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세계를 위하여
전 세계 80억 명의 영혼들, 특별히 6,500여 미전도 종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전리 전파되게 하시고 방황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교회가 열방 곳곳에 세워지게 하소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해외 교회들이 회복되며 현지인 사역자들이 세워지게 하시고 하늘 길이 막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속히 선교 현장으로 돌아가 교회와 사역지를 지키게 하소서
자연 재해와 내전, 박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서 자비와 평안을 베풀어 주시고 각 나라가 연합하여 상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행26:24-2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행26:24로마 총독 베스도가 볼 때에 사도 바울은 미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죄수의 신분인 그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었는데, 자신을 위하여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 기회만 주어지면 나 자신에게 이롭도록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금이 바로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중대한시간이지만 자기 구제를 위한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시 주어지는 이 소중한 기회를 복음 전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 점이 위대합니다. 나야 살든 말든, 잘되든 못되든 상관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전하려 하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보려 하는 간절한 충정이 마지막까지 나타나 있습니다.
보세요. 바울은 오직 복음입니다. 감옥에 있으면 감옥에 있는 대로, 핍박이 있으면 핍박이 있는 대로, 재판 받을 때는 재판 받는 대로, 어디서든지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생애의 목적을 삼고 전심전력을 기울인 것입니다.
바울의 이런 행동이 로마총독이 볼 때에는 확실히 미쳤거든요. 그래서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였던 것입니다.
이 '미쳤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이네'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치광이'라는 말은 '마이니안'이라고 합니다.
헬라어로 소개하는 이유는 이 말이 '마니아(mania)'라고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마니아'라고 하는 말을 요즘 아주 흔하게 쓰고 있습니다. 골프 마니아, 스포츠 마니아, 머슬 마니아 (몸짱 마니아) 디카 마니아 등
원래 마니아라는 말은 미쳤다는 뜻입니다. '광적'이라는 말입니다.
computer mania 라고 하면 computer 미치광이, audio mania 라고 하면 오디오에 미친 사람입니다. 골프 마니아는 골프에 미친 사람입니다. 원래 나쁜 뜻을 가진 이 말이 이렇듯 좋아서 미친다는 것으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베스도가 볼 때에 바울은 'Jesus mania'입니다. 예수께 미친 사람입니다. 예수 미치광이지요. 이 말은 불명예스러운 말이 아닙니다. 적어도 예수 믿는 사람은 미쳤다는 말을 좀 들어야 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광이라는 말도 좀 들어야지요. 책벌레라는 말도 들어보아야 합니다. 사랑도 그래요. 한 번쯤은 미쳐봐야지요. 이렇게 보면 미친다는 말을 그리 나쁘게만 해석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만을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한 가지에만 전적으로 몰두한다는 것이지요. 그 한 가지를 위해서라면 생명도 바쳐요.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해서 바치는 희생을 즐거움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친' 것입니다. 혼자서만 좋아하고 히죽히죽 웃는다면 미친 것이지요. 남이야 아랑곳없이 자기만 좋아 가지고 미쳐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
예수 미치광이-어떻습니까? 예수밖에 몰라요. 성경밖에 몰라요.
그저 시도 때도 없이 교회에 나가는 것밖에 몰라요. 교회 봉사하는 것밖에 몰라요. 남들은 알든 모르든 상관없어요. 나만은 항상 기뻐요. 항상 만족해요. 이것이 'Jesus mania' 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을 자세히 보면 더 재미있어요.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구나, 라고 베스도가 말합니다.
너무 많은 학문이 -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지식적인 차원으로 말한다면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어떤 지식보다 더욱 고상한 지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3:7-9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소유했던 모든 지식과 경험과 세상적 지위를 배설물로 여기고 과감히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은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고 전통을 지키며 살아도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 외에는 무의미하다고 여겼습니다. 심지어 전에는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는 해로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은 삶의 우선순위가 변하고, 세상을 보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브니엘 예술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최병호 선생님은 어린 시절 독실한 불교 가정에서 태어나 불교 중학교에서 불교 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예수님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기독교 명문고인 브니엘 예술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그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그는 처음 입학 했을 때 절대로 기독교인이 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염주를 양팔에 하나씩 차고 다녔고, 체플 시간에는 전도사님 말씀에 귀를 막았으며,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을 괴롭히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따뜻한 미소로 대해 주시는 전도사님과 친구들을 보면서 그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도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전도 왕이 된 것입니다. 그는 그의 책 ‘열혈 청년 전도왕’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약 제가 우리나라 대표로 수천억에 달하는 큰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았다면 그 자부심은 대단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단연코 확신합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보다 더 크고 존귀한 프로젝트는 없습니다.’
그는 현재 소득의 30% 이상을 전도를 위해 사용하고 있고, 3,500명의 전화번호를 4개의 핸드폰에 저장해 놓고 A, B, C 그룹으로 나누어 새벽마다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시간을 정해 전도 대상자들과 새신자들을 돌보고 교제하면서 한 영혼이라도 구원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전도 열정을 기쁘게 받으시고 국내는 물론 외국에까지 가서 총 200회 이상 간증과 세미나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면 가치관이 변하고, 인생을 사는 목적이 달라집니다. 최병호 선생님은 전도를 위해 살고, 전도를 가장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지나치게 믿거나 심지어 미쳤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귀한 것을 깨닫고 소유한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채 인간의 이성의 틀에 갇혀있는 베스도 총독에게는 바울이 미친 사람으로 보였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사도 바울은 진리 안에 사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행26:25바울은 자신을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는 베스도 총독을 각하라고 높이며 자신이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와같이 바울은 모욕을 당하는 순간에도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온유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온유함은 바로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실 때 보이신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벧전2:23예수님께서는 모욕을 받아도 맞서서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해도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모든 판단을 맡기셨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본받은 참 제자였습니다. 우리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에 모든 것을 맡길 때 온유할 수 있습니다.
2024년 4월 28일 오후 12: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