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담임목사를 위하여
말씀의 은사를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영적인 민감함을 주사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게 하시고 목자의 가슴과 아비의 눈물로 모든 성도를 깊이 사랑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겸손의 리더십을 갖게 하소서.
목사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온전히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고 가정에 평안을 주소서.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행25:22-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행25:22이제 바울을 재판하기 위해서 재판정이 열립니다. 그리고 베스도가 바울에 대해서 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음 시간에는 바울이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보게 되겠습니다마는 오늘의 본문은 베스도가 바울에 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분명히 알고 그 입장에서 오늘의 본문을 이해하여야 하겠습니다.
먼저 본문에 나타난 법정을 간단하게 한 번 생각해봅시다. 여기에 몇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저마다 성격이 다릅니다. 하나는 유대사람들입니다. 바울을 고소하고 있는 유대사람들, 이 사람들은 시기와 질투에 가득 차 있고 바울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꽉 차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죄목을 만들어서라도 베스도 총독을 충동질하여 바울을 죽이려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여러 번 살펴보았기 때문에 다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베스도 입니다. 이 사람은 로마총독입니다. 큰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마지막 결정은 베스도 총독이 해야 합니다. 또 모든 책임은 베스도 총독이 지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정치적 인물입니다. 그런데 지금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죄목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했기 때문에 이제 가이사 황제에게 보내야 되겠는데, 그러려면 그 죄목을 기록해서 보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당신에게 보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쓸만한 죄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베스도는 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아주 간단하게 나타나 있습니다마는 베스도의 마음은 착잡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아그립바 왕입니다. 유대나라 왕입니다. 별로 권한이 없는 허수아비라고 하지만 로마정부가 인정하는 유대나라 왕입니다. 이 사람이 바울을 만나려고 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아그립바 왕에게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문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은 헤롯 가문의 마지막 왕으로 아그립바 2세입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헤롯 왕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유아들을 대학살 했던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르게 했던 장본인입니다. 그의 아버지인 아그립바 1세는 야고보의 목을 자르게 했던 장본인입니다. 베드로를 감옥에 집어넣었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그의 가문 사이에는 아주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기의 아버지는 벌레에 물려 아주 처절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그립바 왕은 도대체 이 예수가 누구인지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때문에 감옥에 들어온 바울을 보고 그 사람을 좀 만나봐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사람은 버니게입니다. 이 버니게라고 하는 여인은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본래는 아그립바 왕의 여동생입니다. 아그랍바 왕에게는 한 아들과 두 딸이 있었는데 이 아들이 아그립바 2세요. 두 딸 중 한 사람이 바로 버니게입니다. 행24;25에는 벨릭스 총독의 부인인 드루실라라는 여자가 나오는데 드루실라와 버니게가 자매입니다. 그리고 버니게는 희대의 요부입니다. 친삼촌인 헤롯과 결혼했다가 그를 버리고, 길리기야 땅의 왕인 폴린과 결혼했다가 헤어진 후, 지금은 자기 오빠하고 불륜 관계를 맺고 있는 여자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왕후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통해서 왕후의 행세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 위세를 떨치고 싶은 것입니다.
남들이 무슨 욕을 하느냐, 자기 위치가 어떠냐……상관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자기가 왕후처럼, 왕후로서 이 자리에 나서서 한번 과시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다음 다섯 번째는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입니다. 구경꾼들입니다.
베스도 총독은 새로 부임해온 사람입니다. 아그립바 왕도 처음 보는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총독도 구경하고, 왕도 구경하고, 시비거리와 문제가 많은 요사스러운 여자, 즉 왕비 아닌 왕비도 구경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 방청석에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있습니다. 생각하면 바울은 지금 어처구니없는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회 있는 대로 다시 복음을 전하고 합니다. '베스도 각하'에게도 전하고, 아그립바 왕에게도 전하고, 버니게에게도 전하고…… 누구에게든지 좋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행25:23그 이튿날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하여 아주 화려하고 웅장하고 권위 있는 왕의 신분을 표시하는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천부장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을 다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데려 왔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대머리에 매부리코였으며 키도 작고 다리마저 휘어서 외모로는 준수한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죄수의 신분으로 끌려 나왔으니 매우 초라해 보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재미있는 한 그림을 봅니다. 내면에는 불륜과 죄로 가득 차 있지만 겉으로는 화려하고 품위 있고 권력있는 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람과. 비록 죄수의 모습으로 초라하게 끌려 나와 있지만 하늘의 영광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복음의 능력으로 가득 차 있는 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지만 그 안에는 말할 수 없는 부정부패와 우상과 불륜이 가득 차 있는 한 지도자와, 겉으로는 아무 것도 없지만 그 내면에는 풍성한 삶이 있고 죽음이나 감옥에 갇히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핍박과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서 있는 한 사람, 이 모습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로 여러분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 하는냐로 결정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부자다. 훌륭하다. 성공했다. vip다’이런 말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자기의 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하고, 치장을 하고, 좋은 옷을 입고 멋있게 권력을 행사하기를 원합니다. 그러고 그것이 자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겉모습을 아무리 화려하게 만들었다 할지라도 여러분 안에 불륜이 있고, 여러분 안에 부정이 있고, 여러분 안에 우상숭배가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여러분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낮은 자리에 있고 별 볼일 없어도 천국이 있고,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나쁜 사람,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극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런 영광스런 복음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더 악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 안에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어떤 고난도 희생도 손해도 기뻐하는 축복된 삶이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