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지역 사회의 연약한 영혼들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 말씀 충만, 기도 충만하게 하시고 모든 예배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회복과 부흥이 있게 하소서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행27: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행27:1가이사에게 상소한 바울은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의 감독 아래 다른 죄수 몇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로마를 향해 떠나게 되었습니다.
2년이 넘도록 기다리던 바울은 드디어 로마로 향하는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그가 겪은 고난을 돌이켜 보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고생했으면 이제는 보상이 주어져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서 또 다시 정처 없이 떠나야 하는 그의 심정을 우리는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는 죄인의 모습으로 백부장의 호위를 받으며 쇠사슬을 맨 채 떠나야 합니다.
여러분, 그 나이에 얼마나 쉬고 싶었겠습니까? 젊었을 때는 많은 고생을 했어도 나이가 들면 좀 쉬고 싶고 편안해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 혼자만 호송된 것이 아니라 다른 죄수 몇 사람이 함께 호송되어 갑니다. 이때 바울이 탄 배는 죄수들을 호송하는 특수선이 아니었고, 아시아 해변의 각 곳에 사람들과 짐을 실어 나르는 운항선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죄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사하는 사람들이나 왕래하는 사람들도 함께 한 배를 탔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사도 바울은 쇠사슬에 매여 있는 죄수의 몸이기 때문에 그의 모습은 부끄러운 모습이요, 피곤한 여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사도 바울의 제4차 선교여행의 시작입니다. 참 오묘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선교여행을 할 때마다 안디옥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보내고 그는 환송을 받으며 떠나고…… 이렇게 자유로운 몸으로 선교여행을 시작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4차 선교여행은 다릅니다. 죄수의 몸으로, 이것이 선교여행인지 아닌지, 선교의 길이 열리는 것인지 막히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저 주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로마로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복음이 로마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한 선교사, 위대한 한 사도에 의해서 복음이 전해지는 게 아니고 한 사람의 죄수에 의해서 복음이 로마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대단히 놀라운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이 전파 되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 하겠습니다. 한국교회사를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이 타고 온 배가 있는데, 그게 사실은 아편을 싣고 나오는 배였습니다. 바로 그 배를 타고 선교사가 옵니다.
아주 고약한 배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선교사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한국에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그릇은 배이든 비행기든, 혹은 어떤 환경이든, 그가 어떤 인격이든 관계되지 않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대로 우리 한국에 맨 처음 복음을 전파 받은 사람들은 장사꾼들이었습니다. 장사하러 중국에 갔다가 거기서 복음을 듣고 돌아온 것입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길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꼭 선교사라고 하는 거창한 이름으로만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지금 한 죄인이 로마로 압송됩니다. 이것이 엄청난 역사를 이룹니다. 대 로마제국이 기독교국가가 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사건이 여기서 지금 비롯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3장 11절을 다시 보세요.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체포된 그에게 이렇게 위로하시고 계십니다. 위로이면서 약속이었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환상 중에 들은 주님의 음성, 이것이 바울에게는 가장 큰 희망이요 위로였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가운데서 그가 본래 기도하고 바랐던 로마행을 성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중에서도 아주 작은 위로가 되는 사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본문에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여기에 '우리'라고 하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 누구를 말씀하는 것입니까?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자세히 보면 사도 바울이 혼자서 선교여행을 다닌 일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동행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둘씩 둘씩 보내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막6:7그리하여 서로 협력하며, 또 협력을 얻고 협조를 받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람의 협조를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과 함께 하시고 그를 보내시지만 동시에 사람을 동행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 협력자, 필요한 사람을 늘 함께하게 하셨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혼자 가도 될 텐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무튼 그와 협력하는 동역자가 꼭 동반합니다. 그래서 제1차 선교여행 때에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바나바와 함께 갑니다. 제2차 선교여행 때에는 실라가 동행합니다. 제3차 선교여행 때에는 자세히 보면 누구라고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마는 누가가 동행합니다.
누가는 참 귀한 일꾼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함에는 디모데가 참 좋은 동역자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누가가 참 귀한 일꾼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우리'라 함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누가는 이를 기록하면서 자기 이름을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죄수가 가는데 죄수 아닌 사람이 죄수인 바울을 위해서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굉장한 일입니까?
누가는 참 훌륭한 분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즉 바울의 유서라고 하는 그 마지막 편지에도 보면 누구는 어디로 갔고, 누구는 어디로 보냈고, 어떻게 어떻게 했다, 지금 내게는 누가만 함께 있다라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그와 끝까지 함께 있는 사람이 누가입니다.
누가는 의사입니다. 그는 복음 사역을 위해서도 필요했지만 바울의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시라면 뭐 전갈을 먹더라도 건강하도록 해주실 것이지, 왜 비실비실 하는 시원치 않은 사람으로 만드시고, 의사 누가를 동반하게 해주셨는지- 여기에 참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누가는 겸손하여 '바울과 누가가' 이렇게 말씀하지 않고 '우리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죄인이 가고 있습니다. 죄인 아닌 사람이 죄인 곁에 동행합니다.
한 사람은 피동적으로 가는 사람이요, 한 사람은 능동적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불가피하게 끌려서 지금 압송되어 가는 사람이요, 한 사람은 자의적으로 복음을 위하여 바울 곁에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깊이 상고해보면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 했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니었어요. 사도행전 21장에서 바울은 체포됩니다.
그러니까 21, 22, 23, 24, 25, 26의 여섯 장에 걸쳐, 즉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 있는 동안에, 체포되어 가지고 고생하는 동안에 바울은 줄곧 홀로 지냈습니다. 여기서는 누가가 동행할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늘 동행하는 자가 있었지만 감옥에 있을 때에는 혼자였습니다. 그 많은 핍박을 혼자 당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이 죽이려고 하는 것은 바울이지 누가가 아닙니다. 다른 누구도 아닙니다. 나사렛당의 괴수 바울한 사람만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집요하게 갖은 모략과 계책을 다 세웠습니다. 오직 바울만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때는 홀로 감옥에 있습니다. 홀로
그러나 바울은 홀로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주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이렇게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위로하셨습니다. 보세요. 때로는 협동, 협력하는 자가 있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시간에는 혼자 가야 합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 특별히 그와 함께 하고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2024년 5월 2일 오전 6: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