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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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1.

한국교회에 성령의 새 바람을 보내셔서 교회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회복을 넘어 부흥을 경험하게 하소서.

2.

분열된 한국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 하나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3.

한국교회를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하사 어두운 세상에 영적 대안을 제시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행23:14-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행23:14-15

이스라엘 사람들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앞도 막히고 뒤도 막히고 옆도 막혔거든 이제는 위를 보라"

왜 이렇게 막았느냐, 위를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을 로마로 보내는 과정이 이렇게 복잡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로마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송별회하고, 환송회하고……그러는 게 아닙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배에 실려서 로마까지 갑니다.

또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리라 하셨지만, 바울이 로마의 원형극장에 서서 수만 명을 모아놓고 설교하는 게 아닙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감옥에서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 친위대원들에게 말입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삼백 년도 못 가서 대로마제국은 기독교 국가가 됩니다.

로마의 가면 유명한 그림이 있다고 합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왕관을 벗어서 베드로에게 바치는 그림입니다. 무릎을 꿇고 바칩니다. 곧 나라를 바치는 것입니다. 한 번의 전쟁도 없고, 한 번의 충돌도 없이 대로마제국이 결국은 사도 바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고난의 길, 알 수 없는 엄청난 수난의 길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너는 로마로 가리라,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성취되는 첫 단계가 뭐냐, 바울을 죽이겠다고 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는 꼼짝 못하고 죽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가이사랴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이사랴에서도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자꾸 죽이겠다니까 아무리 기회를 봐서 놓아주어도 죽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로마로 가게 됩니다.

참으로 오묘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 오늘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역사적 사건과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신비로운 조화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의 악과 하나님의 경륜, 사람의 음모와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놀랍고도 신비로운 진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16:4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여러분은 역사를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벌과 꽃을 생각해봅니다.

벌이 날아다니면서 꽃에서 꿀을 빨아들입니다. 아마도 꽃에 입이 있다면 이렇게 한마디 할 것입니다. "이 나쁜 놈아, 너는 날강도로구나! 대낮에 남의 집에 들어와서 꿀을 다 훔쳐가다니……" 하지만 벌이 꽃에서 꽃으로 옮겨 다니면서 꽃가루를 묻혀놓기에 꽃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어느 해인가 농약을 너무 많이 뿌려서 벌이 다 죽는 바람에 사과가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 사람들이 붓으로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에 발라서 과수원 농사를 했다는 얘기를 어느 기록에서 읽은 일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벌이 있어야 합니다. 나비도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악이 왜 존재하는지 우리는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악한 사람이 왜 있어야 하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두고 보세요. 먼 훗날에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이 일이 왜 있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73:16-1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십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요, 신비로운 우주적 구원의 사역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악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가야바와, 안나스와,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심지어는 헤롯당까지 몽땅 합세하여 만든 하나의 걸작품입니다. 악의 승리요, 악의 극치요, 불의의 절정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순간, 그들은 승리했다고 여겼을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이겼다, 예수를 죽였다 하고 만세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들은 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놀랍고 신비로운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로 다 할 수 없는 우주적 진리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행3:17-18

자, 이렇게 우주적인 놀랍고 신비로운 경륜을 보고, 그 속에서, 그 빛 속에서 오늘의 본문을 이해해보세요. 그러면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13절에 보니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한 사람이 40여 명 있었답니다. 살리기로 맹세했다면 모르겠지만 죽이기로 맹세한 사람은 참 한심한 사람이지요. 아마도 이 사람들은 대제사장들에게 고용된 것 같아 보입니다.

본문을 이렇게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갑자기 무슨 열심이 생겼기에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난 먹지 않겠다'라고 했겠습니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미루어 생각하면 쉬울 것입니다. 이들은 벌써 대제사장으로부터 바울을 죽이라고 하는 지령을 받은 것 같아요. 마치 가룟 유다가 제사장으로부터 은 30을 받은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듯 몇 사람을 고용했는데 그만 기회를 놓쳤어요. 소동하는 가운데 바울을 죽여야 했는데 못 죽였다는 말입니다.

이미 여러 번 기회를 놓쳤어요. 이에 제사장이 대노한 것입니다. "너희들은 무엇을 하는 것들이야? 돈만 받아먹고!" 사정없이 책망을 하게 되니까 이제 이런 맹세까지 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번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물어볼 것이 있다 하고 바울을 불러내 주세요. 산헤드린 공회까지 오는 동안에 숨어 있다가 틀림없이 없애버리겠습니다. 만일에 없애지 못한다면 저희가 죽겠습니다." 그래 본문에 보니 이들이 뭐라고 합니까?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12절)"

이 사람들을 보니까,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 하니 꼭 죽이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말에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게 아니예요.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죽기"-좌우간 바울을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극단주의자들이요, 악당입니다. 아마도 대제사장과의 약속이 여러 번 빗나가고 실천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많은 추궁을 받았기에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이번에는 꼭 실천하겠습니다'하는 그런 의미의 맹세였던 것 같습니다.

또 특별히, 이들은 하나님께 충성할 생각은 못하고 대제사장에게 충성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충성하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대제사장에게 충성을 하고, 그의 교훈에 충성하고, 그의 교리에 충성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것을 신앙의 행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옛날에 선지자들을 죽인 사람들이 선지자를 죽이면서,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줄로 착각을 하고 있어요. 그것이 율법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생각입니까?

살인이라는 악한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합니다. 무서운 생각입니다. 무릇 목적이 선하면 방법도 선해야 됩니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어떤 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충성된 행위라고 스스로 표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음모가 주어집니다. 보십시오. 그러면 왜 정당하지 못하고, 왜 당당하게 행하지 못하고 음모를 꾸미는 것입니까? 천부장에게 '바울에게 물어볼 말이 있으니 한 번 더 공회에 나오게 하라'라고 부탁을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바울을 유도해서 천부장이 사는 곳, 즉 군인들이 사는 영내를 벗어나서 공회로 가도록 하고, 그 노상에 매복해 있다가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소로운 음모입니까? 이 얼마나 간사한 짓입니까?

오늘의 본문말씀 15절은 이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볼 양으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행23:15

그럴듯한 이유를 빙자하여 꾸미는 음모, 이것이 얼마나 불신앙적이요 악한 행동입니까? 어디에나 이런 음모는 있습니다.

느헤미야서에 볼 것 같으면, 느헤미야가 퇴락한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있을 때에 많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적들은 느헤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우리가 할 말이 있으니 오노 평지로 나와주십시오'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매번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거절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바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너무 바쁘고 막중하기에, 지금어디 왔다 갔다 하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듣고 할 겨를이 없습니다.'그래서 그가 죽음을 면합니다.

만일 저들이 부르는 대로 오노 평지에 나갔더라면 그는 암살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나 오늘이나 이런 음모가 있습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좋은 얘기하는 것처럼 '조금 만납시다. 이리로 오십시오' 해놓고 중간에 엄청난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음모 자체가 사실은 자살행위라는 것도 동시에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여우와 나귀가 함께 짝을 지어서 사냥을 나갔습니다. 여우는 이쪽에서, 나귀는 저쪽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여우가 사자를 만났습니다. 매우 굶주린 이 사자는 여우를 잡아먹겠다고 덤빕니다. 여우는 간사하게 말을 합니다. "사자님, 몸집이 작은 나를 먹어보았자 배가 차겠습니까? 저쪽에 나귀가 있는데, 그놈을 내가 잡아드릴 테니 나를 놓아주십시오." 사자는 "그래라"하고 인심을 썼어요. 이에 여우가 나귀를 부르고는 살살 괴어서 깊은 함정에 빠뜨렸어요. 그 다음에 사자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내가 저 함정에 나귀를 빠뜨려놓았으니 이제 가서 잡수시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사자가 번개처럼 달려들어서 여우를 잡아먹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귀는 다음날 아침에 먹어도 되지 않습니까? '그래 오늘은 너를 먹겠다' 이것입니다. 여우가 먼저 죽었습니다. 이 우화를 왜 말씀드리는고 하니, 사람들이 음모해서 누구를 죽이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용납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

잠11:8

2024년 3월 24일 오전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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