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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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1.

우리 대한민국을 불쌍히 여기사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게 하시고 진정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2.

주변국가들로부터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시고 복음 안에서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3.

창조의 질서를 부정하는 비성경적 법률이 제정되지 않게 하시고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4.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의 명령에 순종하여 저출산의 문제가 해결되게 하시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우리의 희생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5.

예수님의 보혈로 이 땅을 덮어 주셔서 우상 숭배의 죄악들이 끊어지게 하시고 교만과 자살과 음란의 분열의 영이 묶임을 받고 떠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그들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행24:14-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그들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행24:14-15

지난 시간에 이어 사도 바울의 변명을 듣고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변명 중에 바울의 참모습, 그의 신앙적 충성과 자세가 밝히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누구냐, 바울은 무엇 때문에 수고했느냐, 오늘 무엇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서 힘쓰고 있느냐, 이 짧은 변명 속에 잘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핍박받고 있는 것은 하나님 섬기는 일 때문이다-이것이 총 주제입니다.

여러분, 예배라고 하는 말이 원래 섬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예배'를 'service'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 뭘 달라 하고, 뭘 받겠다고 하는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께 봉사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배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섬기는 방법이 다르고, 섬기는 길이 달라서 문제가 됩니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14절)" - 그들이 생각하는 이단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좇아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유대사람들은 유대주의라고 하는 자기네 나름의 종교사상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딴에는 다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섬기는 방식이 다릅니다. 섬기는 목적이 다릅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Let God be God."-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 하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내 방법으로가 아닙니다. 내 뜻으로가 아닙니다. 내 발상으로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방법대로 내가 주를 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께도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가야바도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의 목적입니다. 생의 목적이요, 직업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섬깁니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왜 충돌합니까? 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했습니까? 다 같이 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되어 있지마는 실상은 그 개념이 전혀 다른 하나님이요, 다른 길이요, 정반대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사람들도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지만 문제는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10:2-4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함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 섬기시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근본 뜻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그런고로 율법을 지키되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지킬 것이지 벌받을까봐 무서워서 지킬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율법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으니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고자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민, 하나님의 자녀가 됐으니 지키는 것입니다.

흔히 부모에게 효도한다고 하는데 역겨운 효도가 많습니다. 늘 불효하고 홀대하다가 누가 보는 데서만 효도하는 척합니다. 생전 용돈 한번 안 드리다가 관광 가시라고 강제로 떠밀어 가지고 보내는데, 이것도 남들에게 보여주느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효도하는 척하고 내가 칭찬을 받겠다는 것이지 정말 부모님을 위해서가 아니요, 부모님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안식일 문제 놓고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안식일은 무엇입니까? 제일 많이 충돌한 것이 안식일 문제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손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그리고 선한 일 하고 - 이래야 되는 것이라 하십니다. 사실 선한 일 하는 게 그대로 휴식이 되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일 하면 얼마나 마음이 기쁩니까? 낮잠 자는 안식일이 아니라 예수님께는 선한 일 하는 안식일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주일날에는 선한 일 좀 합시다. 병원도 방문합시다. 모르는 사람도 좀 방문합시다.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아마, 해보면 알 거예요. 그랬더니 오늘은 내 마음이 편하다, 내 몸도 참 편하다 - 진정한 안식을 경험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일도 열심히 합시다.

이렇게 볼 때에, 일하는 안식일입니다. 선한 일 하는 안식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 예수님께서는 일하는 안식일로 쉬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사람들은 왜 안식일 날에 병을 고치느냐고 말썽을 일으킵니다. 더욱이 안식일 지키는 것을 공로화했습니다. 안식일을 지켜서 우등생이요, 안식일을 지켜서 훌륭한 선민이 될 수 있다 - 도도하고 교만했습니다. 저들에게는 이런 의미의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기독교와 충돌할 수밖에.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까지 생기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고로 이제 우리 생각해봅시다. 예수의 도를 좇아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게 무엇입니까? 종교학적으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계시자로 믿는 유일신 종교다 - 이것은 바른 정의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만 입니다. 예수를 좇아서 하나님께 나아가고 예수만이 계시자요 예수만이 우리의 구주입니다.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길을 좇아서, 이 도를 좇아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길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길, 율법주의적이고 바리새인적이고 세속적이고 외식적인 길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래서 부딪치게 됐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이 도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 성경에 보니 율법과 선지자를 믿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이것도 다릅니다.

저 사람들이 믿는 율법은 구원의 사다리, 축복의 길, 복 받는 길로서 입니다. 그런 율법을 생각하고 있지마는 기독교의 율법은, 율법관은 어떻습니까? 로마서 10장 4절에 보면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라고 말씀합니다. Jesus is end of the law. - 율법의 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율법은 이제 끝났습니다. 이러니 충돌이 안될 수 있습니까?

또 선지자 문제만 하더라도 예수로 인하여 선지자의 예언은 다 성취됐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눅24:44-48

오랜 세월에 걸쳐 누누이 계시되어온 바 메시야에 대한 에언, 선지자가 기록해 놓은 그 예언은 다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유대사람들은 아직도 멀었어요. 언제인가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얘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 본문에 나타나는 사도 바울의 이 한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14, 15절)

그랬더니 중요한 나머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율법을 완성하셨고 부활 승천 하셔서 이제 재림하십니다. 우리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유대사람들은 지금도 육체로 오시는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초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재림을 기다리고, 그들은 초림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우주적인 메시야를 기다리고, 저들은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다립니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같은 율법, 같은 선지자라고,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바울은 말씀합니다. 이래서 내가 지금 이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2024년 4월 3일 오전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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