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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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1.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지역 사회의 연약한 영혼들을 섬기게 하소서

2.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 말씀 충만, 기도 충만하게 하시고 모든 예배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회복과 부흥이 있게 하소서

3.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행24:17-2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행24:17

성전을 더럽혔다는 대제사장과 변호사 더둘로의 고발에 대한 사도 바울의 변론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목적이 어디에 있다고요? 여러 해 만에 (1차 선교 후 잠시 예루살렘에 온 것 외에 오랫동안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 기근으로 고통을 당하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기 위해 이방인 교회에서 연보를 보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방인 성도들의 사랑을 전하고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행24:18

결례를 행하였고 - 야고보의 권면으로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행21:17-24

이렇게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 자신이 성전을 찾은 것은 성전을 모독하기 위함이거나, 사람들을 선동하여 소동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통대로 결례 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갔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모임을 가진 일도 없고, 소동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는 저희들이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성전에서 경건히 결례를 행하고 있을 때 아시아로부터 온 몇몇 유대인들이 소란을 피우며 자신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행24:19-20

사도 바울은 자신을 성전 모독죄로 고소한 아시아 출신의 유대인들 중 단 한 사람도 재판정에 출두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지난 번 산헤드린에서도 바울의 죄를 입증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벨릭스 총독의 재판정에 감히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변호사 더둘로와 그 일행들을 보내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고발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새로운 고소자로 출두한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변호사 더둘로에게 자신의 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밝히라고 요구했습니다.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행24:21

고소자들이 바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죄목은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도저히 범죄로 인정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정통 유대교도인 바리새인들도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죽은 자의 부활의 교리가 정통 유대교의 교리로서 이단의 말도, 식민지 백성을 격동시켜 통치 국가인 로마에 대한 반발을 일으키는 말도 아님을 강조하였습니다.

로마 총독 앞에 선 바울의 모습이 얼마나 당당합니까? 떳떳한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생겼을 때 세상은 변합니다. 벨릭스는 그 재판을 맡은 총독이었지만 바울의 진실에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굉장히 좋은 감정을 갖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나 정직이 이긴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거짓은 순간적으로 이기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정직이 이깁니다.

벨릭스는 마지막에 이런 판결을 내립니다. 22-23을 보겠습니다.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행24:22-23

벨릭스는 유대 총독으로 있기 이전에 사마리아 총독으로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사마리아와 유대 근방에서 총독 노릇을 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정치적인 상황과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간의 갈등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 각자가 주장하는 교리는 절대로 합쳐질 수 없는 영원한 평행선과 같은 것임도 알고 있었습니다.

벨릭스는 양측의 말을 다 듣자 이 송사의 전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소요라는 더둘로의 주장이 거짓이요, 바울의 변론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사건은 유대의 종교적인 분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총독은 유대인의 종교적인 갈등 때문에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바울을 송사한 사람들의 비위를 알면서도 그 일에 깊이 관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천부장 루시아를 불러 그의 증언을 들어 보고 나서 판결을 내리겠다며 재판을 연기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벨릭스 총독의 핑계일 뿐 그는 이미 바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구류한 채로 재판을 연기한 것은 만일 바울에게 무죄를 선고할 경우에 바울을 미워하는 유대인들로부터 인심을 잃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요가 일어나 로마 황제에게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가 들어가서 이제 얼마남지 않은 임기를 무사히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 시민인 사울을 구류하되 얼마만큼의 자유를 주도록 허용했던 것입니다.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행24:23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재판이 바울에게는 두 가지 축복을 안겨 주었습니다.

1이 재판에서 바울이 무죄인 경우, 그가 나오면 살해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40명이라는 사람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바울을 죽이겠다고 기다리는데, 만약 그가 감옥에서 나오면 언제 어느 때 살해 당할지 모릅니다.

따라서 형이 결정되지 않고 감옥에 있는 것은 살해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군대가 지켜주고, 감옥이 지켜주고, 먹을 것을 갖다 주니까 안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유죄라고 판결되어도 곤란합니다. 그래서 유죄도 아니고 무죄도 아니고 보류입니다.

또 하나의 축복은 벨릭스가 ‘바울은 보류다’라고 하면서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보호를 받으면서 복음도 증거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서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이 사건이 안 났다면 제가 아마 고혈압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너무 일이 복잡하고 많아서 혈압이 올라가서 안 내려와요. 잠을 못 자고 너무 고통스러운데 감옥에 들어와 보니까 전화도 안 오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명령하는 사람도 없어서 좋아요.”

예전에 이상양 전도사가 빈민촌 선교를 하다가 폐병으로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발 쉬라고 했는데 쉬지 않고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과로로 죽었습니다. 그때 김진홍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처럼 유신에 반대해서 감옥이나 좀 가지” 그 분은 이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건강도 회복되고, 성경도 많이 읽고, 성령 체험도 (그 전에는 성령 체험이 없었는데 감옥이 너무 추워서 성경에서 불이라고 기록된 곳을 다 찾아서 읽고 하나님께 불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성령의 불을 주셔서 그 추운 감옥에서 견딜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들어감으로써 모든 죽음의 위협에서 피신해 쉬면서 안식했습니다. 그러니까 회사가 부도가 나고, 실직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혹시 직장에서 쫓겨나면 ‘할렐루야!’하십시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건강도 회복시켜 주시고, 또 공부도 하게 해 주십니다. 그런 시간에 계속되느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1, 2년이 지나면 새 일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37: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73:1-3

우리는 실패나 고통 중에서 세밀하게 돌보시는 주님의 손길을 의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점에 대해 얼마나 큰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주님 안에서 생각해 보면 축복이 아닌 일이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24년 4월 5일 오전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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