웃을 섬기고 돌본다면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세상에 흘러갈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주위 사람들을 섬길 수 있으려면 섬김이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교회 안에서도 섬기는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이 먼저 섬길 생각을 하지 않고 입으로만 일을 하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는 항상 주위를 돌아보아 내가 섬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먼저 줍고, 화장실에 휴지가 없으면 내가 먼저 가져다 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처럼 섬기고 살면 먼저 우리 자신에게 기쁨과 보람이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불 속에 장작을 던져 넣어 화력이 세지자 그 속에 들어 있던 독사가 튀어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이른 본 원주민들은 “이 사람은 분명히 살인자임에 틀림없다.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에서는 살아남았지만 결국 공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되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뱀을 공의의 신의 상징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이런 속설이 있다고 합니다. 옛날 아프리카의 북부 리비아 해안에 아주 완악하고 포악한 해적들이 있었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큰바람을 만나서 배가 파손되어 그들이 멜리데 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간신히 헤엄쳐서 '이제 살았다'하고 쉬고 있는데 이상한 뱀이 나타나 가지고 이들을 다 물어 죽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다에서는 배가 파손되어도 용케 살아남았지만 공의의 신이 뱀으로 나타나서 이들을 물었다는 것이지요. 결국 해적은 죽어야 하니까 죽었다, 라고 토인들은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속설이 전해지고 있었기에 바울한테 뱀이 매달리는 것을 보고 '아이쿠, 이 사람은 살인자구나. 천하에 악한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이 어려운 가운데서 모처럼 살아남았는데도 결국은 죽게 되는구나'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의 본문에 보니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있어요.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행28:5-6

바울이 뱀을 털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일단은 뱀이 물었으니까 독이 들어가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6절)"

원주민들은 바울이 퉁퉁 붓거나 독이 올라 눈이 빨개져 가지고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잔뜩 기다렸는데 웬걸, 바울은 안 죽는 것입니다. 안 죽으니까 원주민들의 생각이 달라졌어요.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6절)"

사람이 독사에 물리면 심한 경우 30초 내에 온 몸에 독이 퍼저 즉사합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오래 기다려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16:17-18

이 말씀처럼 바울은 독사에 물렸지만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택하신 사도 바울을 풍랑에서 건지신 주님은 또 다시 독사에게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님과 그의 복음에 최우선을 두고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똑같은 은혜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어디서나 여러분의 생명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흔들리지 않을만큼 주님을 위해 살고 계십니까?

원주님들은 바울이 독사에게 물렸으므로 온몸이 붓거나 갑자기 쓰러져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바울이 멀쩡한 것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바울을 살인자로 생각하지 않고 신으로 여겼습니다. 살인자가 신으로 바뀌는 시간입니다.

사실 우리 한국교회도 이렇게 해서 오늘에까지 발전해온 것입니다. 옛날 우리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런 얘기가 너무 많습니다.

오래 전의 얘기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어느 시골에다가 지교회를 하나 세우려고 했는데 땅을 마련할 수가 없었어요. 땅만 마련되면 예배당을 짓겠다고들 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 시골동네에 큰 구렁이가 있는 밭이 하나 있었어요. 동네 어른들이 먹을 것을 갖다 바치고 제사를 드리는 등 지성껏 구렁이를 섬깁니다. 신앙이 있거나 또 신앙이 없는 청년들도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우리 동네에 저런 구렁이가 있다니, 저 놈을 반드시 쳐죽여야겠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그러나 그들 또한 용기가 없었어요. 만일에 구렁이를 쳐죽였다가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벼락 맞으면 어떡하나, 병 걸리면 어떡하나, 또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어서 꼭 없애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못 없애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사람들과 의논해본즉 구렁이만 없애주면 그 밭을 거저 주겠다고 합디다. 그래서 목사님이 청년들을 데리고 가서 구렁이를 잡아먹었습니다. 이제 동네사람들이 크게 걱정합니다. 다 죽게 됐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청년들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안 죽어야 한다. 만일 감기에라도 걸리면 일은 다 틀어지는 줄 알아라.' 당연히 모두가 무사했지요. 그 밭에 예배당도 지었습니다. 아주 드라마틱한 얘기가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여러분에게 왜 이 말씀을 드리는고 하니,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참 많았습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도 김양호 선교사님이 가져오신 우상들을 다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감기 걸리면 큰 일 나는 것입니다.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거뜬하게 지나가야 됩니다. 아마 그 사람들은 저를 쳐다보고 생각할 거예요. '저렇게 했는데 아무래도 무사하기 어렵겠지?' 그러니 제가 무사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들이 비로소 안심하고 예수를 믿어요.

바울의 이야기가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귀신을 섬기는 도구들을 다 불에 태우고도 거뜬하고 무사해야 비로소 사람들이 '무사할 수가 없는데 저렇게 무사하다니, 과연 예수가 세구나' 하지요. 그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힘의 대결이라고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대결하게 되어 있어요. 신앙은 더 센 쪽으로 붙게 마련입니다. 어느 쪽이 더 힘이 세냐 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강하고 담대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우위에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상위에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귀신을 배신하면 무사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귀신 다 불태워버리고도 우리가 거뜬해야 합니다.

그리고 뱀에 물리는 사건도 알고 보면 하나의 은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사도 바울을 신으로 여기고 그 입에서 나오는 복음을 듣게 하고 잘 대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다 선교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있었던 사건들입니다. 참으로 그 역사가 오묘하지 않습니까? 이렇듯 오묘하게 복음의 문이 열어지는 것을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서 역력히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원주님들의 마음 문이 열렸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눈으로 직접 봄으로써 그들은 이제 곧 바울이 전하게 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입니다.

2024년 5월 16일 오전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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