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경제와 문화를 위하여
경제성장과 분배가 잘 이루어지게 하시고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붙들어 주시고 축복하소서.
기독교 기업들이 청지기 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섬기고 정직하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앞장서게 하소서.
이 땅의 미디어와 언론이 진리와 정의의 편에 서게 하시고 건강하고 균형 잡힌 가치관을 가지고 방송을 제작하는 문화 창출이 일어나게 하소서.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행25:10-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행25:10-11오늘의 본문에 보니, 사도 바울은 이 모든 상황을 보면서 이제는 안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 앞에서는 도저히 정의를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11절)" 합니다.
'난 예루살렘에 안가겠소. 뿐만 아니라 여기서도 재판 받지 않겠소. 로마로 가겠소. 난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오. 그곳에서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소'라는 것입니다. 유대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서는 안되겠다 함입니다. 어떻게든 저들이 없는 로마에 가서 재판 받을 생각입니다. 이리하여 그는 로마 가이사 황제에게 호소하게 됩니다.
또한 오늘의 본문 11절에 심각한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삽나이다"-아주 담대하고 똑바른 태도입니다.
헨리 피쳐라고 하는 목사님이 인디애나폴리스의 어느 교회에 새로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아하니 그 마을 사람들의 윤리 의식과 생활이 아주 엉망인 것입니다. 심지어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그저 시간만 있으면 술과 도박을 즐깁니다. 마을사람 전부가 아예 술과 도박에 찌들었습니다. 목사님은 곧바로 엄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술도 안되고 담배도, 도박도 안됩니다. 이것들은 다 죄악입니다"하며 도박과 술의 죄악성을 시간시간 설교했습니다. 교인들은 이에 감동이 되어 술도 도박도 끊고 정결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차츰 달라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이 설교하고 있는데 술집 주인이 들어와 총을 들이대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로 마을사람들이 달라지고 자연히 술을 못 팔아먹으니까 교인들 앞에서 목사님을 협박합니다. "설교를 고쳐라. 술이 왜 나쁘고 도박이 왜 나쁘냐? 계속 이렇게 설교하면 죽여버리겠다." 그 때에 피쳐 목사는 서슴지 않고 "나를 쏘시오"하고 태연하게 나섰습니다. 결국 술집 주인은 총을 쏘지도 못 했을 뿐더러 이 일로 인해서 그 교회와 그 마을이 완전히 새로워졌다고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긴 용기라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당당하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저들에게 내어줄 수 없다, 나는 로마에 상소하리라-바울이 이렇게까지 생각한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마도 그는 행23:11 말씀을 마음에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네가 예루살렘에서 증거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거 하리라, 걱정 말아라, 너는 로마까지 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에 갈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로로 가는지 몰랐습니다. 감옥에서 나와 좀 자유롭게 가기를 바랐지요. 그러나 그 길은 2년이 지나도록 열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이제 자기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택합니다. 바로 죄수의 몸으로 가는 것입니다. 자유인으로 가는 게 아니라 죄수의 몸으로 쇠고랑을 차고 로마로 가는, 미상의, 미지의, 불확실한 길을 택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계시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결단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겸손이 필요합니다. 오묘한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궁극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고 선교에 있습니다. 다만 그 방법을 우리는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방법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는 이 모순된 현실을 통하여 뜻을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행25:12베스도는 배석자들과 상의한 후에 바울을 가이사에 있는 로마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은 악한 무리들의 음모를 깨뜨리고 위기 가운데 있는 바울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이 결정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바울은 3년 전에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로부터 들은 말씀대로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3년 동안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수많은 시련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지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것은 로마 선교를 향한 뜨거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소원했던 로마 선교의 길이 마침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소망을 결단코 꺾거나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평생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길을 갈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해 놓으신 길로 걸어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곧지 않은 길은 우리의 고집 때문에 다른 길로 갔다 돌아온 흔적입니다. 휘어진 길은 우리가 다른 길로 갔다가 연단의 과정을 겪고 눈물로 회개한 후 다시 주님께서 예정하신 길로 돌아온 흔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원망, 불평, 미움을 담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양심이라고 하는 마음의 거울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만날 때 그 만남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신앙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양심이 알려 줍니다. 양심이 좋지 않은 만남이라고 알려 주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따라가면 시간만 버리고 수확이 없습니다. 우리가 양심을 따라 순종하지 않고 세속에 떠밀려 사업을 하면 돈도 잃고 건강도 잃고 고생만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을 잘 살펴보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은 기다림으로 완성됩니다. 믿음의 실체가 있고 증거가 있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죽어서 믿음을 남깁니다. 믿음은 이름보다 더 오래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행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의 시간, 물질, 재능 모두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예정해 놓으신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약속하신 것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소망을 갖고 끝까지 인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