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한국교회에 성령의 새 바람을 보내셔서 교회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회복을 넘어 부흥을 경험하게 하소서.
분열된 한국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 하나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한국교회를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하사 어두운 세상에 영적 대안을 제시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행26:6-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행26:6-7"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우리 조상, 나와 당신의 조상, 곧 아그립바 왕과 나는 동족이라는 것입니다. 동질성을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동질성을 기화로 변명하고 있다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9절에는 "나도"라고 합니다. 이것도 동질성에 대한 얘기입니다. '나도 당신처럼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당신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나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당신과 똑같은 생각일 것입니다'라는 것이지요.
"나도" 이 얼마나 중요한 얘기입니까? "나는 당신과 다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얘기가 다릅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세요. 나도 당신과 같습니다, 오히려 나는 당신보다도 더 극렬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파요,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광신적인 박해자였습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을 뿐더러 다른 나라까지(다메섹은 당시에 다른 나라였습니다) 가서 도망간 예수 믿는 사람들을 아예 다 끌어다가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이러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예수를 증거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나도 당신과 같습니다, 당신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예수를 만난 이후로부터는 아닙니다, 그런고로 내가 아는 대로 당신도 알고, 내가 믿는 대로 당신도 믿고, 내가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도 역사 한다면 당신도 나와 같아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중요한 신학적 문제를 다룹니다.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 바로 소망에 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베스도 각하'는 모릅니다. 구약 성경을 모르는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아그립바 왕입니다. 그는 압니다. 유대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창17:2-4이나 삼하7:1-16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또는 다윗 왕에게 하신 말씀, 그리고 시편과 모든 선지자들의 기록에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있습니다. "앞으로 메시야가 오리라"하십니다. 그런고로 이스라엘사람들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굶주림 속에서도 메시야를 기다려 왔습니다.
이스라엘 선조들의 신앙은 메시아에 대한 ‘약속과 소망’입니다. 그런데 이 소망에 대한, 메시야를 기다리는 마음은 똑같은데 이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다릅니다.
뭐냐 하면 유대사람들은 아직도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신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유대 왕으로, 세속적으로, 그리고 자기들의 모든 욕망을 채워준다는, 바로 그러한 협소한 민족주의적 소망입니다. 저들은 그런 메시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여 바울이 말씀하는 이 소망은 해석이 다릅니다. 예수의 탄생과 예수의 사역과, 예수의 십자가와, 예수의 부활 - 예수사건 안에서 이 소망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소망의 성취라고 믿고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지금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 계시다 함이라"
마1:19-23"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아기 예수)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2:25-32"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요5:36"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물- 포도주)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7가지 표적 -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을 나타내는 증거)"
요2:11"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요10:37-38결정적인 것 -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24:44-47이와같이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구원을 다 이루어 주셨는데, 의견이 다른 것입니다. 소망을 기다리는 것은 같은데 소망의 질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누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 가운데도 이 말씀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 부활하신 다음에까지도 제자들이 물어봅니다.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나이까(6절)" - 끈질기게 물어보지 않습니까?
그들의 메시야관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인즉 이미 메시야는 왔고,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통해서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메시야를 우주적 메시야로, 그리고 종말론적 메시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망은, 약속은 벌써 성취됐습니다.
성취 안됐다고 믿는 사람하고 됐다고 믿는 사람, 세속적인 메시야로 기다리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다 이루어졌다고 믿는 사람의 신앙은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 차이 때문에 바울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예수 부활입니다. 나는 부활한 예수를 만나보았습니다,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을 못 믿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확실합니다, 그런고로 이 소망의 문제는 예수 부활 사건 안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 같은 극악한 사람이, 나 같은 극단주의자가 이제 이렇게 예수를 전하는 자가 됐고, 핍박을 받아도 나는 여전히 이 복음을 끝까지 전할 것입니다-여기에 숨어 있는 바울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나를 보시오. 내가 달라진 것을 보세요.
내 경험을 보세요. 이것을 이해하세요. 그러면 내가 왜 고난 당하는 가를 알고 복음이 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내 믿음과 담력을 보세요. 내가 이렇게 담대하게, 이렇게 온유하게 오늘도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세요.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 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바울은 지금 이렇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형편이든지 바울 같은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어떤 기회든지 복음 전할 수 있는 기회로,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가르쳐줍니다. 환경에 구애받지 말고, 그리고 나를 보세요, 내 변화를 보세요, 내 온유함을 보세요, 내 믿음을 보세요, 내 평화를 보세요, 주님께서 역사 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믿는 하나님을 당신도 믿으면 나와 같아질 것입니다, 라고.
2024년 4월 20일 오전 6: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