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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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1.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스페인 복음화와 아프리카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2.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3.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기적이 일상화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행25:25-2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행25:24-25

바울이 불려 나오자 베스도 총독이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베스도는 먼저 바울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즉, 그들 앞에 서 있는 바울은 ‘유대인들이 더 이상 살려 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먼저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사건을 심의한 결과, 바울에게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찾을 수 없었다고 밝힌 후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했기 때문에 황제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행25:26-27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죄수를 황제에게 보내려면 항상 그 죄수의 죄목을 기록한 보고서를 같이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무죄하기 때문에 보고서에 기록할 마땅한 죄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바울의 죄목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청문회를 열었던 것입니다. 베스도는 특히 아그립바 왕을 위해 이 청문회를 열었다고 했는데, 이는 아그립바 왕이 유대의 종교와 문화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를 통해 바울에 대한 보고서 작성에 도움을 얻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베스도가 아주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사실 고민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자기 앞에 돌아오는 이익을 챙기려니까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 아니면 '아니오'하라, 여기서 지나치면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쉽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다고 하려니 문제가 되고, 글쎄요 하려니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YES, NO를 분명히 하면 마음은 깨끗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면 아닙니다.

조금도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아닌 줄 알면서도 '그러나 어쩌고……' 하니까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 때문에 양심을 구부리려 하니까 일이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사실도 기억해야 되고 거짓말한 것도 기억해야 되고 둘 다 기억하려니까 복잡하잖아요? 그러나 진실한 사람은 본대로 들은 대로 봤다 안 봤다, 있었다 없었다---그대로만 말하면 간단합니다. 그런데 거짓말한 사람은 이게 어려워요. 사실은 사실대로 기억해야 되고, 거짓말한 것도 기억해야 되고, 또 누구에게 무슨 말 한 것까지 다 기억해야 합니다. 점점 복잡해져 가지고 마지막엔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 없어집니다. 자기도 모릅니다. 그래서 머리가 혼란해지는 것입니다. 진실처럼 단순한 것이 없습니다.

베스도가 고민을 할 게 뭐 있습니까? 죄 없으면 없다, 있으면 있다 하면 그만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시간에 와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있습니까? 단순하면 용기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은 언제나 용기가 있습니다.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용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익이다. 명예다, 출세다, 하는 시원치 않은 것들을 전부 생각하다가, 이렇게 하면 얼마가 손해고, 저렇게 하면 얼마나 이롭고, 이런 것 다 계산하다보니까 컴퓨터로도 계산이 잘 안나올 정도로 복잡합니다.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양심이 복잡해집니다. 마지막에는 음흉하게 되고, 위선적인 존재가 되고, 결국에는 자기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동시에 이렇게 되면 지혜도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의를 떠났을 때에 용기가 없고, 단순하지 못할 때에 지혜가 없어집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대로 유명한 얘기가 있잖아요? 솔로몬이 지혜의 왕이었지요. 그 마음이 깨끗할 때, 아직 타락하기 전에 얼마나 지혜로웠습니까?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창기 둘이 나옵니다. 두 여자가 아기를 가졌는데, 먼저 한 여자가 아이를 낳고, 사흘 후에 다른 여자가 또 아이를 낳았습니다. 한 집에 두 여자가 아이를 낳아서 키웁니다. 그런데 한 여자가 무심코 돌아눕다가 제 아이를 덮치는 바람에 그만 아이가 죽었어요. 그래서 슬그머니 다른 여자의 산 아이하고 자기의 죽은 아이를 바꿔놓았습니다. 이쪽 어머니가 눈을 떠보니 아이가 죽어 있습니다. '나는 분명 잘못한 게 없는데…… 저 여자가 바꿔치기를 했구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되어 두 여자는 재판을 받게 되는데, 저마다 그 아이를 제 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산 아이는 내 아이이고 죽은 아이는 저 여자아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복잡해졌을 때에 솔로몬이 "자, 칼을 가져오너라, 다 자기 아이라고 하니 반씩 나누면 될 것이 아니냐?" 합니다. 그랬더니 열왕기상3장 26절에 보면 "그 산아들의 어미 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한 계집은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하고 말씀합니다. 이에 솔로몬 왕은 마침내 "저가 그 어미니라"하고 진짜 어머니를 가려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온 백성이 이 판결에 감동을 합니다. 그 지혜에 놀라워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기가 막힌 지혜입니다.

자, 그러면 베스도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베스도가 정말로 제대로 사람답게 살려 한다면 이렇게 판단하면 되는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을 왜 죄인으로 끌어왔느냐? 그런고로 원고 너는 무고죄인이다" - 그렇지 않습니까? 죄 없는 사람을 죽을죄 지었다고, 그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다 무고죄에 걸려야지요. 그리고 전임자인 벨릭스는 직무유기죄에 해당하고요. 왜 죄 없는 자를 재판도 안하고 2년 동안 가두어놓습니까? 그 2년이라는 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요? 자, 벨릭스가 이렇게 판단하고 "땅 땅" 쳤으면 딱 좋았겠는데, 이걸 못한 것입니다. 왜요? 유대사람들에게서 환심을 사려고, 자기 지위를 지키려고, 자기 명예와 자기 처지를 지키려고, 정치적 위치를 지키려고 그는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26절을 보세요.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 이런 웃기는 얘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울을 재판정에 세워놓고, 또 2년 동안이나 가두어놓고, 이제 와서 한다는 소리가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하여 당신을 불러왔으니 얘기 좀 해보시오. 내가 들으면서 그 재료 좀 얻어 봅시다'하는 얘기입니다. 얼마나 못된 생각입니까? 얼마나 기막힌 난센스입니까? 그 마음속에 이미 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눈치를 보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될 때가 많습니다. 빌라도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기 때문에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습니다. 그래서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사도신경의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대목을 읽을 때마다 빌라도를 기억합니다.

바울의 무죄를 알면서도 외면한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서 바울이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의 복음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를 눈앞에 두고도 영생의 길을 놓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850년 오하이오 주에서 워디 테일러라는 농장 주인이 오갈 데 없는 한 청년을 인부로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농장 주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기 딸과 그 청년에 사랑에 빠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막노동이나 하는 인부 주제에 감히 내 딸을 넘보다니’하면서 불같이 화를 냈지만, 청년은 두려워하지 않고 결혼시켜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너무 화가 난 주인은 그 청년을 쫓아냈습니다. 그 후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농장 주인은 낡은 창고를 수리하기 위해 둘러보다가 기둥 한 구석에 새겨진 글씨를 보았습니다. ‘제임스 A 가필드’, 바로 그 당시 미국의 20대 대통령의 이름이었습니다. 30여 년 전에 내쫓은 청년이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청년의 겉모습만 보고 내쫓았던 것을 후회하며 ‘내가 대통령의 장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구나’ 가슴을 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판단하면 이와 같은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눈과 잣대로 결정하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공의로우신 주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은 바울을 사람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바울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독교 역사상 가장 귀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하나님의 종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바울은 비록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모습은 없었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온 유럽과 아시아를 복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신약 성경 27권 중 13권을 썼고,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드러나게 했으며, 순교의 제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 위대한 종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평가는 사람의 평가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눈은 베스도와 아그립바가 아니라 바울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죄수의 모습을 하고서도 하나님 편에 서서 묵묵히 복음을 증거하는 바울에게 하나님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사람의 눈에 잘 보이는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까? 사람의 눈에 잘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눈에 잘 보이는 것은 영원합니다. 여러분은 잠깐이 아닌 영원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 가운데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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