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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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국군 장병들을 위하여

1.

국군 장병들에게 건강한 육체와 마음을 주셔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인도하시고 모든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장병들을 평안하게 지켜 주소서.

2.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장병들이 영적 광야인 군대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시고 이들을 통해 군 복음화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3.

군 선교를 위해 힘쓰는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영혼 사랑의 열정으로 헌신할 수 있도록 강건함을 허락하시고 군인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영혼들이 구원받는 열매가 풍성하게 하소서.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행25:13-1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행25:13

오늘의 본문에서는 아그립바 왕이 새로 부임한 로마 총독 베스도를 예방합니다. 이 자리에서 새로 부임한 로마 총독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에 대하여 설명을 합니다.

이 설명은 어디까지나 자기 처지에서, 자기 입장에서, 자기의 정치적 위치를 생각하면서 한 말입니다마는 그 말속에 진리가 있고 또한 깊은 계시적 의미가, 요샛말로 하면 선교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본문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상고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을 죄인으로 여기며 바울의 처리를 위해 머리를 맞댄 로마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 그리고 버니게 모두가 종교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하나같이 불의하고 부패한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재판할만한 자격도 없는데 권세의 자리에 있다고 해서 이 말 저 말 하고 있지마는 도대체가 영 마땅치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나, 이런 재판에 순종해야 되나,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이없습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복음을 전하고, 다시 설명하고 또 설명하는 바울을 생각하면 놀라울 뿐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는 바울의 입장에서는 정말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나의 본분, 나의 증인된 본분을 다하려고 하는 바울의 신실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만 본다면 단 한마디의 대답도 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렇게 만날 때마다 복음을 전하고, 또 여러 사람 앞에 설 때마다 다시금 복음을 정중하게 깨끗한 마음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된 성실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주변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가 어떤 환경에 있는 지는 묻지 않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앞에서만 성실하게 자기 본분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바울의 모습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아그립바 왕을 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원래 헤롯 아그립바 왕은 행12장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름을 지을 때, 이름 하나를 지어놓고 그 아들도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또 손자도 같은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렇게 같은 이름일 때에는 첫 번째 사람은 1세이고, 두 번째 사람은 2세이고, 또 그 다음에 세 번째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되면 그는 3세입니다. 중간에 다른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건너뜁니다.

아무튼 헤롯 아그립바 1세가 행12장에 나타나는데 오늘 본문에 나타난 것은 그의 아들입니다. 헤롯 가문의 마지막 왕으로 아그립바 2세를 말합니다. 그의 증조부인 헤롯 대왕은 예수님께서 탄생 하셨을 때에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을 학살한 폭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였는데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감옥에 넣었던 왕입니다.

아그립바 1세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 둘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바로 아그립바 2세이며, 큰 딸은 버니게이고, 작은 딸은 벨릭스 총독의 부인이 된 두르실라입니다. 버니게는 두 번이나 남편을 갈아 치우고, 오빠인 아그립바 왕과 불륜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녀는 그 후에 로마 황제 베스파이안의 정부가 되었다가 황제의 아들 디도 장군과 결혼을 했습니다. 마지막 남편이었던 디도 장군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을 총공격해서 멸망시킨 인물입니다.

그런데 아그립바 2세는 주후 48년부터 70년까지 꽤 오랫동안 로마 황제의 비호로 보좌에 있었습니다. 자기 능력으로가 아닙니다. 당시 유다 왕은 비록 허수아비 같은 왕이지만 왕은 왕입니다. 로마사람들이 이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리기 위해서 왕 제도를 놓아두고 총독을 두었어요.

총독이 실권을 가지고 있고 왕은 그저 형식적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이 사람은 로마에 대해서 순종을 잘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과의 관계가 좀 무난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왕 노릇을 하게 됩니다.

아그립바 2세, 그는 로마 황제의 비호로 비교적 오랜기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총독이 새로 왔습니다. 벨릭스가 해임되고 베스도라고 하는 사람이 부임해왔습니다. 그렇다면 로마의 비호로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이 아그립바 2세가 당연히 로마 총독을 예방을 해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대로 예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행25:14

베스도는 아그랍바 왕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여기서 왕에게 고하여 라는 말은 왕에게 보고하다 라는 뜻이 아니라 왕에게 자문을 구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베스도는 바울 사건에 대해 무슨 죄목으로 황제에게 보고해야 할지 난감하던 차에 마침 아그립바 왕이 찾아오자 비교적 유대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제사장들과 관계도 좋은 이 아그립바 2세의 자문을 구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본래 로마 총독들은 유대 왕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인데 오늘은 왜 묻는 것입니까? 바로 자기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 그리고 유대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유대 왕에게 묻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말씀 18-19절을 보세요.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 뿐이라"

행25:18-19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 나의 짐작하던 악행, 그게 뭡니까? 곧 내가 짐작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요, 로마를 위협하는 사건이요, 반란을 일으키는 사건이요, 민중을 교란시키는 것이요…… 이런 것들입니다, 그가 관심 가지는 것은 그것밖에 더 있겠어요? 그런데 내가 짐작했던 것과 같은 악행, 혹은 사람들을 죽였다던가 하는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아무 문제가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지금 2년 동안이나 갇혀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오직 문제되는 것은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가지고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것이라'하고 말합니다.

자기들의 종교, 이 말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곧 자기는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지 내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유대사람 자기네의 종교문제이지 우리의 종교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이 아니던가요? 총독이라고 해서 죽지 않던가요? 어찌해서 종교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무관심하게 대하고 있느냐 그 말입니다. 생각하면 어이없습니다.

알고 보면 얼마나 중요한 시간입니까? 생명을 구원하는 복음이 바울에게 있고, 바울로부터 영생의 도리를 들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는데, 베스도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문제이지 우리 문제도 아니고 내 문제도 아닙니다'하는 식의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참 답답합니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은 교회를 나오지 않고 아이들하고 부인하고만 나오는데, 그 남편보고 "자, 온 집안 식구가 다 나오고 선생님만 교회에 안나오시는데 이제는 선생님도 교회에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하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하는 말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어요. "그거요? 그저 애들이나 마누라나 나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이런 식의 답변을 들을 때마다 참 답답합니다.

베스도가 지금 그런 꼴입니다. '자기들의 종교 문제입니다'라고 일축해버립니다. 무관심합니다. 문제 아닌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돈 많은 부자 집에 머슴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 집에 와서 일을 하고 있는데 녀석이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주일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토요일에 주인이 일을 시키면 주일날 교회에 가기 위해서 밤새껏 일을 다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일 낮에 교회를 나갑니다. 주인이 "너 일 안하고 교회 나갔냐?"하면 "다 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니 나무랄 수도 없습니다. 좌우간 교회 한번 나가기 위해서 얼마나 일을 더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본 주인이 그 머슴아이에게 뭐라고 했는고 하니, "이 미련한 놈아, 남의 집 머슴살이하는 주제에 교회는 나가서 뭘 하니?" 그러면서 주인은 머슴아이를 어리석다 여겨 자기 지팡이를 하나 내어주면서 "이 녀석아, 너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있거든 이것을 주어라"했습니다. 머슴은 "알았습니다" 하고 받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주인이 죽게 됐습니다. 방안에서 쿨럭쿨럭하고 있는데, 이 녀석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너 왜 들어오느냐?" "인사드릴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인데?" "주인님이 저한테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 있으면 이 지팡이를 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묻습니다.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죽은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는 이치를 알고 있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그렇다면 세상에서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주인님이 아닙니까? 이 지팡이 받으세요." 사실 그래요.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합니까?

2024년 4월 12일 오전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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