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과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 열방의 선교사로 나아가게 하소서.
다문화 가정을 축복하사 불신, 이혼, 폭력 등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성장하게 하소서.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사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행23:25-3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 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행23:25-303차 선교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죄목은 로마를 반역했다던가 소란을 일으켰다던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유대적이라는 것과, 반율법적이라는 것, 그리고 성전을 더럽혔다고 하는 죄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해서 아는 바와 같이 그들이 사도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까닭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시기 때문이요, 질투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졌던 종교적, 정치적 특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자 함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른 트집을 잡아서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죄 가운데 하나가 시기, 질투라고 생각합니다. 인류 최초로 살인자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동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시기, 질투심이 불같이 일어나는 가인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4:7시기 질투가 죄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큰 죄입니다. 정말로 죄의 원인이 되는 죄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흔히들 시기하는 것을 큰 죄로 생각하지 않고, 질투하는 마음을 크게 회개해야 될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마음 속에 시기와 질투가 싹트기 시작하면 정신을 못 차립니다. 결국은 살인에까지 이르고 맙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큰 죄를 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범죄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시기와 질투를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사람들이 시기 질투심을 유발시켰어요. 그때)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3:26-303:30 He must become greater; I must become less. (지금도 과분하다)
어떤 분은 '시기, 질투를 완전히 불식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인격적으로 완전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존경받는 지도자도 시기, 질투 앞에는 넘어집니다. 그런고로 시기, 질투는 마귀의 고등 술책입니다. 유대사람들은 이 같은 시기, 질투로 인해서 바울을 해치려 합니다.
그리고 바울을 죽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시도가 여러 번 실패하자 바울을 죽이려고 맹세한 사람들이 사악한 꾀를 씁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행23:14-15결국 그는 동족에게 핍박을 받고 이방인인 로마사람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예루살렘에 더 둘 수가 없어서 밤을 타 몰래 가이사랴로 호송하게 됩니다. 이것이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바울 하나 때문에 무려 470명이나 되는 많은 군사를 동원되어 그를 가이사랴로 호송합니다. 여기서 한번 짚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수라고 생각되는 바울이 도망갈까 염려되어 그를 감시하려고 470명이나 동원한 게 아닙니다. 바울이 죄수냐 아니냐와는 관계없이 그를 죽이려고 맹세한 자들로 인하여 그가 다칠까봐, 그를 경호하기 위해서 470명이 동원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인을 호송하는 데 있어서 죄인이 도망갈까 걱정되어 그런 게 아니라 죄인인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호하게 된 것입니다.
바야흐로 법이 사람을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법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까? 선한 사람을 보호하고 악한 사람을 벌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죄 없다고 생각하는 이 사도 바울이 적어도 억울하게, 아무 재판도 받은 일없이 피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울을 이렇게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천부장이나 백부장의 관심은 바울이 사느냐 죽느냐에 있는 게 아닙니다. 죄목을 정하지 못한, 더구나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피살된다면 시끄럽겠지요. 그렇게 되면 백부장의 책임이 됩니다. 자기의 목이 위태롭습니다. 천부장 역시 자기 책임입니다. 그런고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바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직위를 위해서,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에서 바울을 호송하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편지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편지를 가지고가는 사람은 백부장입니다. 그러나 편지를 쓴 사람은 천부장이라고 생각됩니다. 예루살렘을 호위하고, 보호하고, 군사로 지키고 있는 사람은 천부장입니다. 그리고 유대 지방 전체를 다스리고 있는 자는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입니다. 우선 총독이 있고, 그 밑에 천부장이 있고, 다시 그 밑에 여러 백부장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편지는 근본적으로 천부장이,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의 군사적 지배를 책임지고 있는 천부장이 자기보다 권세가 더 위에 있는 총독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지역의 로마측 통치부가 있는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고 가이사랴입니다. 예루살렘은 내지에 있고, 가이사랴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 도시입니다. 때문에 모든 문물이 다 그리로 오고가고 했습니다. 지금도 가이사랴는 대단히 크고 번화한 도시입니다. 그 당시 여기에 소로마라고 하는 문화도시를 건설하고 로마군인들이 주재하고 있었는데, 군사본부로 헤롯의 궁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헤롯 궁전은 헤롯 때에 헤롯이 만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지, 거기에 헤롯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벨릭스 총독이 주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부장의 입장에서는 보다 상위 기관으로 바울을 호송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천부장의 편지 내용을 잠깐 생각해봅시다. 천부장은 자기가 본 사실을 그대로 총독에게 보고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편지는 언뜻 무죄를 확인하는 '무죄 확인 통지서'같은 인상을 줍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서원한 사람이 사십명이나 있었지만 자기가 보니까 죽일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이 사람을 체포할 이유나 감금한 이유, 죽일 이유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빌라도에게서 재판받던 장면과 똑 같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잡아다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때 빌라도는 예수에게 십자가형에 처할 이유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들의 종교적인 문제요, 율법에 관한 문제이기에 이 사람이 법적으로 죽여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은 아우성을 칩니다. “예수를 죽이시오. 예수를 죽이시오”
사실은 백성들이 아우성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배후 세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빌라도가 너무 고민스러워서 예수를 채찍질하게 합니다. 많이 때림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좀 누그러뜨리게 할 수 없을까 해서 예수를 채찍으로 때리지만, 사람들은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요19:12정치적인 문제로 끌고 들어옵니다. 빌라도는 자칫하면 자신의 정치 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예수 대신에 바라바를 놓아 주고 죄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바울에게도 닥쳤습니다.
이런 상황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성직자들은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기 사건에 말려들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흠을 잡혀서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부정과 대형 사건에 그리스도인들이 관계되지 않은 사건이 어디 있습니까? 목사가 예수를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기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인들이 사기를 치고, 성 폭행을 하고, 교회를 가르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 안에서 얼마나 우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이 얼마나 우리 안에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는 한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일, 세상적인 일 때문에 핍박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2024년 3월 28일 오전 6: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