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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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동성애를 두고 기도합니다.

1.

동성애를 옹호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문화적 기류가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2.

미디어를 통해 미화되는 동성애의 실체가 드러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들이 동성애에 빠지지 않도록 가정과 교회가 더욱 깨어 가르치며 기도하게 하소서.

3.

한국교회가 성령 안에 하나 되어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막아내게 하시고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소서.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행23:10-1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행23:10

큰 분쟁이 생겼습니다. 처음 분쟁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그리고 바울과의 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분쟁은 자기들끼리의 분쟁이었습니다.

저는 교회가 기도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진리대로 살면 세상에 변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사회가 왜 변하지 않습니까? 예수 믿는 우리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변하여 세상이 빛이 되면 세상이 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기껏해야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정도입니다. 교회에 와서 찬송 부르고, 헌금하고, 설교 듣는 것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천부장은 그 소요 속에서 저희가 찢겨질까 봐 군사를 명하여 무리 가운데 있는 바울을 빼내어 영문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1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행23:11

"그날 밤에" - 큰 분쟁이 생겨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 위험이 있었던 밤입니다. 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입니까? 이 얼마나 어렵고 괴로운 시간입니까?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 저는 이 표현이 참 좋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죽을 수 밖에 없는 위기나 중병이 들어 어려울 때 누가 내 곁에 있으면 참 좋습니다. 내가 약할 때 강한 사람이 와 있으면 참 좋습니다. 병 들었을 때 어머니가 곁에 계시면 참 좋습니다. 주님이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주님이 바울 곁에 오셔서 두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 담대하라고 했습니다.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하라는 이 말이 헬라어 원문상으로 잘 살펴보면 성경에 366번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을 연구한 어느 학자는 '성경에 이 말씀이 366번 있는 것은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주십니다. 이제는 용기만이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는 용기의 근거를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여기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1차 2차,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특별히 2차 선교 여행 때, 그는 중앙아시아와 소아시아에서 선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드로아에 내려갔을 때 환상 중에 마게도니아 사람들이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합니다. 그래서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서 빌립보로 갔습니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됩니다. 그는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을 본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문화와 철학의 중심지였던 아테네를 보고 상업 도시이자 무역 도시였던 고린도라는 큰 도시를 보았습니다.

3차 선교 여행 때 그는 그 당시 가장 화려했던 도시 에베소를 보았고 거기서 3년간 머물게 됩니다. 그는 고린도와 아테네, 에베소를 보면서 예루살렘과 소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그때 그는 마음 속으로 불타는 열정을 느낍니다.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내가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는 소원을 갖게 됩니다. 그 이야기가 행19:21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가려고 하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보려고 하십니까? 여러분의 생애의 꿈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안에 어떤 불이 있습니까? 어떤 사명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디까지 가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디까지 가서 변화시키기 원합니까?

이 열정과 이 소망은 사도 바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무슨 생각이든지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시면 그 꿈은 곧 식어버립니다. 하나님이 비전을 주시지 않으면 그런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 비전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면 그게 무슨 믿음이겠습니까?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면 하나님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임신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임신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비전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여러분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김미진 간사님은 홍성근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비전을 크게 가졌습니다. 50억의 빚을 지고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 그 당시에는 절대 불가능해 보이는 비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 저는 5000명의 아프리카 어린이를 먹이고 가르치는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그 정도 구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더 크게 구하지 못했을까?

그 날 밤에 주님은 사도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행23:11

여러분, 주님은 약속을 꼭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27:25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 얼마나 놀라운 음성입니까? 주님이 하신 말씀은 두 가지 점에서 바울에게 큰 위안과 힘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현재 당하고 있는 고난에 대한 주님의 해답이 되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장래를 보장하는 주님의 약속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그런데 이상한 것은, 로마에서 네가 증거하리라, 네가 가서 가이사 앞에 서리라, 말씀하시면서도 네가 어느 달 어느 날에 서리라, 어떤 과정을 통해 가리라, 하시는 말씀은 없습니다. ending은 분명한데 어느 길로 통해서 가는지 바울은 모릅니다.

여러분, 좀 더 깊이 말씀드리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히 행복합니다. 그런데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내게 행복이 오는지 그것은 미지수입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로마에 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이사 앞에 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어느 달 어느 날에,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씀은 없으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이 있은 2년 후에 로마에 갑니다.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파손되어 어려운 고생을 치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금 말씀하십니다. 걱정 말라, 너는 로마로 간다, 가는 것은 틀림이 없다, 모로 가든 바로 가든 가기는 간다 하심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종말은 주님께서 허락해주십니다.

또 이것은 약속적 신앙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실 때에 가나안을 네게 주마,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네게 준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주시는 줄로 아는 것입니다. 언제 가든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오늘도 바울에게 이 신앙을 확정해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약속한다, 너는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증거하리라, 너는 살아남을 것이야, 죽지 않아, 누가 너를 죽이겠다고 맹세해도 걱정하지 말라, 누가 너를 죽인다고 해도 절대 죽지 않는다 하심입니다.

결국에 그는 로마까지 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고로 "담대하라"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현재 여러분이 받는 고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두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세 가지로 정리하겠습니다.

1주님께서 놀라운 계획을 세우시고 바울을 연단시키고 인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연단시키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십니다.

2하나님의 계획은 예루살렘에 있지 않고 로마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네가 예루살렘에 머물지 말고 로마에 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가 여러분의 종착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로마까지 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고향이 있는 사람,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의 여행은 즐겁습니다. 그러나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은 방황합니다. 그것이 아주 피곤하고 힘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고향이 있습니다.

3주님이 왜 이렇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셨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이 나타나셔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실 때는 바로 다음에 감당 못할 큰 환난과 위기가 올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 주심으로 그것을 이길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키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요16:1-4

2024년 3월 22일 오전 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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