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시니어 세대를 위하여
시니어 세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닮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르기까지 영적인 성장을 멈추지 않게 하소서.
현재의 삶이 지나온 삶보다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시고 주님 주신 사명이 말씀 앞에서 날마다 갱신되며 그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영육 간에 강건케 하소서.
시니어 세대가 가진 깊은 영성과 지혜와 믿음이 다음 세대에게 흘러가게 하시고 교회 안에 살아 있는 모범과 소망이 되게 하소서.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행27:3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행27:38바울이 탄 배는 276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과 많은 짐까지 실었는데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서 무려 보름이나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에 그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그야말로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대로 흘러갔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능력의 한계, 인간이 자기의 노력과 의지, 수고, 기술, 경험, 지식 등을 다 포기했을 대, 완전히 손을 들었을 때, 백기를 들고 완전히 항복했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인간 절망의 시점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보면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행27:21절을"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 말을 듣고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라고 지난 일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들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았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비록 쇠고랑을 찬 죄인의 모습으로 여기에 있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볼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레데를 떠날 당시에는 세력 있는 사람, 다시 말해서 백부장, 선장, 선주, 선원들, 그리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고 바울의 말씀은 묵살합니다.
결국 바울의 말은 듣지 아니하고 미항을 떠났다가 이 어려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이제 이렇게까지 위태로워진 바로 이 시점에서 바울은 '내 말을 듣고 떠나지 아니했다면 좋을 뻔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이렇게 큰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내 말을 안 들었기 때문입니다. 내 말을 안들은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안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을 안 듣고 거역한 결과로 이렇게 큰 타격을 받게 된 것입니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내용은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원점으로 돌아가서 지금이라도 내 말을 들으시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풍랑이 있기 전에는, 어쩌면 풍랑을 맞은 지 하루이틀째였더라도 바울의 이 말이 통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죽을 지경이 되니까 비로소 바울의 말이 귀에 들어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이제라도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여기에 다들 유구무언입니다. 누구 하나 거역할 사람이 없습니다. 말대꾸조차 할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들 숙연해졌습니다.
모두가 바울의 말씀을 듣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대로 될지 안될지, 바울의 말씀을 믿든지 안 믿든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상관없습니다.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밖에 없는 심경이지요. '내 말을 들었으면 좋을 뻔했는데 큰 타격을 보았소. 이제라도 내 말을 들으시오 그래야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많은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멀리멀리 갔었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었다면 많은 타격을 본 후에라도 지금이라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처음 시점에서 자세를 바로 하고 믿음을 수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 말을 들으시오'라고 바울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믿음을 줍니다. 아주 깊은 뜻이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행23:11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이사 앞에서야 할 것이다. 어쨌든 로마에 갈 것이다. 언제 가느냐고는 묻지 말아라'
이 말씀을 들은지 거의 3년이나 지나서 바울은 로마로 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든 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오늘들은 말씀이 내일 아침에라도 당장 이루어진다면 좋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시간은 그렇지가 않아요. 시간과 방법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좀 달라요.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매를 맞고 고생할 때에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다.' 바울은 '아멘'하고 기다립니다. 그렇게 3년이 흐릅니다. 일은 자꾸 비뚤어지기만 하고, 로마로 갈 길은 멀어지기만 합니다. 이대로 죽는가보다 했습니다. 더욱이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을 허송세월 했습니다.
그러나 보세요. 바울에게는 이런 과정이 꼭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시간과 방법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어느 시간에든지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초조해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어떤 길로 어느 때에 이루어지는지 궁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마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실수한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젖과 꿀이 흐르는 저 가나안 일곱 족속의 땅을 준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런 줄 알아야지요. '무슨 방법으로든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광야로 가든, 홍해로 가든,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약속은 받아놓은 것이니까요.' 이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초조해했어요. 오늘이냐 내일이냐, 아침이냐 저녁이냐…… 뜻대로 안 된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범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약속해주셨어요. '좌우간 너는 가이사 앞에 설 것이다'--바울은 '아멘'으로 기다립니다. 이 약속이 그 다음날에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바울이 생각했던 시간, 바울이 생각했던 방법으로 이루어 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묘한 방법으로 역사 하십니다.
그리고 바울 하나를 보내기 위해서 나머지 275명이 다 무사했습니다. 바울 하나를 위해서 이 배가 무사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배에 탄 사람 전원이 다 무사해야 했습니다. 모두가 증인이 되어야 하니까요.
몇 사람이라도 죽으면 안됩니다. 문제가 생깁니다. 전원이 무사해 가지고 이제 바울을 통해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풍랑을 겪습니다. 재산의 손실도 봅니다. 배도 파손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능력, 인간의 의도를 다 포기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모두가 꼼짝 못하고 바울에게 순종합니다. 평상시 같았으면 어림도 없습니다. 바울이 이 많은 사람 앞에서 '형제들이여'하고 나서보아야 누가 듣기나 했겠어요?
그러나 지금은 쇠고랑을 찬 죄수 바울이 서서 외칠 때에 모두가 숙연했어요. 그의 말을 전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이것이야말로 놀라운 하나의 작품인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지금 바울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바울이 명령을 합니다.
첫째 명령은 '먹어라'---먹어야 산다, 기운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열나흘 동안이나 굶었습니다. 이제는 무엇 하나 제대로 먹을 수 없고, 죽은 목숨이라 생각하니 입맛도 없어요, 그러나 바울은 말씀합니다. '먹어라' 앞에 닥쳐올 일이 있으니 먹어야 기운을 차릴 수 있고, 기운을 차려야 이 마지막 고비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말씀에서 보겠습니다마는, 이 배가 깨지거든요. 그러니 헤엄을 쳐야 합니다. 헤엄 못치는 사람은 널판지라도 붙잡고 개헤엄이라도 쳐야 육지까지 갈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기운을 차려야 합니다. '먹어라' 첫째 명령에 저들은 먹어야 했습니다.
둘째는 오늘의 본문에 보니 밀을 바다에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행27:38배를 가볍게 하려 함이지요. 이미 저들은 자기들의 짐을 다 벼렸습니다. 그러나 남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마저 지금 다 버립니다. 여기에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소유욕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고집을 버리고……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밀, 곧 식량마저 '이것까지도 다 버리라. 깨끗이 버려야 한다' 함입니다.
본문 말씀 18절로 돌아가서 읽어보세요. "짐을 바다에 풀어버리고"
처음에 풍랑이 일어났을 때에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먼저 짐을 버렸습니다. 그 아까운 것, 로마에 가서 장사할 밑천이었지만 다 버렸어요. 그러나 밀은 남겼어요. 왜요? 먹어야 하니까요. 이 풍랑 속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지만 좌우간 먹어야 하니까 식량만은 남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까지도 버리라고 사도 바울은 명령합니다. 생각해봅시다. '이제 식량마저 버리면 내일은 무엇을 먹습니까? 이제 한겨울 동안 무엇을 먹고살라는 말입니까? 로마에 가려면 겨울을 나야 할 텐데 이것을 버리면 대체 무엇을 먹을 것이오?'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명령 앞에서 그들은 아무 질문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밀을 버리라 할 때에 스스로 그 남은 식량을 다 버리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은 생명 위주의 세계관을 수습하라는 얘기입니다. 지금은 살아남는다는 것이 중요해요. 내일은 무엇을 먹느냐, 그것도 걱정할 문제가 아니예요. 바로 지금 사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선장, 선주, 그리고 이 모든 물건의 주인들에게 있어서 '버리라'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그래도 바울의 명령 앞에 꼼짝을 못합니다. 살기 위해서는 버리라, 버려야 산다함입니다. 그들은 다 버렸습니다. 순종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